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커뮤니티 가입하기

카운터

Today : 16
Total : 528,787
산어린이집 설립기 (퍼온 글)
작성자 : 혜원엄마
  수정 | 삭제
입력 : 2002-04-15 14:30:11 (7년이상전),  조회 : 703
산어린이집 설립기 (퍼온 글)



작성자 김상신 (shykss)
번호 5
조회수 210
작성일 2001-11-09 오후 4:06:52

산어린이집 초대 이사장이자 현재는 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 사무총장이신 황윤옥 선생님께서 쓰신 글입니다. 함께 읽어보았으면 해서 여기에 옮겨놓았습니다.


1. 부천의 공동육아협동조합 만들기

우리가 처음 모인것은 96년 10월이었다. 그 후 7개월여의 과정을 거쳐 97년 5월6일 문을 열었다. 그리고 개원후 4개월여. 하나의 조합이 생길때마다 얼마나 많은 영웅담과 미담이 있었으랴만 우리도 소설 한권은 족히 쓰고도 남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은 우리의 개국설화(?)는 아니다. 우리가 조합을 만들면서 선행조합들의 경험 자체가 매우 큰 도움이었기에 우리도 우리의 경험을 객관적으로 나누고자 함이다. 특히 새로 조합을 만들고 있는 사람들은 우리가 목말라 했던 부분을 마찬가지로 겪고 있을 것이므로.

우리의 과정은 대략 세부분으로 나누었다. 우리의 구체적인 일의 진행보다는 그때 우리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했는지를 중심으로 담았다.

초기에는 물론 조합원들을 열심히 모았다. 처음에 연락을 담당한 사람을 중심으로 각종홍보를 통해 조합원들을 모았다. 초기조합원의 결속력이 조합 전체의 결속력과 이어지므로 조합결성에 대한 서로의 이해는 필수적이다. 우리는 초기조합원이 17가구로 비교적 빠른 시일안에 모였기 때문에 초기의 안정감을 확보할 수 있었다. 어떻게 결속력을 높였는가. 별 수 없다. 만나는 수 밖에. 좋은 이웃을 만드는데는 내가 먼저 마음과 집을 여는 게 제일 빠르다. 동시에 앞으로 하고자 하는 일이 공적인 일임을 분명히 했다. 일정 가구수이상이 모이고, 서로 마음이 모아지고, 공동육아의 기본이념(함께 키운다는것)에 서로 동의하고, 공적인일에 대한 인식이 서로 모아지면 이제 본격적으로 진행할 때가 된 것이다.

중기에는 조합의 기본틀(출자금, 보육료, 터전 등)을 짜는 시기이다. 준비위, 혹은 각 소위가 결성되고 조합원 전체의 총의를 모아야 할 일과 준비위 등에서 할 일을 나누었다. 이때가 최초의 고비인것 같다( 왜 최초냐고? 공동육아의 고비는 요소요소에 잠복해 있으니까). 시간도 많이 들고 지치고 합의할 사항은 너무나 많다. 출자금도 민감하고 터전은 막막하다. 일하는 사람과 사정상 시간을 내기 어려운 사람이 나뉘어지는 것도 이때이다. 회의할 일이 많으므로 부딪칠 일도 많고 공동육아가 이런것이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고 빛나는 미래가 보장된 것도 아니다. 공동육아의 사춘기(?)라고나 할까? 이때를 무사히 넘긴 우리의 아주 평범한 비결은 서로 격려하기, 내가 힘든 만큼 다른 조합원도 힘들다고 느끼기, 힘들게 힘들게 터전을 구하는 것으로 우리는 개원 준비로 들어갔다.

개원준비의 가장 핵심은 교사와 터전공사이다. 우리는 거의 집을 새로 짓는다고 봐야할 형편이었다. 공사에서의 우리의 원칙은 맡은 사람의 선택에 절대 복종하기, 예를 들어 벽지의 경우 개원하고 한달만 지나면 무슨 색이었는지도 가물가물한데 그때는 누구나 한마디씩 자기 의견이 있다. 이 대목은 효율성이 빛을 발해야 하는 시기. 교사연수는 개원준비의 핵심요소이다. 우리는 터전을 계약하자마자 교사를 구하고 교사연수를 위해 조합의 힘을 다 쏟았다.

