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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무위의 공동체'를 읽고 - 작별 인사를 대신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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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4-13 10:16:25 (3년전),  조회 : 262
안녕하세요? 야호입니다.
참나무 여러분께 아쉬운 인사를 드려야하게 되었습니다. 책 한권 소개하는 것으로 저의 작별인사를 대신할까합니다. 그 동안의 제 답답함을 위로해주었던 책입니다. 장 뤽 낭시라는 프랑스 철학가의 책 ‘무위의 공동체’입니다.

현대 철학자들이 좋아하는 키워드들이 있는데요, ‘관계’, ‘과정’, ‘운동’, ‘타인’, ‘차이’ 같은 단어들입니다. 반대 방향에는 싫어하는 가치들이 있습니다. ‘원래 그런 것’, ‘완성’, ‘정체성’, ‘일치’ 같은 단어들입니다. 그런 생각의 흐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철학자가 ‘장 뤽 낭시’이지요.

‘관계’가 ‘정체성’보다 중요하다는 것은, A라는 사람과 B라는 사람이 먼저 있어서 그 사이의 관계가 생긴다고 보는 것이 아니라, 관계가 있기에 비로소 A나 B를 말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입니다. 타인과의 관계가 있기에, 딱 그만큼의 내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는 거죠. 상황에 따라서 사람에 따라서 발생하는 그런 존재는 독특할 수밖에 없습니다.
낭시 역시, 존재는 ‘하나의 실체가 아니고, 누구에게로 향해 있음’이고 ‘동일자가 타자로, 동일자가 타자로 인해, 또는 동일자가 타자에게 향해 있거나 기울어져있는 움직임’이라고 말합니다.

낭시의 주장에서 중요한 것은 공동체인데요, 낭시는 먼저 공동체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지적합니다. ‘우리는 공동체를 잃어버렸다.’ 혹은 ‘공동체는 과거의 것이다.’라고 말하곤 하죠. 한데, 그렇게 말할 때의 ‘공동체’라는 것은 사실 존재한 적이 없었다고 주장합니다. 근대의 어떤 사고방식이 그런 공동체를 상상했을 뿐이라는 거죠. 하지만, 그런 사고를 했던 근대는 결국 ‘전체주의’를 만들어냈습니다. 어떤 중심이 있어야하고, 전체가 그 중심을 재현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이 전체주의를 만들어내었고, 그 과정에서 배제와 소외가 발생했죠.
‘우리는 하나’ 같은 구호는 근대의 구호이지, 진짜 공동체의 구호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진짜 공동체를 설명하기 위해, 낭시는 ‘개체’, ‘개인’에 대해서 말합니다. 개체를 말하는 단어인 individual은 in(부정) + divide(나누다)로 구성됩니다. 즉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기본 단위라는 뜻으로, 오랫동안 그렇게 믿어져 왔지요. ‘휴머니즘’이라는 인간중심주의가 그 결과였습니다.
하지만, 현대 과학의 발전은 아주 작은 것도 더 쪼갤 수 있음을 밝혀냈습니다. 사람만 해도 그렇습니다. 보통 우리는 피부로 둘러싸인 몸을 개체라고 생각합니다. 한데 따져보면, 사람의 몸은 수많은 바이러스와 세균들이 모여 살고 있는 공생체라고 합니다. 우리 세포 안에는 미토콘드리아라는 것이 있어서 에너지를 만드는 역할을 하는데요, 이 미토콘드리아라는 것은 아주 오래전에 외부의 다른 세포가 잡아 먹혀서 공생하게 된 결과라는 것이 과학이 알아낸 것입니다.
개체 그 자체가 공생체, 공동체입니다. 그런 공생체들이 또 다른 공생체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사고방식이 요즘의 ‘생태적’ 사고입니다. 개체를 구분하는 경계선을 말할 수 없다는 것이 핵심이죠.

낭시는 존재가 나타나는 방식을 ‘나눔’이라는 말로 설명합니다. 나눔은 ‘가른다.’는 뜻과 ‘함께 공유한다.’는 두 가지 뜻이 들어있는 단어입니다. 나누어 갖는다는 의미로 나눔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만나는 모든 타인들과 뭔가를 나누어 갖으며, 그 순간 그 만큼씩만 고유하게 존재한다는 거죠. 낭시는 그렇게 나누어 갖음이 곧 소통이라고 합니다.

