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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현, <마을에 배움의 길이 있다>를 읽고
작성자 : 푸른숲
  수정 | 삭제
입력 : 2016-05-04 00:34:29 (6년전),  조회 : 327
공동체를 살리는 교육과정을 꿈꾸다

문재현, <마을에 배움의 길이 있다>를 읽고




혁신학교가 진정한 대안이 될 수 있는가


이 책은 청주에서 태어나고 그 곳에서 살면서 마을공동체교육에 헌신해 온 저자의 다섯 차례의 강의 및 평화샘 프로젝트에 함께하는 동료들의 강의 후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공동체를 살리는 교육과정혁명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책은 지난 2014년 지방선거 직후, 그러니까 각 시도교육청 선거에서 13명의 소위 진보 교육감이 당선된 직후 쓰였다. 선거의 결과는 직접적이지는 않더라도 혁신학교의 성과가 국민들에게 대체로 긍정적으로 수용되고 있으며 좀 더 확산될 필요가 있다는 신호로 여겨질 만 했다.


저자는 혁신학교를 주도하는 사람들이 교육계에서 상징 권력을 가지게 되었으니 그들이 추구하는 교육과정과 학교 문화가 진정한 대안이 될 수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주의할 것은 이 책의 목적이 단순히 혁신교육을 비판하는 데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의 근본적인 한계이다. 근대적인 학교모형 속에서는 살아가면서 경험하고 스스로 구성한 지식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가 보기에 혁신학교 모델 역시 그러한 한계 속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현재 많은 혁신학교에서 전문적인 학습공동체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러한 실천이 현대 교육이 가진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문성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전문성 자체에서 생겨나는 문제가 현대의 문제라는 것이지요. 교과가 아니라 삶을 어떻게 통합할 것인가? 과연 분과 학문이 삶을 통합할 수 있는가? 자기 삶과 교육을 통합하지 못할 때 과연 주제 통합이 가능한 것인가? 이것이 학문의 파편화 현상이 우리에게 던지는 심각한 질문입니다.”


왕따 시키기라는 권력


삶과 교육이 통합되지 않는 현실을 아주 간단히 말해주는 것이 바로 ‘왕따 문화’에 대한 무지 혹은 무능이다. 우리는 아이들의 문화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아이들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통로는 놀이이다. 그런데 아이들의 놀이가 위험하다. 놀이대장은 짱으로 짱은 일진으로 변모한다. 저자가 지난 몇 년 간 일진 아이들을 중심으로 아이들에게 확산되고 있는 놀이들을 조사해보았다. 인증샷 놀이, 동전 놀이, 기절 놀이, 수술 놀이, 사채 놀이, 몰카 놀이, 심기 놀이, 콜로세움, 아바타 놀이, 쫄 게임, 셔틀 놀이, … 놀이 또는 장난으로 둔갑한 괴롭힘, 소위 ‘왕따’가 아이들 세상을 얼룩지게 하고 있다. 그러나 학교는 이러한 현상에 무감하다. 왕따에 대한 학교의 반응은 대체로 세 가지다. 첫째, 극히 일부 아이들의 문제다. 둘째, 당하는 아이들에게도 문제가 있다. 셋째, 그래도 다른 학교보다는 덜한 편이다. 그러나 ‘왕따’는 병리현상을 넘어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 왕따 문제는 우리 교육의 중심 주제가 되어야 마땅하다.


“우리 때와 다른 점은 먼저 놀이대장, 짱이 있어서 그 아이가 놀이에서 역할과 규칙을 정하고 다른 아이들은 일방적으로 따른다는 것입니다. 놀이대장으로 불리는 아이들은 유치원 때부터 아주 인기 있는 모습으로 어른들 눈에 비쳐집니다. 그 아이의 눈에 들지 않으면 놀이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에 아이들은 죽을 힘을 다해서 그 아이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하게 됩니다. 그래서 인기는 아이들을 배제시킬 수 있는 권력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의 놀이에서 권력 관계가 발생한다는 것은 여간 당혹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일이 발생하면 처음에는 아이들 사이에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로 치부하면서 애써 무시하다가 사태가 좀 심각해진다 싶으면 어른이 공정한 심판관으로 개입하여 시시비비를 가려보지만 결과가 신통치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아이들 사이의 ‘권력’이 ‘왕따’로 나타나는 이유가 무엇인지 분석해야 한다. 둘째, 학교라는 제도가 이 문제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원인을 알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이 그러한 권력으로부터 스스로 해방될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기억을 공유하는 공동체


저자가 생각하기에 우리가 추구해야 할 새로운 시대의 교육은 공동체를 살리는 교육이다. 그래서 3장에서는 공동체를 살리는 교육 원리를 살피고 4장에서는 공동체 교육과정의 구성의 원칙, 마지막 5장에서는 공동체 교육과정의 주체에 대하여 논하고 있다. 공동체란 무엇인가? 저자가 말하는 공동체는 기억을 공유하는 공동체이다. 기억을 공유한다는 말은 삶에 대한 공통의 맥락이 있다는 의미이다. 함께 놀던 친구들에 대한 기억. 밤낮으로 싸돌아다니던 동네에 대한 기억. 그러므로 기억은 놀이와 장소를 통해 공유된다.