개원이후가 또 한번의 고비. 이제 터전이 만들어졌으니 허리띠 풀러놓고 한숨 쉴 수 있을 것 같지만 어림도 없다. 개원은 또 다른 시작일 뿐이다. 개원이후의 조합원들의 결속과 조합운영의 체계를 위해 우리가 집중한 것은 산들꽃(우리의 회보로 2주마다 한번씩 나오기때문에 소식지 구실을 톡톡히 한다)발간이다. 회보가 조합원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매개체가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조합과 교사회와의 관계 정립하기. 이 부분은 워낙에 성실하신 선생님들과 막강한 원장선생님 덕분에 순조로왔다. 그러나 구체적인 일이 발생할 때마다 원칙을 세워서 일을 풀어나가기 위해 지금도 긴장을 놓지않고 있다.

2. 조합을 만들고 운영하며 우리가 얻은 몇가지 교훈들

[1] 조합이 반드시 지켜야할 원칙을 명확히 하자
공동육아는 매우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다. 살아온 과정이나, 현재 생활의 형태, 그리고 육아에 대한 생각도 다양하다. 공동육아를 하게되는 동기도 나름대로 다 다르다. 게다가 조합 형태의 조직이므로 모두 같은 권리를 갖는다. 따라서 공동육아를 해나가는데 반드시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원칙은 처음부터 서로 합의를 해야한다. 출발부터 합의한 원칙에 대해서는 뒷탈이 없고 그 합의사항이 그 모임의 성격을 분명히 해주기도 한다. 우리의 경우는 통합교육을 실시한다는 것, 특기교육을 따로 하지않는다는 것, 터전과 출자금과 교사선정은 만장일치로 한다는 것 등을 전제로 했다.

[2] 전체 조합원의 총의를 모으자.
공동육아를 하겠다고 나설 정도의 사람이면 자기 의견 하나는 분명하다. 그러니 회의에서 자기가 생각한 것 만큼 얘기를 다 못하면 불만이 속에 쌓인다. 특히 초기에는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형편이므로 아무리 작은 결정이라도 조합원 전체의 동의가 매우 중요하다. 원시적 민주주의라고 해야할까. 우리는 함께 모여 토의하고 결정하는데 공을 많이 들였다. 특히 많이 이야기한 사항은 터전과 출자금이었다.

터전의 경우 처음에 우리가 염두에 두었던 곳에 대해 회의 할 때마다 결정해야할 사항이 있었다. 결국 그 곳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면서 그동안 우리가 결정했던 사항들은 부질없어졌지만 우리에게는 다른 것이 남았다. 어떤 논의사항에 대해 토의하고 결정하는 틀이 잡힌 것이다. 이것은 지금까지 우리의 매우 중요한 자산이다. 조합원들이 전체 토의에 붙여야할 일과 개인적인 감정상의 일을 구별하고 전체 총회에서 결정된 일에 대해서는 승복할 수 있게 되었다.

[3] 공동육아는 사회적 책임이 따르는 일이다
임신 8개월의 임산부가 어린아이를 유괴하여 죽였다. 필경 제정신이 아니었을(?) 여자 하나가 저지른 일이 우리에게 끼친 영향은 만만치가 않다. 경찰의 초기검문에서 그 여자가 빠져나갈 수 있었던 것은 임산부였기 때문이란다. 그러니 앞으로 모든 검문에서 선량한 임산부들이 제대로 보호받을 수 있을 지 걱정이다. 경찰은 임산부들도 다 용의자로 보여 닦달할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우리들 마음이다. 사람이 싫어진 것이다. 사람의 본성이 무엇인지 의심스러워진 것이다.

사람이 하는 일이 그 개인 하나로 끝나는 일은 매우 드물다. 원하건 원하지 않건 사회적 의미가 있다. 그래서 공동육아에는 사회적 책임이 따른다. 내 아이만 예쁘게 잘 크면 되는 일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함께 잘 커야한다. 다른 아이들과 부모들에게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으면 더욱 좋다. 나아가서는 우리의 육아현실을 바꿔보자는 것이다. 우리 아이 하나 초둥학교때까지 잘 지내면 된다고 생각한다면 공동육아 자체의 성패가 의심스러워진다.

