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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Team ZEST 인도 IDEC 참가기(9) - 번외편 : 인간적인 감정, 인간의 도시 방콕
작성자 : 파도(한상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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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11-28 16:25:58 (5년전),  조회 : 294
11월 21일
밤을 새서 비행기를 탔지만 생각보다 많이 힘들지는 않았다. 일단 비행시간이 4시간으로 비교적(?) 짧았고 도착해서 입국수속도 인도에 비하면 아주 수월했기 때문이다. 딱 하나 에러였던 것은 입국수속을 하기 전 환전을 했는데 중국인 직원이 친절하게 웃으면서 인도 루피를 아주 몹쓸 환율로 환전해 주었다. 덕분에 약 3만원어치 루피를 2만원도 안 되는 태국 바트로 환전했다. 이로 인해 방콕의 첫 여정이 매우 힘들어질 줄은 몰랐다...

공항을 나서서 기차역을 찾아갔다. 새벽인데도 거리에 나서니 열기가 가득찬 후덥지근한 공기가 우리를 맞이했다. 새삼 벵갈루루가 얼마나 쾌적한 기후였는지가 실감이 났다. 그리고 우리가 인도를 떠나 새로운 국가, 새로운 도시로 왔음을 깨닫게 해 주었다. 한국을 떠난 지 8일째, 벌써 세 번째 나라이다. 배낭을 메고 공항을 나설 때의 그 낯섬과 설레임은 여전하지만 두려움은 이제 없다. 방콕은 또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해 줄까.

돈므앙 역에서 기차를 탔다. 인터넷에서 보았을 때는 분명 쾌적하고 널럴하다고 했는데, 막상 타보니 내 예상과는 매우 다른 그림이 펼쳐졌다. 일단 에어컨 빵빵히 나오는 첫 번째 침대칸을 지나, 에어컨은 안 나오지만 그래도 정갈한 느낌의 둘째 칸을 지나, 마지막 칸으로 들어섰다. 여기가 우리 자리란다. 분명 우리는 좌석이 있는 티켓을 끊었지만 태국 열차의 마지막 꼬리칸은 말 그대로 더 이상 갈 데가 없는 사람들의 집합소였다. 60년대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비둘기호의 모습이 딱 이랬겠지 싶다. 온갖 짐들이 여기저기 빼곡하게 들어차 있고, 온 몸에 삶의 고됨이 문신처럼 새겨진 사람들이 무표정하게 앉아 있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외국인들을 잠깐 응시하고는 이내 시선을 돌린다.

도저히 우리 좌석이라고 말하고 그들을 일으켜 세울 자신이 없었다. 그저 안으로 안으로 들어가면서 자리가 있나 살펴본다. 외국인이긴 하지만 애들인 것을 확인한 사람들은 가뜩이나 비좁은 자리지만 조금씩 엉덩이를 움직여 자리를 마련해 준다. 몇 정거장 지나지 않아 모두가 여기저기 흩어져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물론 기차 안은 더웠고, 좌석 상태는 형편없었으며, 우리 모두는 밤을 새서 매우 피곤했다.

누가 봐도 종점처럼 생긴 거대한 방콕역에서 내려 지하철을 탔다. 우리 숙소는 2정거장 가서 갈아타고 다시 2정거장을 가면 되는, 비교적 가까운 위치에 있었다. 그런데 여기 지하철...환승이 되지 않는다. 젠장! 문제는 환승을 할 때 돈이 부족했다. 아까 공항에서 환율만 어느 정도 제대로 쳐 줬어도 여기서 발이 묶이지는 않았을 텐데. 고작 100바트가 모자라서 표를 끊을 수가 없었다. 급한 마음에 다른 방법이 없는지를 물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단다. 카드 안되고, 인도 루피 말레이시아 링깃 미국 달러 다 안 된단다. 환전상은 10시에나 문을 연다고 한다. 어메이징 타일랜드. 하하하.

