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공원이나 기념관이 아닌 학살 터를 직접 여러 곳 다녀봐서 그런가, 현재와 내가 감히 이해할 수 없는 4.3의 그 시절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상상해보았다. 정말 조금 내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니 그만큼 크게 상상할 수 없었다. 피 범벅이가 되어있을 땅, 돌, 나무, 건물 들.. 이런 약간의 상상과 현재 속에서 조금 애매모호한 감정을 느꼈다.”
“4∙3사건을 공부하면서 더 깊이 알아가서 좋았지만 더 알아가서 그런지 더 슬프고 더 아팠다.”
“무등이왓 학살터를 돌아보며 설명을 들었다. 어디에 뭐가 있었고, 누가 살았고, 언제 누가 죽었고, 그래서 어떻게 살아남았고 하는 것들을 너무나 자세하게 설명해 주셨다. 알기는 쉬웠지만, 그래서 더 느끼고, 이해하고, 상상하는 게 어려웠다. 무섭고 쉽게 그려지지 않는 일이었다.”
“웃으면서 꽤 담담하게 이야기 하시는데 그렇게 웃으며 이야기 하실 때까지 얼마나 긴 인고의 시간을 보내셨을까?”
위 글들은 평화기행을 하며 아이들이 쓴 하루이야기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제주를 방문하기 전 4.3에 대해 공부하면서, 이 정도면 충분히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말처럼 그곳을 방문했을 때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생존하신 분의 얘기를 들으면서 쉬이 말문을 열 수 없습니다. 역사의 현장으로 가까이 다가갈수록 안으로 울려 퍼지는 까닭모를 메아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언어로 표현되어질 수 없는 슬픔과 고통들을 삼켜버리고 담아둘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푸르고 아름다운 제주의 바다와 하늘 아래 수많은 슬픔들이 묻혀 있었다는 걸 알게 되어 더 먹먹했던 것 같습니다. 관광지와 유적지로 선을 그을 수 없는 제주에서, 기쁨과 슬픔도 이렇게 한데 어우러져 우리네 삶이 된다는 걸 어렴풋이 느끼고 왔습니다. 기억은 잊혀지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에, 더 안간힘을 내어 붙들어야한다는 걸. 언제나 그랬듯 역사는 망각 속에 겸손히 되살아난다는 걸. 그래서 평화는 지금 여기서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이란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