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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산 자락 소녀의 '아들 학교 보내기'
작성자 : 싱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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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2-04-26 05:47:20 (7년이상전),  수정 : 2012-04-26 06:44:41 (7년이상전),  조회 : 157
나는 안양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안양에서 살고 있다. 30~40년 전 안양은 서울 사람도 잘 모르고 부산 사람도 잘 모르는, 그냥 작은 촌동네였다. 이곳은 구릉지대여서 관악산과 수리산 자락에 폭 싸여 있는 지형인데, 나는 수리산 자락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도 좀 사는 사람들은 관악산 쪽에,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수리산 쪽에 모여 살았는데 동안구와 만안구가 대충 이 지형에 맞다.

시골서 상경해 터를 잡고 살아가는 부모님들의 삶은 참으로 고달프고 힘든 것이었는데, 그 그늘 아래 지내는 우리 동네 아이들의 일상은 행복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집 앞 옥수수 밭에 오줌을 누고 그렇게 쭈그리고 앉아 떠오르는 해를 감상하노라면, 정말 '순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가 옆에 와서 오줌을 누었다. 남진희도 오고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는 어떤 여자 아이도 와서 같이 쭈그리고 앉아 말없이 있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멋진 장면이다. 또 여름밤이면 동네 아이들이 줄줄이 주전자를 들고 나와서는 고개 몇 개 너머에 있는 약수터로 물을 뜨러 가기도 했다. 달빛 밟으며 무덤가를 지날 때의 그 서늘하고 짜릿한 느낌이란 참으로 묘한 것이었다. 그 외에도 갖가지 아기자기한 추억들이 유년의 기억 속에 있다. 연애할 때 가끔 이런 얘기를 하면 남편은 퍽 낯설어했다. 대구 도심 한 복판에서 자란 남편에겐 이런 추억이 없단다. 공동육아를 선택할 때 우리가 만장일치를 이룬 건,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다른 서로의 성장배경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 후로 나는 가까운 거리에 있는 국민학교에서 친구들과 선생님들의 사랑을 받으며 잘 지냈다. 졸업식날은 정말 많이 울어서 얼굴이 퉁퉁 부었었다. 지금도 그 때 사진을 보면 내가 아니라 우리 엄마가 꽃다발을 들고 서있는 것 같다.ㅎㅎ 공부에 대한 압박이 느껴지기 시작한 건, 당시 비평준화 체제 아래에 있던 중학교 시절부터였다. 버스 타고 한참을 가야하는 인덕원 근처 중학교에 배정을 받고, 면도날을 껌 씹듯 한다는 7공주의 전설에 두려움을 느끼며 시작한 중학교 생활. 1학년 때는 담임 선생님이 매일 노래도 가르쳐 주시고, 공연도 준비해서 양로원 방문도 하고 재미있었는데 2학년 들어서는 정말 힘들었다. 체벌도 많이 하고 무섭기만 하던 담임 선생님, 도시락 두 개씩 싸 들고 터질 듯한 버스에 매달려 가던 등교길, 저녁 8시까지 이어지던 야간 자율학습, 집에 오면 밤 9시, 밥 먹고 숙제하면 밤 11시. 피곤한 일상 속에 '88올림픽'과 '젊음의 행진', 그리고 이문세의 노래가 우리의 유일한 낙이자 삶의 즐거움이었던 그 시절. 나는 정말이지 학교 가기가 싫었다. 그래서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조퇴를 하거나 수학여행을 안 가기도 했다. 그래도 공부는 착실하게 했다. 왜? 난 착한 아이였으니까. 얌전하고 성실한 아이의 이러한 부적응을 그 때의 담임 선생님은 어떻게 기억하실까.