한데, 어떤 것이 이런 나눔을, 즉 존재하기를 방해합니다. 낭시는 “ 내재성이란 만일 생겨나게 된다면 공동체를, 나아가 모든 소통 그 자체를 즉각 억압하는 그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내재성이란 앞에서 말한 전체주의적인 사고, 행동을 말합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낭시의 ‘무위’ 즉 ‘하지 않음’의 철학이 등장합니다.
“ 공동체는 이루어야 할 과제의 영역에 속할 수 없다. 우리는 공동체를 이루어낼 수 없으며, 다만 공동체의 경험이 우리를 만든다. 과제로서의 공동체는 석고 흉상과 마찬가지로 공동체적 실존을 결코 담고 있지 않다.”
지금 여기 공동체의 경험 그 자체가 우리이지, 우리가 경험해야할 공동체가 따로 있지 않다는 말입니다. 더 좋은 공동체를 상상하는 과정에서 자칫, 지금의 구성원들의 존재가 억압당합니다.

이 책의 번역자인 박준상 숭실대 교수는 ‘어떤 관념도, 어떤 이데올로기도 정당하지 않으며, 우리에게 반드시 그 배후로 끊임없이 되돌아가는 움직임이 필요하다... 그 무위를 향해 돌아가는 움직임이 없다면, 모든 관념과 모든 이데올로기는, 지금의 우리를 담아내지 못하는 맹목적 억압 기제로, 어떠한 창조적인 것도 차단시키는 집단적인 틀로 작동할 수밖에 없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낭시가 이렇게 말하는 ‘무위’ (하지 않음)은, 공동체에서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적극적인 생각과 행동이 필요합니다.
“ 동일체라는 단일체도, 그 실체도 없다. 왜냐하면 그 ‘나눔’이, 그 이행이 완성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완성이 그 원리이다. - 미완성을 불충분이나 결핍이 아니라, ... 역동적 표현으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나눔의 역동성, 다시 말해 무위의 역동성, 무위로 이끄는 역동성.”
공동체를 미완성으로 두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야합니다.

낭시는 끊임없는 단절이 공동체에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예술’이 그런 단절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도 말합니다만, 기본적으로 진짜 공동체는 스스로 그런 단절을 만들어냅니다.

‘ 우리에게, 어떤 관념적 틀 (법, 이데올로기, 민족 국가라는 범위 등)을 고정되고 완성되고 절대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개인(들)과 집단을 하나로 만들려고 하는, 하나의 동일성 내에 묶는 그 틀에 균열을 내는 능동적 움직임이 필요하다.’ 박준상 교수의 설명입니다.
어쩌면, 우리로 치자면, 규약 규정에 과하게 기대거나, 공동육아, 공동체를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즉 ‘원래 그런 것, 그래야하는 것’으로 여기는 사고가 아닐까 합니다. 아름다워 보이는 관념일수록 주의해야한다는 것이 낭시의 생각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공동체를 운영하는데 뭔가 기준은 있어야하지 않을까요? 제가 자주 인용하는 책 ‘공동육아, 더불어 삶’에는 이와 관련된 구절이 있습니다. 공동육아에서는 권한, 계약을 따지기보다, ‘지금 우리에게 뭐가 좋을까?’를 따지는 판단을 해야 한다는 거죠.

다시 말씀드리지만, ‘무위의 공동체’라는 사고는 소극적이거나 무기력한 발상이 아닙니다. 현대의 철학자들이 말하는 공동체는 실제 세상의 정치, 경제적인 대안이기도 합니다. 낭시 역시 이렇게 말하죠.
“ 공동체는 사라지지 않는다.... 공동체는 저항한다.... 그것은 저항 자체이다.”
얼마 전에 제가 소개한 다른 책 ‘공정하다는 착각’에서도 마이클 샌델은 지금의 세계적 불평등에 대한 대안으로 공동체를 말하기도 했으니까요. 심각한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겨우’ 공동체를 말하는 바람에, 샌델은 너무 수동적이고 보수적이라고 비판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미세 자본주의 상황에서 실제로 유효한 저항은 이것뿐일지 모른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합니다.

공동육아 안에서도 할 일이 많습니다. ‘코뮨주의’를 쓴 이진경씨는 실제로 ‘수유너머’라는 공동체를 이끌고 있는데요, 그도 낭시의 생각을 이어받고 있습니다. 이진경씨는 공동체는 즐거운 분위기로 가득차야한다고 말합니다. 그를 위해 필요한 것은 ‘모임’이고, ‘선물’이고, ‘수다’이지요.

이런 생각들에 비추어 보면, 공동육아는, 참나무는 참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공동육아, 더불어 삶’ 책에는, 공동육아의 철학이 ‘경계 없음’, ‘정해진 것 없음’, ‘모두가 다름’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표현이 곳곳에 나옵니다.

