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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준이의 꿈
작성자 : 싱글이
  수정 | 삭제
입력 : 2011-05-18 05:26:06 (7년이상전),  수정 : 2011-05-18 05:31:19 (7년이상전),  조회 : 354
"나, 요즘 꿈이 재미 없어."
"무서운 꿈 꿨어?"
"응. 옛날엔 사슴벌레도 나오고 했는데, 어떨 땐 무서운 꿈을 꾸고 어떨 땐 슬픈 꿈을 꿔."
"슬픈 꿈? 어떤 꿈인데?"

이렇게 시작된 대화에서 드디어 민준이가 돌아가신 할아버지 얘기를 했다.

“어, 엄마가 대구할아버지를 데리고 병원에 갔는데, 피곤하다고 누우는 거야. 근데 엄마가 달님을 발에 차고 있어.”
“달님? (동그라미를 그리면서) 이렇게 생긴 달님?”
“응. 동그랗게 생겼는데 (지그재그를 그리며) 이렇게 뾰족뾰족하고, 뒤에는 종이처럼 생겼어.”
“음... 그렇구나. 그런데 민준이는 어디 있어?”
“엄마랑 같이 갔는데, 내가 만지려고 하니까 달님이 막 화내면서 ‘이놈, 혼날래’ 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옆에 못갔어. 슬펐어.”
“할아버지는 어디 계시고?”
“어, 엄마가 달님을 발에 차고 있으면 대구할아버지는 수영장에 가서 놀아.”
“수영장?”
“응, 수영장에서 잠깐 놀다가 와. 그리고 엄마는 달님을 벗어.”
“그리고, 그리고 또 어떻게 됐어?”
“할아버지가 수영장에 또 가면, 엄마가 또 달님을 발에 차는 거야. 그래서 슬펐어.”
"그런데 조금 있다가 사슴벌레가 그 달님을 찢었어. 그래서 괜찮았어.“

알 듯도 모를 듯도 한 이야기들을 조각 맞추기 하면서 내가 짐작한 것은 이랬다.

‘할아버지를 보내면서 죽음이라는 것에 대한 구체적인 느낌들이 생겨났구나
엄마가 죽을까봐 겁이 나는구나.
할아버지가 보고싶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하는구나.
누군가가 이 두려움에서 너를 구해주었으면 하는구나.‘

“우리 민준이, 엄마가 하늘나라 갈까봐 걱정되는구나”
“응.”
“엄마는 오래오래 민준이랑 함께 있을 거야. 이 다음에 아주아주 꼬부랑할머니 돼서 머리가 하얗게 되면 그 때 갈 거야.”
“싫어. 가는 거 싫어. 일부러 가면 속상해.”
“일부러 가는 사람은 없어. 하늘나라가 아무리 좋아도 일부러 가는 사람은 없어.”
“정말이야? 왜?”
“사랑하는 사람들하고 못 만나잖아. 그래서 아무리 재미있고 좋아도 일부러 가지는 않아.”
“그렇구나.”

그리고는 내 팔을 꼭 안고 잠이 들었다. 난 민준이 꿈에 나타난 것들. 흔히들 원형상징이라고 말하는 것들(달, 해, 물)이 주는 메시지를 생각하며 한동안 잠들지 못했다. 민준이의 꿈 속에 '풍덩'하고 빠져볼 수 있다면, 민준이의 생각과 느낌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텐데...하면서 말이다.

어제 민준이는, 반나절동안 애지중지 돌보던 방아벌레를 집 앞 화단에 묻어 주며 통곡했다. 마음 아파 쩔쩔 매는 민준이를 안고 같이 하나님께 기도했다. 다음 달에 사슴벌레로 다시 태어나게 해 달라고, 그래서 다시 만나게 해 달라고. 눈물 줄줄 흘리며 기도하는 민준이를 보면서 마음이 짠했다.

상실의 아픔과 두려움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는 우리 민준이, 지금은 또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부디 슬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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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나리 ( 2011-05-18 05:55:58 (7년이상전)) 댓글쓰기
민준이의 마음이 넘 예쁘네요.엄마의 마음이 민준이에게도 꼭 닿을 겁니다.~~~
둠벙(영호엄마) ( 2011-05-18 09:16:16 (7년이상전)) 댓글쓰기
마음이 아프기도하고....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고마워(윤선맘) ( 2011-05-18 10:51:12 (7년이상전)) 댓글쓰기
섬세한 민준엄마에 감탄하고...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이 생각나기도하고...

아침동산(정우) ( 2011-05-18 11:01:20 (7년이상전)) 댓글쓰기
아이들 꿈은 특별한 것 같아요... 민준엄마, 꿈이야기 잘들어주시네요...
알듯 모를듯한 이야기를 정확히 보시는 것 같아요..^^
넓은들판에 작은샘 ( 2011-05-18 11:03:30 (7년이상전)) 댓글쓰기
민준이가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어서 얼마나 좋았을까~~ 엄마, 짱!
산태공(여진아빠) ( 2011-05-18 11:32:48 (7년이상전)) 댓글쓰기
여진이 생각이나내요. 철없는 여진엄마가 별 쓸대없는 예기를 해서 여진이를 한참 힘들게 했지요. 엄마 아빠 죽으면 여진이하고 효주하고만 남아있으니까 잘 지내야한다 라고 했던거같내요
그뒤로 여진이하는말 엄마 즉어? 아빠 죽어? 이말을 2~3개월 했던 기억이 그게 올 초입니다 엄마 아빠는 안죽는다 평생 같이 있을거다 뭐 이런말만 했지요 그러더니 어느순간 안물어보내요..ㅎㅎ
자스민(여진엄마) (2011-05-18 12:40:43 (7년이상전))
참나...내가 뭘 힘들게 했다구. 내가 좀 철이 없긴 하지.수유를 하는 관계로. 그렇찮아도 빈혈약 먹고 있다우..ㅋㅋ 그런말 한건 여진이가 동생 스트레스로 자꾸 성질내고 해꼬지 하고 하니까 동생은 소중한 존재다 라는걸 그렇게 표현한건데, 의도치 않은 반응이 나타난거지뭐...
아침동산(정우) (2011-05-19 09:34:59 (7년이상전))
아이들이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필요한 것이 아닐까요? ^^ 모든 살아있는것은 언젠가는 죽는다... 이정도는 설명해 줄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
별(지후엄마) ( 2011-05-18 16:47:14 (7년이상전)) 댓글쓰기
가슴이 짠~ 하네요....
복숭아 ( 2011-05-19 11:01:42 (7년이상전)) 댓글쓰기
개구장인줄만 알았는데 이런 여린 심성을 보게되네요^^
귀기울이는 민준엄마 모습보면서 제모습을 돌아보게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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