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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Team ZEST 인도 IDEC 참가기(4) - 두려움을 내려놓는다는 것
작성자 : 파도(한상윤)
  수정 | 삭제
입력 : 2018-11-22 17:15:17 (5년전),  수정 : 2018-11-23 02:11:20 (5년전),  조회 : 286
11월 16일

이번 여행에서 나의 목표는 ‘두려움 내려놓기’이다. 사실 오기 전부터 어렴풋이 깨닫고는 있었던 것이, 내 모든 고민과 불안은 내가 만든 두려움에서 기인한다는 거다. 나름 오랜 시간을 들여 준비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많은 것이 물음표 투성이인 이 여행에서 나의 두려움을 직면하고, 그것을 내려놓는 연습을 하고 싶었다.

나의 첫 번째 두려움은 영어였다. 여기 모인 모든 사람들이 다름을 존중하고, 소통을 원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실제로 누군가와 소통을 해야 할 때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이 모두 내 능력 부족인 것 같은 열등감. 그리고 다들 영어로 즐겁게 소통하고 있는데 나만 소외되는 듯한 그 서글픔이 두려웠다. 실제로 오기 전에 가장 많이 고민한 부분이기도 했다.
사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소통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진정성과 자신감이다. 알고는 있는데 늘 생각처럼 되지 않아 스트레스가 되었다. 이번에는 제발 이 두려움을 깨 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완벽하지는 않지만 오늘부터 그 시도를 하였다. 뭔가 요청하거나 질문을 해야 할 일이 있을 때 로다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고 직접 시도를 하였다. 마침 내일 일정과 관련해 스태프들이 먼저 내게 질문을 해 왔다. 마음을 편히 먹고 천천히 들으려 했고 아주 제한적이나마 이해를 할 수 있었다. 조금 자신감이 붙었고 사람을 좀 더 편안하게 대할 수 있었다. 사람이 편해지니 좀 더 적극적이 되었다. 좀 더 적극적이 되니 확실히 두려움이 많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만족스런 기분. 이 기분을 더 느끼기 위해 영어를 더 열심히 익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에 들어보니...아이들도 똑같은 것을 느꼈나보다. 소통의 즐거움을 안다는 건...사람을 더욱 성장하고 열리게 만드는 것 같다.

두 번째 두려움은 학생들의 불평 불만이었다. 들살이는 사실 관광이 아니다. 편한 잠자리와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그리고 재밌고 흥미진진한 놀거리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도 아니다. 당연히 힘들고 싫다는 볼멘 소리들이 나올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학생들에게 의미있고 좋은 시간이었다고 인정을 받고 싶었나보다. 어떻게든 클레임이 들어오지 않도록 사전에 완벽한 판을 만들려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삶은 불확실성의 연속이고 여행은 그 불확실성을 만나는 경험이기도 하다.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만났을 때야말로 나의 삶이 변화를 일으킬 순간이다. 그런 순간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시도, 예상치 못한 상황에 화를 내고 당황하는 것 모두 자신이 만든 두려움이다. 나는 나대로, 학생들은 각자 나름대로 내려놓아야 할 두려움이 있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 몫의 두려움을 내려놓기 위해 애쓰는 것 뿐. 그래서 안전에 관련된 것 외의 불확실한 모든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받아들이고, 즐기기로 했다. 얼마나 잘 될지는 모르지만.

세 번째 두려움은 타인의 시선이다. 영어를 못 하는 모습도 그렇고, 외국에 오니 순식간에 내가 신기한 존재가 된다. 그리고 말을 하고 노래를 하고 밥을 먹고 춤을 추는 모든 순간 순간 타인을 의식해서 멈칫거리게 되는 순간이 정말 많다는 걸 느꼈다. 자유로워지고 싶었고 그 연습을 하는 데 가장 좋은 판 중에 하나가 아이덱이라고 생각했다. 아직은 말 그대로 연습의 단계인 것 같지만 자유로운 영혼들 속에 있으면 나도 조금씩 감화될 거라 생각한다.

마지막 두려움은 편견이다. 솔직히 인도를 오기로 결정을 한 뒤에도, 아니 도착 직전까지도 인도에 대한 선입견이 아주 크게 있었다. 배설물 뒤섞인 물을 식수로 쓰고, 거리에는 온갖 쓰레기와 오물이 뒤덮여 있으며, 여기저기서 바가지를 씌우고 사기를 치고 각종 성폭행이 난무하는 정말 말종 중에 말종 나라라는 이미지가 강한 것이 사실이었다. 막판에 여행 일정을 인도가 아닌 태국으로 잡은 것도 그런 두려움이 있어서였을 것이다.
아직 나는 인도를 모른다. 사실 나고 자란 한국에 대해서는 잘 알까? 어쨌든 아직 잘 모르는 나라지만 적어도 여기서 만난 인도인들은 착하고 멋진 사람들이었다. 세상 어디나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있고 인도에도 영혼이 병든 사람이야 있겠지만 그들로 인해 이 사람들 모두가 도맷금으로 욕을 먹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이 들었다. 특히 최근에 한국에서 심해지는 타자에 대한 혐오 현상을 바라보면서 우리야말로 점점 영혼이 병들어가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그 모든 두려움을 내려놓으려 하며 하루를 살았다. 매우 다행스런 것은 이곳의 환경은 나의 두려움을 기꺼이 내려놓도록 도와주는 환경이라는 것이다. 민주적인 교육에 동의한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이곳에서는 보이지 않는 신뢰가 형성된다. 영어가 서툴러도, 말이 잘 통하지 않아도 불만을 갖거나 업신여기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 인종 성별 나이 국적에 따라 차별받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 어떠한 폭력이나 절도, 추행도 없을 것이라는 신뢰. 거기에 우리 아이들도 하루가 다르게 이곳의 문화에 빠져드는 것이 보인다. 음 아마 나보다도 훨씬 더 즐겁게, 잘 소통하는 것 같다. 이틀만에 벌써 수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통성명을 하고 정말 즐겁게 논다. 그들의 불평에 두려움을 느낄 겨를이 없다.