더구나 지금은 공동육아로 치면 초기이다. 조합원 하나하나의 행동이나 말이 공동육아에 대한 인상을 결정짓는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이 보여주는 모습이 다른 부모들에게 용기를 줄 수도 있고 실망을 하게 할 수도 있다. 이 점을 조합원 전체가 공유해야한다. 공동육아니까 좋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에서 모였다가 내 생각과 틀리니까 헤어지는 식이어서는 이땅의 건전한 육아문화는 멀고도 험하기만 하다.

조합안의 시선이 아니라 바깥의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 볼 필요가 있다. 이 점에서 강동지역 이사장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매우 요긴했다. "조합이요? 조합은 지역의 몫이죠. 초기 조합원들은 조합을 잘 만들어서 뒤에 잘 남겨주어야죠."

[4] 소외는 서러움을 낳고 서러움은 화병을 낳는다.
소외만큼 사람을 서럽게 하는것도 드물다. 더구나 아이의 일로 모였는데 어느 것 하나 생각없이 지나쳐지지 않는게 당연하다. 그러나 마음과는 달리 일이 계속 진행되다 보면 시간을 내기 힘든 경우도 있고 회의에 참석을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이런때 결정사항을 제대로 전달받지 못하면 생각이 복잡해진다. 나만 학연이 없는 것 같고, 결정사항에 다른 의견이 있어도 속만 끓인다. 앞서서 일을 하는 사람과 직업상, 형편상 시간을 내기 힘든 사람, 초기 조합원과 후발 조합원 사이에 특히 확률이 높다.

우리는 이 점을 특별히 경계했다. 끊임없이 서로 이야기하고 아무리 작은 정보라도 나누었다. 일의 진행상황을 그때그때 공개하는 것은 물론 기본이다. 여기에서는 어린이도서전문점을 하는 조합원의 공이 컸다. 그 서점은 준비기간 내내 우리의 장터요, 휴게실이었다. 누구든지 그 곳에 들르면 조합의 진행상황과 고민을 알수 있었다. 집도 개방하고 입도 개방하자!(수다는 매우 요긴하다. 지나가는 얘기도 나만 모르면 속상하다. 같은 일화를 전화로 하루에 여섯번 이야기한적도 있다.)

[5] 아이들과 직접 생활하는 사람은 교사이다.
어린이집의 교육은 전적으로 교사의 몫이다. 공동육아조합을 만들다 보면 조합원을 모으고 터전을 구하는 일이 워낙 힘들어서 정작 교사부분은 뒷전으로 밀린다. 터전 계약하고 나면 갑자기 내일 당장 개원할 수 있을 것같은 기분이 들지만 개원준비공사가 또한 만만치가 않다. 이래저래 교사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논의할 틈이 없다. 우리도 그랬다. 교사가 중요하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실제적으로는 터전구하는데 애를 태우느라 진지한 논의를 못했었다. 또 언제 계약될지 모르니까 교사를 먼저 선정해 놓을 수도 없다. 그러니 결국 터전 구하자마자 그때부터 교사를 구하게 된다. 물론 공동육아연구원의 현장학교를 믿고 편하게 생각한 면도 있다. 그러나 현장학교로만은 교사 전부를 구할 수 없다. 공동육아의 확산 속도만큼 현장학교의 배출인원이 따라가주지 못하는 점도 있고, 이미 어린이집 교사가 된후에 교육을 받는 인원도 많기 때문이다. 공동육아연구원의 현장 학교가 교사부문을 확실하게 담보해주지 못하는 것은 공동육아 전체로 봐서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어쨌든 우리도 단 한명도 추천받지 못하였다. 결국 우리가 독자적으로 광고를 하여 교사를 구하기로했다. 신문에 광고를 하고 면접날짜를 잡았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교사의 기준은 무엇인가. 우리에게 그 기준을 가려볼 눈은 있는가. 제일 시급한 것은 원장의 선정이었다. 공동육아의 교육방향을 정하고 교사회를 결성하고 교사들을 이끌어가는 것 모두가 원장의 몫인데 정작 사람이 없었다!

위기였다. 조합원을 모을 때도, 터전이 없을때도 힘들기는 했지만 그건 우리 몫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우리가 해결할 수 없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엄마, 아빠들이 교육에 나서다가 우리 아이들이 낙동강으로 떠내려가는 것은 아닌가.