얼마 전, 멋진 예 하나를 보았습니다. 우리는 ‘세시절기’에 따라 삽니다. ‘공동육아, 더불어 삶’에서는 세시절기가 열린 시간을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질 들뢰즈라는 철학자는 시간의 흐름에 대해 말하면서, ‘리듬’과 ‘박자’ 두 가지를 나누어 생각해보기를 권합니다. 박자는 규칙적으로 흘러가는 시계 같은 것입니다. 쫓아가야 하는 기준 같은 것이지요. 그에 비해, 리듬은 주위의 여러가지의 것들이 제각각 움직이며 그것들이 어울려 만들어내는 흐름입니다. 날짜를 정해놓고 산다면 박자를 따라 사는 것일 게구요, ‘세시절기에 따라 사는 것’은 ‘리듬’에 따르는 것입니다.
며칠 전, 진달래꽃이 핀 것을 보고, 우리 교사회는 급히 화전을 만들기로 결정했습니다. 봄꽃들이 예년 보다 빨리 피어버렸는데, 그에 맞추어 산 것이죠. 이렇게 세상과의 관계 속에서 사는 것, 정해진 것이 없는 것, 외부로 부터 오는 것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공동체의 방법이고, 우리 아이들은, 우리는 그렇게 살고 있는 듯합니다.

뜬금없이 철학 이야기를 한 것은 이렇게 우리의 삶을 말해보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런 글, 생각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듯합니다.
‘ 참나무, 참 좋은 곳입니다.’ 이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낭시는 어떤 것도 절대적인 것은 없다고 말하며, 자신의 말도 절대적이지 않다고 덧붙입니다. 그러면서 글을 이렇게 끝맺습니다.
“ 여기서 내 말도 단절되어야만 한다. 아무도, 어떠한 주체도 말할 수 없지만 우리를 공동 내에 외존시키는 것이 스스로 말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너에게 달려 있다.”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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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곰곰반_선우아빠) ( 2021-04-13 13:34:56 (3년전)) 댓글쓰기
공동육아와 공동체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심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같이 고민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렸다는 게 못내 아쉽습니다. 하지만 이게 우리의 끝이 아니리라 믿습니다.
럭키 ( 2021-04-14 11:05:06 (3년전)) 댓글쓰기
너무나 아쉽지만 또 만나요~야호~
보노 ( 2021-04-15 00:41:58 (3년전)) 댓글쓰기
달걀에서 곧 뵙겠습니다!
물방울 ( 2021-04-15 16:23:01 (3년전)) 댓글쓰기
공동체를 만들어 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공동체에서 한 경험 자체가 공동체이다.
저는 저 낭시의 책에서 야호가 인용해주신 부분 중에 저 부분이 가장 와 닿네요.

<공동체는 ~이래이래야 한다>가 아니라..제 경험 자체가 참나무라는 것. 그렇게 풀어보면 제가 경험한 참나무 공동체는 살아 있었고, 늘 웃움과 울음이 있었고, 기분 좋은 시끄러움 이었습니다. 야호한테, 깜빡한테, 윤지한테 참나무는 어떤 경험이었을까 궁금합니다.

원래 인사는 미리 해둬야 하는 거래요. 정말 그 시간이 오면 인사하느라 바빠서 정말 전하고 싶은 말을 잊게 된다데요. 야호가, 깜빡이, 윤지가 참나무에 가져다 준 즐거운 경험들, 함께 울고 웃었던 날들이 제 참나무 공동체 경험에 큰 부분으로 기억할께요.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무지개(시웅엄마) ( 2021-04-18 07:16:35 (3년전)) 댓글쓰기
시간내어 찬찬히 읽었습니다. 어렵지만 좋은 얘기들이 많네요. 참나무에 건네고 싶은, 나누고 싶으신 이야기인 거 같아요.
읽으면서 야호의 마음이 어떨까 생각해보기도 했어요.

야호, 깜박과 더 함께 보내지 못하고 헤어져야함이 아쉽습니다. 터전에서 윤지.. 못 본다니 많이 서운하고요. 나중에 또 만날 수 있기를 바라요.
귤나무 ( 2021-04-21 14:03:23 (3년전)) 댓글쓰기
몸건강히 잘지내시고요. 윤지야~ 항상 행복하고 좋은일만 가득해라.

추신; 야호~ 말씀해주신 옥상 방수는 꼭 신경써서 챙기겠습니다.
백곰(이솔아빠) ( 2021-04-23 16:59:47 (3년전)) 댓글쓰기
나는 단수가 아니다.
좋아하는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어구입니다.
매주말마다 아빠방에 함께 놀러가자 요청하여 준 야호! 자주 응답할 순 없었지만 그 요청이 항상 고마웠습니다.
낭시의 말처럼, 존재라는 것은 공간에 귀속되는 개념이 아니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저희가 윤지네를 생각하는 방향이 맞닿으면 그 안에서 관계가 지속되고, 이어져 나갈 수 있겠죠? 건강하십시오~ 자주 쳐들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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