결단을 내렸다. 수중에 가진 돈으로 기차를 탈 수 있는 인원은 6명. 나머지 5명은 2정거장을 걷기로 했다. 대신 기차를 타는 6명이 나머지 사람들의 짐까지 다 들고 가기로 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 뭔가 투덜대고 짜증을 내는 친구가 한둘 정도 나올 타이밍이긴 한데, 며칠 외국물 좀 먹다 보니 이 상황이 어쩔 수 없는 상황임을 다들 의외로 쉽게 수긍한다. 팀을 나누어 출발! 내가 체크인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기차를 탔고 로다가 걷는 팀을 맡았다.
2정거장 후 내려서 짐을 들고 걷기 시작했다. 기차를 타고 비교적 수월하게 왔기에 아무 말도 안 하지만, 기본 배낭 2개씩에 기타 여분의 짐들도 들고 땡볕에 걷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웬만하면 불평하는 내색 안 하는 채은이가 울먹이며 얼마나 남았나고 묻는다.

기차역부터 숙소까지 500미터 정도. 온갖 노점상들과 허름한 가게들이 즐비하다. 한눈에 봐도 그닥 위생적이지는 않은, 그러나 군침을 돌게 만드는 갖가지 먹거리들. 방콕의 첫 인상은 불량식품의 천국이다. 인도는 뭐랄까 가난하고 더럽지만 최대한 공유하고 절제하는 느낌적인 느낌이 있었다면, 태국은 초등학교 앞 문방구와 분식점 느낌이다. 비록 가진 돈은 얼마 없지만 이것저것 소소하게 즐기고 싶고 향유하고 싶은 느낌. 굉장히 자본주의적이지만 어설프게 세련된 척 안 하고 아주 인간적인 면이 있다. 이 도시의 첫 인상이 마음에 든다.

숙소는 찾기 쉬운 곳에 있었다. 태국 할머니가 문을 열어 준다. 친절하고 정겨운 인상이지만 오랜만에 영어 안 되는 사람끼리 소통하느라 약간 애를 먹었다. 언제나 숙소에 처음 도착하면 체크해야 할 것들이 꽤 있기 때문에. 다행히 걸어오던 팀이 잘 도착해서 로다가 소통을 맡았고 물, 화장실, 식사, 열쇠, 와이파이, 기타 등등... 한참 동안 그 모든 것들을 알아내느라 시간이 걸렸지만 대부분을 해결할 수 있었다. 문제는 우리 모두 밤을 새서 이곳까지 오느라 피곤했고 우선적으로 해결할 과제는 씻는 것과 먹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의 공통점은 들어오자마자 와이파이 비번부터 찾는다. 적혀 있는 비번이 맞지 않자 그때부터 불만과 질문이 이어진다. 설상가상, 여자들 방에 정체모를 CCTV가 설치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고 이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내는 데 정말 많은 시간이 걸렸다. 주인은 나와 에어비앤비 메시지로 소통을 했고 늘 그렇듯 번역기를 돌려 소통하는 것은 정말 많은 노력을 필요로 했다. 더구나 이렇게 민감한 문제라면. 아무튼 이 카메라의 정체는 CCTV가 맞고, 원래 그 방은 혼성 도미토리여서 혹시 모를 불미스런 일을 막기 위해 감시용으로 설치되어 있다는 주인의 설명이었다. 이해는 하지만 찝찝하고 불안하다는 이야기가 이어졌고 그러면 어떻게 할지 물었지만 사실 별다른 답은 없는 거다. 로다가 남학생들과 방을 바꾸자고 제안했지만 애초에 여학생들 방이 더 크고 좋아서 거기를 배정했던 거라 그건 또 싫다고 했다. 결국 카메라 앞을 종이로 가리고 사용하는 것으로 결론은 났는데...이 모든 과정을 처리하기까지 정말 많은 시간이 걸렸고 무척이나 힘이 들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몹시 화가 났다. 오자마자 자기 침대 하나씩 정하고 드러누워서 이것저것 질문만 하고 불평하면서 정작 그 일을 누가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 한 모습. 소통은 타인에 대한 존중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여러번 얘기했지만, 내 몸과 마음이 힘들수록 소통은 없고 욕구만 먼저 튀어나온다.

