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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 마을 사이에 다리를 놓는 사람들(격월간 『민들레』 68호에 실렸던 글)
작성자 : 재홍욱부
  수정 | 삭제
입력 : 2010-05-11 12:30:23 (7년이상전),  조회 : 316

본 내용은 격월간 [민들레] 68호에 실렸던 글로서 저자에게 게재허락과 원고를 받아 올립니다.
도심속에서 마을을 만들어가려는 여러가지 형태들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으며, 천을산 마을 공동체 만들기에
조그마한 도움이 될까 싶어 올립니다.
글 내용이 조금 길지만 끝까지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스크롤 압박을 느끼시느 분들은 첨부파일을 참조하세요)

권정민 대안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학부모로서, 노후 대책의 한 방편으로 ‘공동체’에 관심이 많다. 지금 민들레 편집실에서 일하고 있다. jmin91@hanmail.net

아무 연고도 없는 낯선 도시에 둥지를 틀고 아이를 키우면서 나와 비슷한 가치관을 갖고 있는 이들과 만나고 싶은 욕구가 컸다. 돈 버는 일에 아등바등하기보다 세상이 더 따뜻해지길 바라는 이들과 함께 사는 재미를 나누고 싶었다. 반찬이 마땅찮으면 밥 한 끼 달라 문 두드리고, 바쁠 땐 군소리 없이 아이도 서로 맡아주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술안주 삼아 밤을 새울 수 있는 그런 이웃을 원했다. 그런 이웃과 함께 세상에 보탬이 되는 일들도 시도해보면서 좀 제대로 잘 살아보고 싶다는 희망을 품었다.
처음 아이 학교를 선택할 때 마음의 짐이 있었다. 내 아이만 잘 키우자고 이 학교를 선택하는 건 아닐까 하는, 그렇게 오해받지 않도록 세상과 나누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는 부채감 같은 것도 꽤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정작 살아 보니 ‘학교’라는 공간에 발을 넣고 있는 부모로서 내가 그 안에서 처음 먹었던 마음으로 잘 살고 있나 순간순간 고개가 갸웃거려질 때가 많다. 아이를 (부모보다 더) 잘 키워주고 있는 학교가 고맙고, 만나면 반갑게 웃는 고마운 인연들이 학교 안에 그물망처럼 퍼져 있지만 처음 먹었던 마음이 많이 희미해져 있음을 느낄 땐 뜨끔한 게 사실이다. 2퍼센트 부족한 그것이 뭘까, 나는 아이가 다니는 학교를 통해 무엇을 나누고 싶은 걸까? 돌이켜 보니 아주 막연하게나마 나는 어떤 울타리에 기대 내 삶을 그 안에서 풀어놓고 싶었던 것 같다. 그 울타리를 ‘교육공동체’라 이름붙이면 적당한 걸까.
우리끼리라는 울타리를 넘어선 어떤 것을 갈망하며 관심을 갖고 둘러보니 이미 그것을 꿈꾸며 걸음을 내딛거나 발자국을 남기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그것을 ‘마을’이라 불렀다. ‘마을사람’들은 어찌 사는지 문을 두드렸다.

