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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미즈 미츠루, <삶을 위한 학교>를 읽고
작성자 : 푸른숲
  수정 | 삭제
입력 : 2015-10-29 23:26:58 (6년전),  수정 : 2015-10-29 23:28:09 (6년전),  조회 : 576
학교는 삶에 어떤 기여를 해야 하는가

시미즈 미츠루, <삶을 위한 학교>




인생은 금물 함부로 태어나지는 마
먼저 나온 사람의 말이
사랑 없는 재미없는 생을 살거나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네

- 언니네 이발관, <인생은 금물> ( https://www.youtube.com/watch?v=1FRasj9RoRE)


어차피 인생은 굴러먹다 가는
뜬구름 같은
질퍽대는 땅바닥 지렁이 같은 걸

- 옥상 달빛, <하드코어 인생아> ( https://www.youtube.com/watch?v=veLFAZFOmaQ)


15,908명, 14,278명, 30,382명. 지난 한해 학업을 중단한 대한민국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학생 수입니다(교육부, 2014 교육기본통계). 이 통계 속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학생들의 수는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지난 해 한 국회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은 평균 사흘에 한 명 꼴로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습니다(배재정, 2010년 1월~2014년 9월 초·중·고 자살 현황). 유학으로 학업을 중단한 학생까지 포함하면 작년에 학교를 그만둔 대한민국의 청소년은 10만 명이 넘습니다(교육부, 앞의 자료).


저는 궁금합니다. 그리고 걱정스럽습니다. 왜 이렇게 많은 학생들이 학교를 그만두는 걸까요? 학교를 그만 둔 아이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요? 혹시 우리가 그들을 쫓아버린 것은 아닌지, 저 역시 그들의 행복을 앗아간 공범자는 아닌지 두렵습니다. 기성세대가 낭만적으로 부르는 ‘청춘’이라는 단어가 지금의 젊은이들에게는 통용되지 않습니다. 인생은 금물이라니요. 하드코어 인생이라니요.


민중의 대학, 폴케호이스콜레


동화작가 안데르센과 철학자 키에르케고르의 나라 덴마크. 이곳에 안데르센과 키에르케고르만큼이나 덴마크인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덴마크의 종교가이자 교육사상가인 그룬투비(Grundtvig, 1783~1872)입니다. 그리고 그룬투비가 만든 ‘폴케호이스콜레’가 있습니다. ‘민중의 대학’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 폴케호이스콜레는 덴마크 국민교육운동의 위대한 결실입니다.


“우리 국민 모두는 죽음의 학교를 알고 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학교라면 모두 예외 없이 크고 작은 문자로 시작하여 책의 지식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중략) 그것은 독자의 삶과 결코 일치하는 것이 아니다. (중략) 어린 시절, 사람이 마음과 몸이 적당한 발달에 이르기 전에 학교에서 머리를 사용하는 것이 이미 무익한 소모인 것이다.”

- 그룬투비, 『삶을 위한 학교』


시험이 전혀 없고, 이수해야 하는 학점이나 수여 자격도 없으며, 교사와 학생이 기숙사에서 공동으로 생활하면서 책보다 대화를 중심으로 삶 그 자체를 배우는 폴케호이스콜레. 그래서 ‘삶을 위한 학교’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이곳은 자국의 역사를 중시하고, 특권층의 죽은 문자(라틴어)가 아닌 민중의 살아 있는 말(덴마크어)을 통한 대화를 중심에 둔 ‘삶을 위한 교육’을 지향합니다. 이것을 단순히 직업교육으로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한 인간이 성숙하고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을 찾도록 도와주는 것. 이것이 삶을 위한 교육의 진정한 목표입니다.


이러한 교육에 대한 인식은 덴마크에서 국민교육을 지칭하는 ‘폴케오프뤼스닝’이라는 말 속에 드러납니다. ‘민중의 사회적 자각’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 이 말은 사람들이 대화와 상호작용을 통해서 공동성, 역사성을 깨우치고, 인간 삶의 불가사의와 존엄을 알며, 모두 함께 힘을 모아 살아가는 삶을 각성하여 자각한다는 내용을 포함한 말입니다.


문득 우리의 배움이, 우리의 가르침이 삶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라는 질문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참된 삶, 좋은 삶에 대한 뚜렷한 상이 없다면 결코 삶을 위한 교육을 실현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아무리 그럴싸한 교육모델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의 사회・역사적 맥락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한낮 백일몽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룬투비가 1838년에 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삶을 위한 학교』에서 저자인 시미즈 미츠루는 ‘폴케호이스콜레’가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었던 역사적 맥락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①1848년 혁명의 여파로 인한 덴마크 절대왕정의 붕괴, ②국민의 4분의 3분을 넘는 농민들의 계몽만이 민주주의를 실현시킬 수 있다고 본 그룬투비의 신념 그리고 ③국토개간운동과 협동조합운동을 통한 민중세력의 강화가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덴마크의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와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주변 강대국들의 침략, 부존자원이 없는 황폐한 국토, 거기에다가 교육운동을 통한 위기의 극복까지. 우리와 다른 점은 그들은 행복하기까지 하다는 점입니다. 왜 우리는 불행하다고 느낄까요? 우리는 행복할 수 없는 걸까요? 유엔 행복지수 조사에서 2012년과 2013년 연속으로 1위에 오른 덴마크의 교육제도, 특히 폴케호이스콜레에 주목하는 까닭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대한민국 교육의 문제점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의 전환이 없이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룬투비는 시험이라는 것을 “젊은이가 자신의 경험의 범위에서가 아니라 타인의 말을 반복함으로써만 답할 수 있는 질문으로써 연장자가 젊은이를 괴롭히는 일”이라고 보았습니다. 교육의 목표는 ‘평가’가 아니라 ‘성장’에 있어야 합니다. 위기에 봉착한 기성세대를 닮은 미래세대를 만들어서는 희망이 없습니다. 지금 기성세대가 해야 할 일은 미래세대를 기죽이고 겁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지 못한 일을 미래세대가 해낼 수 있도록 격려하고 북돋아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헛되이 우리의 아이들과 자손들 전부를 우리자신을 모방한 (융통성 없는) 석판화로 변화시킨다면 그것은 우리자신을 깔보는 것이며, 장래 세대를 불행에 빠트리기 위해서 전력을 다하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인간은 원숭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 그룬투비, 『북구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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