여상을 졸업한 난 은행에 입사했다. 운 좋게도 본사로 발령이 나, 적성에 맞는 재미있는 일들을 많이 해 보았다. 사보도 만들고, 보고서도 작성하고, 임원들의 일정을 관리하기도 했다. 그리고 공부도 했다. 글을 쓰고 싶기도 했고, 성우가 되고 싶기도 했고, 방송쪽에서 기획이나 연출 일을 해 보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정말, 공부라는 걸 시작했다. 그냥 해야되는 공부가 아니라, 꼭 하고 싶은 공부. 그걸 하기 위해서 나도 수능이란 걸 보기로 했고, 퇴근 후 노량진 학원가에 가서 입시과정을 들었다. 그렇게 한 1년쯤 치열하게 공부하고 대학에 갔다. IMF 초입이었다. '민심이 흉흉한 이 때에 안정적인 직장을 박차고 나오는 일이 과연 현명한 일인가' 하는 고민도 있었지만, 나를 아끼던 분들의 걱정과 우려를 뒤로 하고 퇴사를 결정했다. 그리고 그 결정으로 인해 지금의 내가 있다.

지금 나는 국어 교사다. 내가 다른 과목의 교사가 되었을 수도 있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아주 오래 전부터 내가 좋아하던 과목이었기 때문에, 내가 한번 쯤 해 보고자 했던 일들이 이 교과와 교직이라는 일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나는 조금 돌고돌아 이 직업을 선택했다. 그리고 만족한다. 가끔은 무척 힘들 때도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 잘 할 수 있는 일, 보람을 느낄 수는 일들을 매일매일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나는 내 아이도 이런 스토리 속에서 이런 선택을 하길 원한다. 남편은, 그건 옛날에나 가능했던 일이라고 한다. 그 사이에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고, 우리의 선택으로 인해 아이가 힘들어질 수도 있다고 말이다. 남편의 말이 맞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또 내가 좋아하는 어떤 사람은, 내게 주어졌던 결핍의 상황들이 오늘날의 나를 만든 것일수도 있다고 한다. 내 아이의 상황은 또 다르다는 것이다. 내가 가장 고민하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금까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어릴 땐 맘껏 놀아야한다는 것, 학령 전반기엔 강요된 것들로 인해 배움의 기쁨을 잃어서는 안된다는 것, 학령 후반기엔 강렬한 동기가 생겨야 한다는 것. 정도다.

공립학교도 대안학교도 교육의 목표는 같다. 방법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건 학교만의 문제가 아님이 자명하다. 나비의 말마따나 사회구조의 문제다. 그래서 일단은, 내가 얻은 결론을 기준으로 내 아이와 내 가족에게 맞는 학교를 찾아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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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동산(엄정우빠) ( 2012-04-26 09:32:58 (7년이상전)) 댓글쓰기
나비와 싱글이 두분의 글이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하네요.

자신의 성장과정에 느낀 것부터 아이들이 행복하게 공부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어지는 그 흐름이...
아이들에 대한 깊은 사랑으로 전해지네요.
강산이 민준이를 비롯한 아이들 모두가 정말 행복하게 잘자라길 바라는 마음 간절해집니다.

아이들이 경쟁할수 밖에 없는 사회나 교육 현실이 안타깝기도 하구요...
그래도 행복하게 열심히 공부할수 있는 길을 찾을수 있도록 돕고싶기도 하구요...
정답은 없지만 그런 고민과 사랑이 아이들의 힘을 키워줄거라 믿습니다.

민준엄마 진솔한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땅콩희찬엄마 ( 2012-04-26 09:42:40 (7년이상전)) 댓글쓰기
진솔한 싱글이의 성장일기와 생각 잘 읽었습니다...나비..싱글이에 이어 이젠 저의 성장 스토리를 들려드려야 하나요..ㅋㅋ..
다경태인아빠 ( 2012-04-26 10:15:10 (7년이상전)) 댓글쓰기
강산 엄마와 민준 엄마의 글을 읽고 감동이 밀려 오네요..
우리 애들을 대안 학교에 보낼 때
다경 태인 엄마는 고민을 많이 하였지만,
나는 두 엄마와 같은 깊이 있는 고민은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좋은 어깨동무 선배들과 같이 한 것이 기쁨을 느꼈는데,
이렇게 훌륭한 후배들과 같이 어깨동무 생활을 했다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리본(주연맘) ( 2012-04-29 19:39:39 (7년이상전)) 댓글쓰기
글을 읽으면서 "내게 주어졌던 결핍의 상황들이 오늘날의 나를 만든 것일 수도 있다고 한다. 내 아이의 상황은 또 다르다는 것이다"는 부분에 공감을 했는데...혹시??
싱글이 (2012-04-30 22:14:45 (7년이상전))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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