마을살이의 빛과 그늘

풍성한 커뮤니티 안에서 서로 부대끼며 재미나게 사는 맛을 느끼고 산다면 신나는 일일 터. 서울 마포에 있는 성미산마을이야 워낙 도시에서 공동체를 꿈꾸는 이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그야말로 커뮤니티의 신화(?)로 등극한 성미산마을은 공동육아에서 시작해 생협, 동네부엌, 유기농카페, 카센터, 되살림가게, 성미산학교, 마을극장, 유기농식당까지 만들어냈다. 다양한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곳이다 보니 일꾼도 많고 추진력 있는 사람도 넘쳐나고 으샤으샤 만드는 재미에 여기까지 왔다는 성미산마을. 마을을 견학하는 방문객이 하루 서너 팀이 넘을 만큼 유명세를 타고 있는 성미산에 기대어 사는 이들은 실상 어려움이 없을까, 마을을 제대로 누리고 있는 걸까 속사정을 듣고 싶었다.
성미산학교 한 학부모의 고백.
“사실 저만 해도 공동육아 하면서 너무 지쳤더랬어요. 회의, 마을행사, 기획하고 홍보하는 게 재미있기도 한데 만날 회의하고 사람 관계에서도 지치고, 너무 힘들고 어렵다는 생각에 그냥 공교육으로 갔어요. 근데 공교육이 아이랑 맞지 않기도 했고 학부모들끼리 생각도 다르고 외로운 길을 혼자 가기가 힘들어서 다시 돌아오게 됐지요. 돌아와서도 일 년은 활동도 적극적으로 안하고 뒤로 빠져 있었어요. 이 세계를 아니까 너무 지쳐서 선뜻 다시 하기 쉽지 않았어요. 근데 다시 돌아와서 활동하며 생각해보니 이런 일 속에 자기성장과 관계의 성숙이 있더라고요. 여기 사람들이 정말 대단한 게 다른 곳에서는 만날 수 없는 가슴이 따뜻하고 마음이 열린 분들이 참 많아요. 이런 활동들 대부분 자원해서 하거든요. 자기 계산을 하면 할 수 없는 일이죠.”
공동체의 철학이나 방향을 공유하는 문제도 만만치 않은 듯하다.
“같은 학교 안에 있어도 소통이 어렵더라구요. 그게 제일 문제죠. 신입과 기존의 갭이 점점 커진달까. 왜 공동체로 살아야 하고 무엇을 보고 갈지 항상 공유해야 하는데 잘 되고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사실 외부에서 들어오는 학부모는 대부분 성미산학교 때문에 오거든요. 지내보면서 공동체가 있구나 알게 되는 거고. 마을공동체의 참맛을 알아가는 사람도 있고 아직 낯설고 그런 게 어색한 사람도 있고. 또 기존 분들끼리 너무 끈끈하게 엉켜 있어 관계 안에 들어오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어요.”
역시 어느 곳이나 어려움은 관계 문제에서 오는 것 같다. 끈끈함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연고가 없는 이는 발을 넣기가 쉽지 않다는 것. 성미산마을의 한 공간에서 상근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에게 공동체에 진입할 때의 어려움을 들어보았다.
“전 여기서 여는 강좌를 듣고 오게 되었는데요. 처음 진입할 때는 좀 그랬어요. 공동육아 출신이 아니다 보니…. 공동육아나 성미산학교에 연고가 없는 사람들은 마을공동체에 끼어들기가 어려워요. 마을공동체라는 특색이 있다 보니 관계가 너무 밀착되어 있는 게 장점이기도 하지만 힘들더라구요.”
“‘우리’라는 게 굉장히 강하죠. 동네 주민들 사이에서도 너는 생협 쪽, 성미산학교 쪽, 공동육아 쪽, 이렇게 나눠버리기도 하구요.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뺀다는 식으로 기존 주민들 사이에서도 그런 눈이 있는 게 사실이에요. 또 그만큼 기대치도 높구요. 가령 마을의 수익금을 당연히 동네에 나눠야 되는 거 아니냐 이런 식으로. 물론 나누고 있는데도 너무 공동체 안에서만 쓴다는 지적도 있고.”