"엣날엔 놀이를 주도하는 사람이 누구였을까요? 언니, 오빠, 형이었죠. 언니, 오빠, 형은 늘 놀고 있고 그것이 동생들의 몸과 마음을 자석처럼 끌어당깁니다. 그들은 동생들한테 놀이를 가르쳐주고 잘 모르는데도 끼고 싶어 하면 깍두기 제도를 통해서 품 안으로 끌어들이지요. 이러한 모습이 마을마다 펼쳐졌으니 이 얼마나 훌륭한 복지 체계입니까?"


"아이들은 자신이 살아가는 장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자신이 존중받는 느낌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지요. (중략) 아이들하고 관계를 맺으려면 아이들의 생활 세계에 발을 내딛고 역동적으로 상호작용을 해야 합니다. 의미는 관계로부터 나오고 관계는 우리가 나의 가족, 이웃, 그 바탕이 되는 자연환경, 문화 환경과 깊이 있게 교류하는 데서부터 맺어지기 때문입니다."


저자가 말하는 공동체 교육과정의 핵심은 해방적 주체로서의 자신을 인식하고 삶의 터전으로서의 장소를 이해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지식은 간주관적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전통적인 방식이 아닌 민속적인 방법으로 배워야 한다. 따라서 전문가주의를 지양하고 삶 속에서 자신의 문화 전통을 통합시킬 수 있는 역량을 지닌 교사와 부모의 역할이 강조된다.


최근에 마을교육이 진보교육의 화두가 되면서 여기저기서 논의가 되고 있다. 마을 만들기 운동과 공동체 운동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일면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러나 기존의 교육과정을 마을이라는 자원을 사용하여 시행하겠다는 발상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교육과정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교육과정의 재구성과 재배치가 필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교육과정 재구성의 주체 역시 재배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평화샘 프로젝트를 하면서 느낀 것은 마을 사람들이 학교에 대해 강한 분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에요. 학교에서 필요한 것은 이것저것 해달라고 하면서 정작 마을의 요구에 대해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는 것이지요. 학교와 지역사회가 맺는 관계를 근본에서부터 다시 검토하고 성찰할 때 길이 열릴 것입니다.”


우리 교육의 식민성


마지막으로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 바로 우리 교육의 식민성에 대한 부분이다. 지금은 다소 시들해졌지만 한동안 핀란드 교육 모델이 회자되던 시절이 있었다. 국제학생평가프로그램(PISA; Programme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 에서 핀란드가 성취도 뿐만 아니라 정의적 특성까지 우수한 나라로 소개되면서 나타난 현상이었다. 이 책에서도 소개되고 있는 사토 마나부의 배움의 공동체 모델은 경기도의 혁신 중학교들을 통하여 널리 소개되었고 지금은 서울을 비롯한 타시도교육청에도 상당히 널리 보급되어 있다. 최근에는 존 버그만과 애론 샘즈를 주축으로 한 거꾸로 교실 운동이 공중파 방송을 통해 소개되면서 붐을 일으키고 있다. 이 밖에도 프레네 학교, 헬레네 랑에 학교, 발도르프 교육, 덴마크 자유교육, 거기에다가 비고츠키까지. 우리나라를 거치지 않은 교육모델이 없을 정도다.


이러다 보니 수박 겉핧기가 횡행한다. 사실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마치 모든 것을 아는 것 같은 착각 속에 빠진다. 처음에는 "와! 이게 답이야! "이게 진짜야!" 라고 금새 열광하다가 조금 시들해지면 "그거 해 봤는데 별로야." "그거 사실은 이러이러한 단점이 있어."라며 금새 포기한다. 남들이 하기 전에 먼저 선점하는 것이 중요할 뿐 그것을 내 전생애를 걸어야 할 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일단 내 것이 되었다고 생각하면 금새 싫증을 내고 또 다른 새로운 것을 찾는 식이다. 교육이 반성적으로 실천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소비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가 생기는 원인은 혁신교육과 대안교육이 식민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판단합니다. 어떤 문제가 있을 때 우리 역사를 살펴보고 내부에서 자원을 찾아가면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서양의 제도와 학문을 그대로 가져와서 받아들이는 것이 현대 학문과 교육의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제도 교육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한 대안교육 운동과 혁신학교 운동이 외국의 대안교육 이론과 사례를 탈맥락적으로 우리 사회에 적용하려고하고 있는 것이지요."


물론 우리 것이라고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닐 게다. 저자는 마을에 배움의 길이 있다고 하지만 그것 만이 만병통치약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마을과 공동체의 의미에 대해서도 분명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공동체 교육과정의 목표와 성격, 내용과 방법론에 대해서도 체계적인 연구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 것에 대한 자부심이 학문적 자만심으로 연결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힘들더라도 우리 스스로 이론과 실천을 생산해내겠다는 각오가 없다면 교육의 식민성에서 벗어나 우리 스스로 교육의 주체가 되는 것은 요원한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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