공동육아교사의 핵심덕목은 무엇인가. 전문적인 이론에 대해서는 아무도 자신할 수 없었기에 살아 온 경험을 바탕으로 하나로 정리했다. 인품 하나면 된다. 삶에 대해 긍정적인가. 변화에 대한 욕구가 있는가. 온화한가. 지금 우리는 우리의 결정에 스스로 감사한다. 우리 선생님들은 어느 조합원의 말마따나 우리에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원장선생님 얘기를 안할 수가 없다. 조합원들의 거의 절대적 존경을 받고 있는 우리의 코뿔소! 신입교사 면접관으로 오신 이말순선생님을 붙잡기위해(?) 우리는 절절하게 호소하고, 또 호소했다. "다른 것은 조합에서 다 할 수 있다. 그러나 교사 교육은 조합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초기 교사 교육은 우리에게 너무나 중요하다. 앞으로의 성패가 달려있다. 교사교육만이라도 맡아달라. 단 3개월만이라도 맡아주시면 감사하다." 과장이 아니었다. 실제로 우리는 절박했다.

결국 사람좋은 이말순선생님께서 석달간 교사 교육을 맡아주시기로하셨다. 만세! 은평구에 살고 계셨고, 다른 일도 하고 계셨으므로 출근은 일주일에 하루만 하기로 했다. 조합에서는 개원 이후에도 토요일에는 휴원하였다. 원장선생님의 교사교육을 보장하기 위해서 였다. 어느 조합원은 토요일마다 아이를 이곳 저곳으로 돌려가며 맡기면서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다.

지금 원장선생님께서는 일주일에 이틀 오시지만 며칠 오시는가는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그냥 `우리의 원장선생님'이다. 원장선생님께서는 정말 열심히 해주셨고 말이 이틀이지 시간이 나기만 하면 오셔서 개원초기의 중심이 되어 주셨다. 원장선생님과 선생님들과의 화합은 환상적인 경지였다.

왜 이렇게 교사 얘기를 오래 하는가. 교사가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이들때문에 시작한 공동육아이다. 아이들이 터전에서 잘 지내면 힘든 일이 있어도 참고 넘길 수 있다. 그 아이들을 직접 돌보는 사람들이 교사이다. 조합은 틀이자 받침이 되고 교사회가 생생한 내용이 되어야 한다. 조합과 교사회와의 관계가 명확히 정립되어 있고 서로 존중할 수 있어야 터전이 평화롭다. 실제로 개원 3개월만에 조합원 단합대회를 했을 때, 많은 조합원들이 공동육아의 기본 부담에 대해 어려워하고 다른 조합원들에게 미안해 하기도 했지만 아이들의 모습에 대해서만은 대만족이었다. 선생님들 얘기만 나오면 좋아서 입부터 벌어지는게 우리 조합원들이다. 신입교사 연수나 초기 교사교육 등에 들인 우리의 노력에 대한 열매는 참으로 달았다.

[6] 앞 선 경험들은 피가 되고 살이 된다.
처음 우리가 공동육아를 해보겠다고 모였을 때 개원한 조합들은 다 위대해 보였었다. 일을 진행하면서 이미 개원한 조합들은 우리의 위안이었다. `이거 정말 되기는 하는 거야?'라는 의심이 들때마다 앞선 조합들의 존재는 그 자체가 우리의 미래였고 우리의 힘이었다. 우리는 부지런히 배웠다. 재미난어린이집, 소리나는어린이집, 튼튼어린이집, 날으는어린이집 등 그때 우리에게 시달린 조합들에게 정말 감사드린다. 덕분에 우리는 많은 어려움을 피해갈 수 있었다. 공동육아 조합의 결성과정은 아주 특수한 지역을 빼면 비슷비슷하다. 따라서 조합원들의 고민도 비슷하다. 먼저 해본 조합의 경험들을 우리의 조건에 맞춰 해결책을 찾으면 요긴한 도움이 된다.

[7] 효율성의 유혹에 넘어가지 말자.
공동육아를 하다보면 뭐 하나 쉽게 넘어가 주는 것이 없다. 출자금도 그렇고 터전도 그렇다. 터전을 구하러 다니다보면 이돈 가지곤 어림도 없지, 출자금을 더 올려야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조합원이 얼마 모이지 않았을 때이면 더욱 그렇다. 또 좋은 터전을 발견하면 모인 사람들 몇몇이서 우선 계약부터 해놓고 싶어진다. 그러나 욕심이 앞서면 항상 무리가 따른다. 이때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공동육아는 협동조합이라는 것이다. `빨리 빨리'보다 `함께'가 우선이다. 조합원들의 이해와 지지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후에 그만한 대가를 치른다.