의도하진 않았어도 분명 밖에서 서성이는 누군가는 진입장벽이 높다고 불평을 할 수도 있겠다 싶다. 또 누구는 헌신적이고 누구는 누리기만 하면 불만도 생기지 않을까. 단지 교육소비자로 누리기만 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갈등도 분명 생길 텐데?
“성미산학교가 있어서 초중고 과정을 다 해결할 수 있지만 학교를 자기 편리에 따라 이용하려는 사람들도 분명 있어요. 성미산 공동체 안에서도 교육관이 다르다 보니 지금은 대안학교 안에서도 사교육 문제가 대두되고 있기도 하구요. 눈높이나 기대치가 다르니까요.”
초창기 때부터 마을 구성원으로 살아온 이가 들려주는 이야기.
“기다려주는 것이 답이라고 봅니다. 맞벌이 부부도 많고, 왜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는지 그 이유를 헤아려 줘야 하거든요. 적극적으로 활동하시는 분들은 누리기만 하는 사람을 보면 얄밉다고도 하지만 이해해 줘야 된다고 봐요. 시간이 필요한 일이죠. 불만만 가질 게 아니라 쭈뼛쭈뼛하고 내성적인 분들을 독려하고 끌어들이는 노력이 좀더 필요하지 않나 싶어요.”
공동체 마을이 자기 형태를 갖게 되면 공동체를 지향하는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 마을의 경계가 너무 뚜렷해져 오히려 함께하기 힘들게 되는 건 아닐는지?
“원래 여기 살던 토박이도 있지만 공동육아 때문에 오는 분들이 7,80퍼센트 정도? 원주민들한테 쟤네들은 애들도 너무 막 키우고 그런 거 아닌가 하는 시선도 받고. 성미산 지키기를 하면서 시작된 마을이니 성미산이 상징인데, 홍대부속초등학교가 들어오면서 성미산이 없어져도 땅값 올라가면 좋다는 사람들도 있고…. 또 도시 안에 있는 대안학교다 보니 잘사는 애들 왔나 보다 그런 시각도 있어요. 안 그런 분도 많은데 선입견이 있는 거죠.”
한편에서는 성미산마을을 두고 너무 도시의 소비를 해결해주는 쪽으로 공동체가 가고 있는 것 아닌가, 마을의 문턱을 낮추는 일이나 지역 안에서 돌봄이 필요한 이들과 함께하는 일을 소홀히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경우도 있다. 더구나 조합원의 출자금으로 시작했던 카센터 ‘차병원’이 위치상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문을 닫은 사례는 소비자는 있되 조합원은 없는, 공동체가 소비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겪게 된 한계를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다. 그밖에도 마을에 몰려든 사람들 때문에 인근 집값이며 전세값이 많이 올랐다는 소문도 들린다.
이러저러한 고민과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내가 만난 이들은 성미산마을에서 사는 삶을 모두 즐기고 있다고 했다. 서로 이쪽저쪽 몰려다니면서 놀기도 하고, 모임이 쉽게 이루어지고, 마을극장이 있어서 문화적 욕구를 해결하는 어른들 아이들 놀이터로 활용되고, 사는 게 바빠서 뒷전으로만 미루던 취미생활을 성미산마을에 와서 할 수 있게 된 것도 즐겁다고 했다. 참여해야 할 일이 많고 시간도 품도 많이 내야 하는 고단함이 있는데도 계속 살고 싶은가 하는 질문에 돌아온 대답들.
“성미산이 좋죠. 같이 어울리고 떠들썩하게 마을잔치도 하고, 도시인데도 시골스러운 면이 있다고 해야 할까. 암튼 많이 누리고 살고 있어요.”

