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마를 시작하며
2년차 조합원으로 아마를 처음 하는지라 설레기도 했지만, 사실 걱정이 앞섰습니다. 주연이가 저의 무지개 역할을 이해해주고 도와줄까? 몇일전부터 제가 아마를 한다는 사실을 주연이에게 알려주었는데 주연이 하는 말 "주연이 아마 해.'라며 방 아마를 인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한 아마.
원래 덩실방 아마였으나, 주연이가 떨어지지 않으려고 해서 자민엄마와 상의해 도글방 아마로 바꿔 하루를 보냈습니다.
도글방 아이들은 등원 하원 때 자주 보고 방모임도 자주 해서 무척 익숙하고 친근한 아이들입니다. 아침열기를 마치고, 방에 모여 오늘 일정을 간략히 확인하고(대공원 나들이 가자!), 먼저 쉬하고 가야지 하니까 경남이가 제일 먼저 화장실로 달려가서는 혼자 바지 벗고 쉬합니다. 다음은 효기.
2. 대공원길 나들이
도글방과 덩실방이 함께 대공원길로 나들이를 나갔습니다. 달리다가, 길가에 있는 나무 열매를 따다가, 버스정류장 의자에 앉아서 쉬다가, 쉬엄쉬엄 갔습니다.(대공원 입구까지 30분은 걸린 것 같아요.)
경남이가 달리는 형을 뒤쫓아 속도를 내다가 넘어져 웁니다. 손이랑, 바지 걷어 다리랑 다친데 없는지 확인하고, 토닥여주니 울음을 그치고 곧바로 또 뛰어 갑니다. 효기는 긴 나뭇가지를 주워 길가에 서있는 나무 위로 팔을 쭈욱 뻗어 나뭇잎에 닿으려고 애썼습니다. 결국 성공! 주연이는 키가 작아 폴짝 뛰어서 닿습니다. 그사이 아이들은 저만치 먼저 갔습니다.
대공원 입구 오르막을 오르는데 갑자기 경남이가 "힘내라. 효기 힘내라."하면서 응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응원에 힘받은 효기가 언덕을 뛰어서 오르고, 여러 아이들 뒤따라서 뛰어서 도착했습니다. 매실차 한잔("더 줘!"를 연발하는 아이들, 3~4잔은 마신 것 같아요.) 먹고, 잠시 앉았다가 근처 나무 아래에서 놀았습니다.
율이는 요즘 저한테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 봐~라." 오늘은 이것보라더니 주운 밤을 보여주고, 길가에서 딴 나무열매를 보여주었습니다. 해맑게 웃으면서. 무척 귀엽습니다. 아이들이 몰려서 놀이하는데 혼자 앉아 있기도 하고, 뭔가를 찾으러 혼자 돌아다니기도 하고, 그러다가 어울려 놀기도 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헬리콥터가 지나가니까 효기가 "헬리콥터다."라며 발음도 정확하게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효기 비행기 타봤어?" 물어보니까. "응, 2번, 제주도 갈 때 타봤어."랍니다. "재밌었어?" "응, 재미있었어. 추석에 또 탈꺼야." 효기와 최근 들어 가장 긴 대화를 나누며 돌아왔습니다.
3. 점심식사
돌아와서 손씻고 점심을 먹었습니다.(밥이랑 반찬이랑 너무 맛있더군요. 저는 배고파서 3그릇 먹었습니다.)
북어국에 마른새우볶음이랑 김치랑 깻잎이랑 반찬을 반찬그릇에 나누는데 주연이가 시작하고 아이들이 달라붙어서 서로 반찬을 나누겠다고 안달입니다. 반찬그릇을 모두 채우고 밥을 먹었습니다. 율이는 바로 국에 말아 먹기 시작했고, 아이들 모두 마른새우볶음은 잘 먹었는데 깻잎과 김치는 잘 먹지 않더군요.(효기는 정말 다 잘 먹습니다.) 모두들 먹는데 관심은 없고, 이야기하고, 장난 치고, 새우볶음 반찬그릇에 덜며 형님들 다 먹고 과일 먹을때까지도 다 못먹어서 결국 제가 돌아가면서 먹여주었습니다.
4. 낮잠과 오후활동
제가 있어 그런지 주연이가 잠을 자려 하지 않아서 덩달아 다른 아이들도 말똥말똥, 웅성웅성, 뒤척뒤척하더니 30분 정도 지나 경남이-효기-주연이-율이 순으로 잠이 들었습니다. 효기가 제일 먼저 일어났고(2시 30분에 자서 4시쯤 일어났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4시 30분까지 잤습니다. 주연이 빼고 모두 엎드려 자더군요.
오후에는 마당에서 자전거 타고, 모래 놀이하고, 책읽으면서 지냈습니다.
5. 아마를 마치며
오늘 하루 종일 주연이 신경을 써야 했습니다. 나들이 가다가 넘어진 아이를 안아줘도 자기 안아달라고 하고, 손잡고 걸을 때도 제가 다른 아이들 손 잡지 못하게 하고, 책도 자기 책 읽어야 한다고 하고... 그래도 그러다가 말고 많이 참아주는 것 같아 고마웠습니다. 오후에는 저 신경 안쓰고 놀더군요.
경남이는 마냥 어려보였는데 나들이 가면서 보이는 모습이나, 밥먹는 모습이나, 터전 생활하는 모습이 많이 컸다는 느낌입니다. 제게 가끔 날려주는 '살인 미소'와 두툼한 입술로 '주연 아빠' 불러주면 너무 귀엽습니다.
효기는 우는 걸 본 적이 없습니다. 넘어져도 울지 않더라구요. 효기는 표정 변화가 별로 없고, 말 할 때마다 미소를 짓습니다. 어울려 놀다가도 어느순간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집중합니다. 밥 잘먹는 모습이 정말 이쁩니다. 표현은 아직 서투르지만 좋아하는 것에 대한 눈빛은 참 깊습니다.
율이는 어려서부터 보면서 오래전에 이미 많이 컸다고 느낀터라 말하는 모습이나 크게 웃는 자연스런 모습이 많이 익숙했습니다. 저와 대화도 많이 나누었습니다.
사실 오늘 하루 무척 힘들었습니다. 일일아마의 위치에서는 아이들을 보고, 듣고, 느끼는 것보다는 아이들을 보살펴주는 것에 머무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번째 일일아마라 익숙하지 않아서 그랬을까요? 주연이에게 "아빠 일일아마 또 할까?" 물어보니까 "또 해야 돼!" 하더군요. 어쨓든 주연이도 아빠와 같이 있어 좋았나봅니다. 다행입니다.
큰 깨동이들. 정말 고생이 많아요.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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