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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이야기
  수정 | 삭제
입력 : 2013-05-19 23:53:33 (7년이상전),  조회 : 355
부처님오신날을 시작으로 2박 3일 간의 연휴동안 공동육아 몇몇 식구들과 전라도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이제 자야할 시간인데 요즘 제 머리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붙잡아 놓고 자려고요.



저희는 이곳 시지에 산 지 8년째이고 공동육아의 식구가 된 지 올해 7년째입니다. 얼마 전에 문득 제가 어디선가 7년씩이나 함께 생활한 사람들이 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족이라든가 제가 나고 자란 시골 마을 이외에는 한 곳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7년을 보낸 곳이 잘 없더군요.

유년과 중고등학교 시절까지 보낸 시골 마을은 아직도 저의 친정 동네라 자주 가는 곳이니 지금까지 제 평생을 함께한 곳입니다. 골목길을 나서면 다 아는 사이라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를 해야하고 제가 그 동네 이웃과 혼인을 하여 여태 살아오고 있기도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이웃의 속내를 잘 아는 건 아니었습니다. 두 집 건너 옆집 친구와 결혼을 하고 나서 제가 놀란 부분도 한 동네 살아도 각자가 살아온 방식이 너무나 달랐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옆집 살던 언니가 고등학교 시절에 집을 나갔는데 당시 초등학생이던 저는 그 언니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에게나 간혹 외가에 놀러 가는 우리 아이들에게 늘 껄껄 웃는 인자한 할아버지였지만 가난한 집의 가장으로 살아오는 동안 당신의 식구들에게는 너무나 단호하고 엄격한 분이셨다는 걸 어른이 되고 나서야 어렴풋이 알게 되었습니다.

십여 년간 계속 해 온 일인 교사란 저의 직업도 마찬가지입니다. 공립학교 교사이다 보니 4년이면 전근을 갑니다. 4년 이상 같이 근무해 본 사람이 잘 없지요. 제가 만나는 학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일 년입니다. 기껏 많으면 이 년. 삼 년을 함께한 학생은 아직 없습니다. 솔직히 담임으로서 제가 만나는 아이들을 일 년만 책임지면 된다는 것이 홀가분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7년이란 세월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현재 대구공동육아협동조합에서 7년차는 최고 조합원입니다. 물론 공동육아 식구들 중에 저희와 7년을 함께 보낸 가구는 함께 들어온 몇몇 가구밖에 되지 않습니다. 더 오래 머물다가 떠난 선배 조합원들도 보았고 우리보다 늦게 들어왔다 먼저 나간 가구들도 보면서 이만큼 왔습니다.

그 시간 동안 제가 배운 것이 너무나 많지만 한 마디로 말하면 인간으로서의 도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공동육아이다 보니 아이를 먼저 보고 그 아이의 부모를 보면서, 아이가 그 부모를 얼마나 많이 닮는지를 알았습니다. 아이가 어떤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면 부모가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는 걸 무겁게 배웠습니다. 또 공동육아이다 보니 아이를 어느 정도 키우면 떠날 수밖에 없는데 떠나고 새로 들어오는 것이 해마다 반복되는 걸 보면서 인간 관계에도 어떤 흐름이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친하던 사람과도 소원해질 수 있고 서먹서먹하던 사이와도 어떤 계기를 만나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떠났지만 계속 이웃으로 남는 사람도 있고 미안한 말이지만 떠나줘서 고맙게 여겨지는 사람도 간혹 있습니다. 마음 맞는 사람들과 같이 일을 벌이는 게 잔치처럼 흥겨울 수 있다는 것도 알았지만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서로 감정이 대립될 때 지옥이 될 수 있음도 덤으로 배웠지요. 숱한 회의를 거치며 사람의 생각이 얼마나 다양할 수 있는가를 알았고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도 긴 시간을 함께하다 보니 생각이 다른 걸로 서로가 미워지는 것도 극복이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있는 그대로 상대방을 인정하는 법을 배운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잠시 만나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긴 쉬워도 오래 함께하고도 괜찮은 사람으로 남기 위해서는 한결같은 자세로 자기의 삶을 가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알았습니다.