어쩔 수 없는 상황임은 나도 알고 있었다. 우리 모두는 피곤했고, 불안했으며, 아이들의 멘탈은 생각보다 훨씬 연약하고 시야는 매우 좁다는 것을. 그리고 이런 상황이 교사가 길잡이가 되어야 하는 상황임을. 그런데 나도 몹시 지치고 피곤했나보다. 정말로 화가 나서 아이들과 떨어져 있고 싶었다. 꼴도 보기 싫었다고나 할까. 마침 아침을 먹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고 환전을 하러 나갔다 와야 했다. 분을 삭이며 혼자 땡볕을 걸어 은행에 다녀왔다. 던지듯 돈을 아이들에게 건네주고 씻은 뒤 잠을 청했다. 감정에 휩싸인 지금은 내가 쉬고, 회복을 해야 ‘교육’이 가능한 상태가 될 것 같았다.

다행히 아이들은 빠르게 나머지 상황을 정리했다. 다들 차례대로 씻고, 인근 편의점에서 사 온 먹거리로 간단한 식사를 하였다. 그리고 다들 자기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했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아니 해야 하는 최선의 행동이었다.
한숨 자고 일어나니 마음이 가라앉고 정리가 되었다. 내친 김에 저녁 먹기 전까지 더 뒹굴며 쉬었다. 호스텔의 좋은 점은 각자 침대가 있다는 거다. 우리 모두는 잠시나마 서로에게서 분리되어 휴식을 취했다. 몸과 마음이 이완되고, 회복되는 좋은 시간이었다.

저녁을 먹기 위해 모일 때쯤 우리는 다시 평온해졌고, 너그러워졌으며, 즐거워졌다. 그리고 인도에서의 일정을 잘 마치고 방콕에 입성한 것을 자축할 겸 주인이 알려준 인근 맛집으로 향했다. 수제 피자와 파스타를 하는, 국적을 종잡을 수 없는 여성과 손놀림이 현란한 백인 남성이 운영하는 집이었다. 가격이 비교적 있었지만 우리는 사치를 누리고 즐거워지고 싶었다.
파스타가 하나씩 나올 때마다 탄성을 질렀고 한 입 먹을 때마다 인도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강렬한 자본주의의 힘을 느꼈다. 구운 고기, 치즈, 버터, 그리고 콜라.

몇 입 먹고 피자까지 먹자 이 음식이 생각보다 느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며칠 사이 우리가 인도식 음식에 익숙해진 건지. 암튼 마지막에 나오면서는 맛은 있지만 두 번 올 곳은 아니라는 이야기를 나누며 나왔다. 집에 가서 먹고 싶은 음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된장찌개, 알탕, 김치와 수육...아이들 모두 이야기를 할 때마다 자신이 얼마나 그 음식을 사랑하는지에 대해 열띤 주장을 하였다. 해외에 나오면 모두 애국자가 된다더니. 아이들이 지금 딱 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딱히 국가에 대한 애정도 없고 충성심도 없고 코스모폴리탄으로 살고 싶은 나이지만 그래도 음식은 한국 것이 그리울 줄 알았는데, 이번 여행에서는 음식이 그립지 않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식탐 자체가 줄었다고 할까? 한국 가서 뭐가 먹고 싶을지 생각해 봐도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다. 그보다는, 이 도시에서 맛보고 싶은 것들이 아직은 더 많다.

하루나누기를 하며 아침의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사실은 매우 화가 났었다고. 나름대로 표시를 안 하려고 애를 썼는데, 다들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눈치를 보고 있었다.
아무리 민주교육을 한다고 표방을 해도, 학생과 교사가 동등한 눈높이에서 소통을 한다고 애를 써도, 이런 순간에 보면 결국 누가 힘을 가진 존재인지가 밝혀진다. 교사의 힘, 즉 권위가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너무 크면 결국 학생들의 성장에 방해가 된다. 매 순간마다 나에게 무언가를 계속 묻는 아이들의 모습에는 다 이유가 있던 거다. 잘 몰라서, 자기 확신이 없어서 내게 도움을 청하는 것도 있지만 많은 경우 내게 허락을 구한다. 자기 스스로 결정할 주체성을 내게 바쳐 버린다. 그래서 항상 느끼지만 교사의 포지션은 정말로 어렵고 미묘하다. 교사를 그만 할 때까지 아마 나는 이 문제에 대해 매 순간 고민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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