아이덱 스텝 여럿과 오기 전에 메일을 주고 받았다. 솔직히 발음도 어려워서 누가 누군지 구별도 안 갔는데, 보니까 계속 담당자가 바뀌더라. 암튼 마지막 담당자(라고 믿는) yesoda라는 분이 내가 보낸 제안을 기억하고 있었다. 여기 오려고 거의 반년간 식당을 열심히 했는데, 그래도 와서 사람들에게 한국 음식 한 번은 선보여야지 하고 메일을 보냈다. 우린 한국에서 채식 레스토랑을 운영했고, 아이덱에서 한국 음식을 대접하고 싶다고. 가능하다고 연락이 와서 고추장과 참기름을 싸들고 오긴 했는데...만약 까먹었거나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포기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제안을 기억하고 나에게 다시 확인을 하는 거다. 고마웠다.

처음으로 혼자의 힘으로 소통을 했다. 50인분의 비빔밥을 할 거고, 내일 저녁 식사에 포함해 내놓고 싶다. 필요한 재료는 무엇무엇이다...모두 이해한 그들은 나를 데리고 장을 보러 갔다!
얻어타고 간 스태프의 차는 차의 정체성이 사라지기 직전이었다. 내심 불안했으나 차가 낡았다며 미안해하는 스태프를 앞에 두고 불안한 티를 내면 인성이 쓰레기가 될 것 같았다.
아이덱이 열리는 ECC(Ecumenical Christian Center) 정문을 벗어나자마자 리얼한 인도의 거리가 펼쳐졌다. 내가 여기 있노라고 외치는 듯한 존재감 뿜뿜의 경적소리. 그리고 실제로 머리를 들이밀고 보는 차량들. 부산에 갔을 때 참 운전 막장으로 한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인도에 비하면 부산은 운전면허 주행연습 하는 수준이랄까. 여러번 내 앞과 옆으로 차들이 돌진하는 느낌을 받았고 죽었구나 싶을 무렵 귀신같이 살짝 피해서 빠져나간다. 고작 1km 남짓 가는 동안 생사를 여러번 넘나든 느낌이었다.

마트에서 장을 보는데 물가가 정말 미쳤다! 쌀 5kg, 계란 60알, 양배추 4통, 버섯 2팩, 당근 1kg, 그리고 애호박과 비슷하게 생긴 엄청 큰 어떤 채소 2개(나중에 찾아보니 조롱박 종류란다...) 그리고 식용유와 설탕 조금까지 해서 18000원. 참으로 혜자로운 가격이다.
장을 보고 나오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아기를 안고 내게 와서 구걸을 했다. 순간 다시 두려움이 엄습했다. 일단 줄 돈이 없기도 했지만, 두려움이 다시 고개를 들어 차마 눈을 마주칠 수도 없었다. 얼른 몸을 비켜 걸어가는데 계속 따라와서 옷깃을 잡고 애원을 한다. 정말 탈출하듯 차를 타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대체 어떤 사정이기에 아이 엄마가 거리에서 구걸을 해야 하는 걸까. 저 아이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갑자기 아이덱이 굉장히 가진 자들의 사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오는 길에도 여러 번 생사를 넘나들었다. 설상가상 비가 내렸는데 이 차는 와이퍼가 작동되지 않는다! 앞 유리창이 인상파 화가의 작품처럼 보이는데 스태프 양반은 익숙한 듯 아무렇지도 않게 차를 몬다. 도로 가장자리에 큰 싱크홀이 있는 것을 코 앞에서 발견하고 급회전을 하는데 옆에서 오토바이가 부딪힐 뻔 하면서 빠져나가는 막장의 상황. 다시 ECC 정문 안으로 들어와서야 지옥을 탈출한 기분이었다.

돌아오니 아이들은 한층 더 활기차게 놀고 있다. 남학생들은 아예 인도 아이들과 절친이 되어서 인도식 놀이를 하고 있고, 여학생들은 딱지놀이를 설명하고 색종이로 여러 가지 종이접기를 알려주고 있었다.
메일이 왔는데 벵갈루루 스쿨 투어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어디를 갈까 한참 고민을 하고 의논을 했는데 결과적으로 모두 마감이 되어 버려 신청을 하지 못했다. 뭔가 좋은 기회를 겟하려면 결국 의사소통이 빨라야 한다는 것을 다시 절감했다. 스쿨 투어를 하려고 원래 월요일로 예정되어 있던 발표들을 일요일로 다 옮겼는데, 그래서 일요일에 가려고 했던 마이소르 궁전 투어도 포기했는데...이번 여행에서는 아이덱 밖의 인도를 만날 기회는 없는 듯 하다.

일정을 마치고 하루나누기를 하는데 아영이가 다음날 쉬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오후에 아무 활동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충일이나 다른 친구들은 인도 친구들과 같이 노는 것이 재밌어서 하고 싶다고 했다. 민주교육의 기본은 자유롭게 배움을 추구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고 싶은 사람은 판을 벌이고,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쉬기로 했다. 그리고 판을 벌였다가도 힘들어지면 접기로 했다. 그렇게 해도 서로에게 아무런 피해가 가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논쟁이 정리되었다.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에서의 책임 사이에서 접점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때론 의외로 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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