어떤 마을을 꿈꾸는가

‘교육마을’을 표방하고 있는 과천 무지개학교의 경우, 당장 내 아이를 학교에 보내야 하는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도 함께 힘을 보태 학교를 세우고 ‘무지개교육마을’을 일구고 있다. 아이들은 그 구성원이 만든 ‘무지개학교’를 다니면서 생태와 평화, 통합교육을 경험하고, 어른들은 마을 안에 모임(교육사랑방)을 만들어 그 안에서 자녀교육도 이야기하고 삶의 중심을 세우는 고민도 함께 나눈다. 여기서 말하는 ‘마을’은 옹기종기 모여 사는 공간 개념에 한정되지 않는다. 물론 학교 터전 주변에 자리를 잡은 학교 구성원들과 동네 주민들도 있지만 무지개교육마을에서 말하는 마을은 ‘아이와 어른이 함께 삶을 나누는 모임’의 개념이다. 2, 30명에서 출발해 지금은 마을 주민이 170여 명으로 늘어났다. 가까운 지역에 사는 마을 주민들끼리 동네 모임을 만들어 정기적으로 만나다가 규모가 커지면서 그에 맞는 소통방식을 새롭게 고민하고 있다. 최근에는 동네모임을 하지 않는 대신 동아리활동이 활발해져 마을활성화에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기타동아리 ‘아르페지오’, 의역학 동아리 ‘자연인 자유인’, 지역의 작은 도서관을 꿈꾸는 사람들이 모인 ‘책만세’ 등 10여개의 동아리가 활성화되면서 마을이 새로운 활기를 띠고 있다.
이들이 꿈꾸는 마을은 어떤 모습일까? 저마다 다른 구상일 수 있지만 마을 참여에 열심인 주민 성미선 씨가 꿈꾸는 마을은 이렇다고 말한다.
“스스로 자기 삶을 책임질 수 있는 어른이 되는 것처럼 아이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걸 어른들이 먼저 실천하는 거죠. 가능하면 의식주도 우리 손으로 해결하는 쪽으로 발전하고. 8년이나 되었지만 마을에 대해 구체적인 상이 있기보다 근래에 좀더 구체적으로 논의를 시작했다고 할까. 가령 학교에 침뜸을 배우는 동아리가 있어요. 그 안에서 “야~ 우리, 의료생협 같은 거 만들어야 하는 거 아냐?”라는 고민을 내놓기도 하고, 기존 생협은 결국 소비를 해결하는 것 이상은 아니라는 고민에서 시작해 지역 연대를 더 튼튼히 하고 생산자와 관계가 더 돈독해지는 생협 만들기에도 관심이 가고. 다 돈으로 남에게 맡겨 버리는 식, 소비를 해결하기 위한 활동이나 방법을 모색하는 쪽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자는 방향으로 논의를 하고 있죠. 장을 담그고 김치를 하고 기존에 텃밭을 활용해서 먹을거리를 내 손으로 만들어 먹는다든가… 그걸 나누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함께하는 것으로 마을을 꾸려 가려고 합니다. 사실 마을이 드러나는 활동을 이제 막 시작했다고 보면 됩니다.”
도시에서 안전한 먹을거리, 생활재를 쓰려는 노력은 물론 의미 있는 것이지만 ‘마을’의 존재 의미가 도시에서의 안전한 소비생활에만 초점이 맞춰진다면 과연 ‘마을’이 지역사회에 의미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마을을 꿈꾸는 이들은 편한 마음으로 소비하고 즐기기 위한 커뮤니티에 그치지 않고 근본적인 삶의 태도와 나눔에 대한 고민을 놓치지 않으려는 자세는 무척 중요하리라 본다.