얼마 전 공동육아 엄마들끼리 카톡으로 유니클로 런닝을 공동구매했습니다. 런닝과 브라가 붙어 있는 유니클로 속옷이 편하다는 걸 경험한 한 엄마가 마침 그게 세일에 들어갔다는 걸 알고는 이웃들을 위해 주문을 받고 돈을 거두고 주문하고 나누어주기까지의 수고로움을 기꺼이 감수했습니다. 그날 카톡방에서는 엄마들의 사이즈가 공개되고 남의 사이즈에 간섭하는 일까지 호호깔깔 진행되었습니다. 이런 즐거운 일이 어디서 일어날 수 있을까요. 고산초등학교 운동장 인조잔디를 마사토로 바꾼 저력의 밑바탕엔 이런 즐거움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을, 요즘 우리가 꿈꾸는 어떤 모습입니다. 마을을 꿈꾸는 것은 행복해지기 위해서이겠지요.

공동육아는 그 자체로 이미 마을입니다. 단지 지금의 모습이라면 시한부 마을이라 할 수 있겠지요. 그 속에 몸담고 있을 동안, 그러니까 조합원으로서의 역할을 다할 동안 마을의 구성원으로 인정해 주는.

그걸 조금 더 확장해 보고 싶은 거 아닐까요. 어울리고 부대끼는 과정 속에서 울고 웃으며 살아보자는. 아래 위층에 사는 이웃도 모른 채 2년짜리 전세를 살다 옮겨가는 이 도시의 방식으로는 평생 알 수 없는 삶의 속살을 맛보자는.



아직은 구체적으로 형태가 잡히지 않은 막연한 상태입니다. 만들고 싶다고 만들어 질 수 있는 건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냥 같이 꿈을 꾸어 보자는 것입니다. 꿈을 꾸는 건 즐거운 일이고 그 즐거운 일을 같이 하고 싶고 꿈꾼 것들 중 일부가 현실이 되는 걸 눈으로 확인할 때는 더한 기쁨이 있으리라 짐작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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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코우유(강민엄마) ( 2013-05-20 09:30:38 (7년이상전)) 댓글쓰기
7년만큼 행복하고 7년만큼 수고를 감당하셨겠죠.그 시간이 유한하다는게 늦게 발을 들인 저한테는 참 아쉬운 대목이네요.
아직 마을그림이 스케치에 불가하지만 점점 또렷이 그 형체를 보이며 아름다운 색채로 완성되어질거라 생각 합니다.
우리가 공동육아의 울타리밖을 생각해야 할 때가 왔나봐요. 늘 그러했듯 먼저 생각하고 터를 다져주시는 분들이 계시네요.기꺼이 수고를 감당해주시는 용기에 고개를 숙입니다. 함께해요♥
초록사과(문영영윤엄마) ( 2013-05-20 10:06:42 (7년이상전)) 댓글쓰기
그래요. 공동육아를 하면서 많은 걸 배우고 많은 걸 얻은 것 같아요. 공동육아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무슨 낙으로 살았을지 하는 생각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드네요.^^
저도 요즘 가장 관심갖고 있는 부분이 마을이고, 이것에 대해 고민하고 얘기나누는 모임이 생긴 것이 너무나 다행이라 생각해요. 구체적으로 어떤 상으로 갖고 있지는 않지만, 함께 얘기하다보면 느리지만 천천히 뭐라도 떠오르거나 생기지 않을까 싶어요. 우리 기쁨을 맛볼 수 있도록 같이 꿈꿔봐요~~^^
민소영현엄마 ( 2013-05-21 13:54:46 (7년이상전)) 댓글쓰기
'아이가 어떤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면 부모가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는 걸 무겁게 배웠습니다' 이 부분을 여러번 읽어 봅니다.
짱구(하람아빠) ( 2013-05-22 15:44:04 (7년이상전)) 댓글쓰기
아.....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설파중인 자리에 한 참가자가 질문을 하더랍니다.
'근데 그걸 어떻게 하면 이룰 수 있을까요' 라고...

그랬더니 답변으로...
'당장 해답이 나오거나 그 길이 확연히 청사진이 그려진 건 아니지만 꿈은 반드시 꾸어야한다. 꿈을 꾸어도 안될 수는 있지만, 꿈을 꾸지 않는데 눈 앞에 펼쳐지게 되는 경우는 단 한 번도 본적이 없다...'라고...

많은 생각을 해 보게되는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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