개원이후에도 마찬가지이다. 이사진들은 눈이 항상 터전에 가 있으니까 해야할 일이 금방금방 보이고 마음도 급하다. 그러나 뒤에 있는 조합원은 심리적 거리감이 더 클수 있다. 일의 속도는 맨 나중의 신입조합원의 정서에 맞추는 것이 좋다. 원칙과 안전에 관한 문제만은 빼고 말이다.

[8] 사람과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
중간에 우리가 예상했던 터전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었다. 지금은 이 한줄로 줄일수 있지만 그 때의 황당하고 막막함이란! 우리가 처음 모인때가 처음 10월이었는데, 사용불가결정은 다음해 3월에 났다. 6개월동안 우리가 했던 토론의 대부분은 터전사용을 위한 사항들이었다. 터전을 포기하기로 한날, 조합원들의 전화가 빗발쳤다. "괜찮아요? 우리는 괜찮아요" 처음 터전의 사정상 터전주인과 내가 계속 일대 일로 만나서 일을 진행했었는데 조합원들은 나의 상심을 걱정해 준 것이다.

3월에는 개원할 수 있는 줄 알고 아이를 임시방편으로 이쪽저쪽에 맡기고 있었던 조합원들이 한둘이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터전을 포기하면서 우리가 나보다 다른 조합원들을 먼저 떠올릴 수 있었다는 것, 이것이 우리의 진정한 저력이었다. 이후 다른 터전을 구하러 다니면서 (터전을 구하는 과정의 어려움은 생략하자. 어느 조합인들 터전을 구하기까지의 영웅담이 없겠는가) 우리는 "진짜 조합원"이 되어갔다. 모두가 나섰다. 지역도 불투명해지고 돈도 부족하고 집도 없고. 당시 우리가 얻은 부동산정보로 웬만한 부동산 소개소 하나는 차리고도 남았으리라.

문제는 터전 구하는 일이 소모전이라는 것이다. 다 함께 하지않으면 지친다. 그때까지는 옛 터전주인과 내가 만나서 이야기된 사항을 토의하여 결정하면 되는 것이었었다. 구조상으로는 좋은 체계가 아니었고, 일이 잘못된 후 일방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도 있는 구조였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를 걱정하고 함께 책임지면서 일을 잘 풀어나갔다. 터전을 구하는 동안 아무도 탈퇴하지 않았다! 그 불투명한 시기를 넘기며 우리는 하나의 조합으로 묶였다. 동지애가 생긴 것이다. 우리 부천조합에 대해 이야기할 일이 있을 때마다 나는 정말 `부천 사람들'에 대해 말하고 싶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갖고 있는 `신뢰'에 대해 말하고 싶다.

지금도 그렇다. 우리를 생각하면 마음이 든든하다. 아직은 공동육아를 경험했다고 조차 이야기하기 짧은 기간이다. 그러나 우리는 감히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성공할 것이다.'라고


 
댓글쓰기
No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11
2007년 산어린이집 교육계획 [1] 코뿔소 2008-03-17 246
10
산어린이집 소개입니다. 버섯돌이 2007-12-20 1059
9
산집오시는길 안효찬오은희 2007-11-11 2014
8
산집소개 리플렛 떡볶이 2005-10-31 1194
7
산어린이집 하루 일과표 코뿔소 2005-08-11 1273
6
산어린이집의 교육-전체조합원 교육때 발표용(2003.11.22) 코뿔소 2003-11-23 886
5
2003년산어린이집 교육계획안 코뿔소 2003-11-23 1174
4
산집자랑하기 코뿔소 2002-04-19 1263
3
부천 공동 육아 협동조합 산어린이집 소개 (작성자 박영순) 혜원엄마 2002-04-15 1462
2
산집 선생님들의 내공을 소개합니다 (''코뿔소이야기''에서 퍼옴) 혜원엄마 2002-04-15 847
1
산어린이집 설립기 (퍼온 글) 혜원엄마 2002-04-15 703
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