지역과 함께하고픈 이들이 꿈꾸는 ‘마을’

4월초, 지역과 함께하고픈 ‘마을’을 꿈꾸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작은 공간을 냈다. 의왕시 한 귀퉁이에 있는 조그마한 연립주택 1층을 얻어 사랑방을 연 온뜻학교 사람들. 숲속에 자리한 학교로는 지역과 연계가 안 되고, 학교 아이들만 좋은 가치를 배우고 누려서는 안 된다는 고민 속에서 어렵게 내딛은 첫걸음이다. 열세 가정으로 꾸려나가는 작은 학교에서 이렇게 마을을 꿈꾸는 건 어떤 연유일까.
“학교 졸업하면 그걸로 끝이기 쉽잖아요. 태어난 곳은 다 다르지만 고향처럼 여기서 늙어가고 싶은 거죠. 어떤 이들은 귀농을 꿈꾸는데 왜 여기서 잘 살아갈 생각을 안 할까 아쉬웠어요. 여기서 먹고사는 게 해결되면 얼마나 좋을까. 귀농하지 못하고 여기서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여긴 도시니까 이 안에서 무슨 방법이 없을까 함께 고민하는 이들이 일 저지른 거죠.”
뭔가에 떠밀려 정신없이 사는 것에서 벗어날 순 없을까, 애들이 어떻게 학교에서 교육받나, 그것만 들여다보지 말고 지역사람들과 어우러져 신명나게 사는 길은 없을까 고민하면서 ‘마을’을 꿈꾸고 있노라 했다.
결핍이 필요를 부른다고 했던가. 학교 사람들만 해도 그리 형편이 넉넉지 못한 이들이 모여 있다 보니 오히려 결속력을 더 갖게 된다고 한다. 이 지역사람들은 평촌, 수원 지역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밀려나 있는 경우가 많고 주변에 다문화가정 아이들도 많다 보니 우리 아이만 들여다 보지 않고 오히려 지역 안에서 뭔가를 해보자는 의지가 크다고. 학비 내는 일도 만만찮은 이들이 굳이 ‘사랑방’이라는 공간을 얻어 고생을 자처하려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아직 안정적인 운영비도, 후원금도 없이 일부터 낸 이들은 올해 일 년 그냥 재미나게 지내볼 생각이라고 했다. 책모임, 몸살리기 모임, 먹을거리 모임, 바느질 모임 등 자기가 관심 있는 걸로 서로 모여들다 보면 무슨 길이 생기지 않겠냐며.
도시 안에서 마을공동체를 꿈꾸는 또다른 곳이 있다. 서울 강북 북한산 아랫마을의 ‘아름다운마을공동체’는 새로운 마을을 꿈꾸는 이들의 생활공동체이다. 기독청년운동에서 시작한 구성원들은 마을에 자리를 잡을 때부터 교육과 문화를 통해 주민들과 만나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그래서 처음 주민들과 함께 시작한 활동이 공동육아와 계절학교라고 한다. 지금은 ‘아름다운마을초등학교’라는 대안학교도 운영하며 지역의 아이들에게도 문을 열어 함께하려 노력하는 중이다.
대안학교에서 시작해 마을을 꿈꾸는 이들은 지향하는 가치를 아는 데서 그치지 않고 실천하며 살고 싶다는 강한 바람을 갖고 있다. 학교를 넘어서 어떻게 마을로 이어지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저마다 상이 달라 걸음이 느리기는 하지만 마을을 고민하는 이들은 ‘내 아이’에서 ‘지역의 아이들’로, ‘아이의 교육’에서 ‘부모인 나의 삶’으로 고민이 확장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아는 만큼 움직이고, 믿는 만큼 실천하려 용기내는 이들이구나 싶었다.
교육과 마을 사이에 길을 내는 움직임은 실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 대전 지역의 경우, 마을어린이도서관 만들기 운동과 지역통화운동을 벌여온 ‘한밭레츠’, 의료공동체를 꿈꾸는 ‘민들레 의료생협’ 등이 만났다. 대전 시민단체와 지역 주민들이 만나 지역공동체를 고민하면서 육아, 영상, 생태, 책과 관련된 동아리 활동을 통해 생활공동체운동을 벌이고 있다.
지역아동센터와 공부방을 중심으로 지역 시민단체나 뜻있는 지역민들이 함께 마을 아이들에게 안전망을 구축하고자 노력하는 곳도 많다. 가령 ‘우리 지역 아이들은 우리가 책임진다’는 공동체 의식을 바탕으로 지역사회와 학교가 협력하여 새로운 모범사례를 만들고 있는 서울 북부 교육희망네트워크의 경우 왕성한 활동을 해나가고 있다. 또 철거 반대 운동으로 시작해 〈1번가의 기적〉이라는 영화로 유명해진 부산 지역 물만골 생태마을의 경우도 공동체를 움직이는 구심체는 ‘공부방’이라고 한다. 공부방에서 자란 아이가 다시 공부방의 자원교사로 돌아오는 물만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순환을 가능케 하는 힘이 지역과의 나눔에서 나온 것임을 짐작하게 된다. 대안학교도 내가 사는 곳에서 지역 사람들과 함께 돌봄과 나눔을 고민하지 않는다면, ‘자기 아이에게만 더 나은 교육을 찾아주려는 경제력 있는 사람들의 울타리’라는 비판 앞에 설 자리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교육과 마을을 연결하는 주춧돌들

마을이 구상되고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회의와 갑론을박이 있었을까. 3년 동안 논의하고 합의했는데도 뒤돌아서 여전히 “마을이 뭐예요?” 하는 이들을 보면서 갑갑함을 느꼈다는 어떤 이의 말처럼, 자기가 만들고 싶은 ‘마을’의 그림도 다 다르고, 왜 마을이 필요한지 공감하는 정도도 다를 터. 이상은 높지만 현실에서 주춧돌을 하나하나 쌓아가기는 말처럼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교육과 마을 사이에 다리를 놓는 수고로움을 기꺼이 감수하려는 이들이 있다. 먼저 길을 간 이들이 들려주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자.
“서로 가까이 있다는 것, 자주 보고 불러낼 수 있고 서로의 삶에 관여하게 될 수밖에 없죠. ‘밥 먹으러 와라~’ 부르면 반찬 한 가지씩 들고 모여 나눠 먹고 그러면서 뭔가를 시도하게 되거든요. 동네에서 만날 오며 가며 만나니까 그게 힘이 되는 거죠. 그래서 우린 ‘우리 학교에 오려면 이사오셔야 합니다~’ 하고 전제조건을 내걸어요.”
물론 가깝게 산다는 게 절대 조건은 아니지만 일을 도모하려면 일단 자주 만나야 한다. 자주 만나려면 아무래도 가까이 있는 게 장땡. 웬만큼은 서로 오가는 품을 쉽게 낼 수 있는 근접성이 필요하겠다 싶다.
어떤 이들은 마을을 도모하는 힘의 원천으로 초창기 멤버들의 꾸준한 의지를 꼽았다. 새로운 구성원이 마을에 들어왔을 때 초심을 잃지 않고 생각을 공유하는 일은 무척이나 중요하다. 한 마을공동체의 초기 멤버가 들려주는 이야기.
“설립 멤버가 졸업하고 나가 버리느냐, 계속 끈을 갖고 있느냐 차이가 있어요. 졸업은 했지만 발을 빼지 않고 꾸준하게 관여하는 게 신입가정에도 영향을 주고, 그 고민을 받아서 이렇게 도모하게 되고. 대안교육운동이 무엇일까, 내 아이 행복하려고 하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라는 것, 우리의 노력이 공교육으로 흘러갈 것이라는 희망, 세상에 대한 고민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죠.”
세상과 나누려는 의지도 중요한 요인이지만 마을을 꿈꾸는 모두가 한목소리로 말하는 가장 큰 주춧돌은 ‘관계’와 ‘소통’이라고 했다. 관계와 소통은 속도가 아니라 밀도의 문제인 것 같다. 천천히 가는 가운데 깊어지는 만남.
“뭔가 빨리빨리 결정하는 분위기가 아니라 서로 합의하는 과정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해요. 처음엔 오랫동안 모여서 지루하게 논의하는 게 답답해 보였거든요. 그냥 추진하면 되는데 왜 저러나 싶고…. 지나고 보니 효율적인 게 좋은 것만이 아니라는 거, 논의하고 모두 다 합의하는 게 미련해 보여도 이렇게 가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친밀감을 넘어선 끈끈함이 때로는 부담스럽기도 한 ‘마을’이라는 공간. 그 안에서 자기 중심을 잃지 않는 게 잘 살아가는 비결이라고 누군가는 귀뜸하기도 했다.
“상처받고 대립하고, 회의를 해도 결론도 안 나고 모두가 합의할 때까지 끝이 없고…. 그 상처가 싫었는데 돌이켜보니 이게 사는 과정이구나, 대립이 싫었지만 다시 돌아와 보니 이젠 즐기게 되네요. 결국 자기 조절의 문제가 아닐까 싶어요. 처음에는 쑥 빠져서 깊이 들어가는데 지나다 보면 너무 밀착된 관계가 싫어 뒤로 물러나게 되기도 하고…. 그러면서 자기 중심을 어떻게 세울까 조절하게 되네요.”

나와 우리 아이, 우리 마을부터

‘교육공동체’, 또는 ‘마을’. 이 말이 갖는 의미는 사람들의 욕구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된다. 혼자가 아니라 다른 이와 관계망을 넓히고,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 그 관계망 안에서 재미나게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모아져 사람들은 커뮤니티를 꿈꾸고 그것에 접속하려고 시도한다.
어떤 이는 내 삶이 더 풍성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고파 마을을 꿈꾸기도 한다. 세상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의지로 때로는 짱돌을 들고, 때로는 선거로 사회를 변화시키려던 흐름이 이젠 나와 우리 아이가 크고 있는 삶의 터전, 우리 마을부터 삶의 결을 바꾸자며 이웃과 지역에 눈을 돌리기에 이르렀다. 두 욕구가 무 자르듯 나눠지는 건 아니겠지만 어느 것에 더 무게를 싣느냐에 따라서 조금씩 공동체의 모습이 달라지는 것 아닐까.
공동체가, 마을이 해결해주지 못하는 것이 있다. 또 그 안의 관계와 소통에서 힘들고 고단한 일도 분명 많을 터. 그러나 마을을 도모하면서 그들은 행복해했다.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이 일을 하는 게 더 즐겁다고,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이렇게 에너지를 쓸 때 살아 있는 느낌이 든다고. 잘 살기 위해, 행복하기 위해 마을을 꿈꾸며 십시일반 품을 내고 힘을 모으는 이들. 교육을 매개로 꿈을 품는 시발역이나 종착역이 꼭 대안학교여야 하는 건 아니리라. 자기가 발 딛고 서 있는 자리에서 잘 사는 게 뭘까, 어떻게 잘 살 수 있을까 고민을 놓지 않는 것, 그것부터 시작하면 되지 않을까.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주춤 힘이 빠졌던 나는 교육과 마을에 다리를 놓는 이들을 만나며 등대를 만난 듯 힘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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