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8일
오늘 발표를 하는 날이다. 아이들은 이 시간을 어떻게 기억할까? 자신이 이 발표에 부여했던 의미만큼 성취감과 좌절감을 가질 텐데. 일단 발표 전에는 늘 그렇듯 불안 긴장 초조로 인해 정작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고 아무 생각도 없어지는 그런 전형적인 모습을 보인다.
오전에 새나의 영화 발표를 했다. 가져간 노트북과 여기 빔이 서로 연결을 할 수 없어서 사무실을 왔다갔다 하면서 정말 절박하게 의사소통을 했다. 어찌어찌 연결하는 잭을 스태프가 구해 와서 연결을 했는데...인식이 안 되는 거다. 부랴부랴 아이덱 사무실에 있는 노트북을 가져와서 연결을 하고 영상을 틀었는데...이번에는 소리가 엉망이었다. 앞 부분에 영어 자막을 넣은 것도 흰 화면에 흰 글씨라 잘 보이지 않았는데 소리도 잘 들리지 않으니 사람들 답답했을 거다. 그래도 다행히 뒷 부분은 소리도 조금 크게 나고 자막도 어느 정도 보여서 잘 마무리가 되었다.
오후에 산식당 발표를 했다. 마지막까지 피피티 수정하고, 발표 연습하면서 정말 대회 출전하는 선수처럼 초초하게 기다렸다. 이윽고 시간이 되어 세팅을 하고 기다리는데...생각보다 사람들이 오지 않는다? 오전에는 그래도 꽤 왔었는데. 세시 반에 시작하기로 했는데 세시 반에 온 사람은 한두명이었다. 당황스러웠다. 그러고 보니 새나의 영화와 신영이의 페미니즘은 각자들 포스터를 만들어 붙였는데, 정작 산식당 발표에 대해서는 제대로 홍보를 하지 않은 거다. 그 사실을 우리 모두 놓치고 있었다. 지난 1년간의 과정을 정리 발표하는 중요한 자리였는데. 아이들 중 발표를 담당하는 팀이 챙겨야 할 일이긴 했지만 나 역시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급하게 아이들이 나가서 사람을 모으기는 했지만, 예정보다 늦게, 적은 인원이 모인 채 시작할 수 밖에 없었다. 많이 안타까웠고 당황스러웠다.
발표는 순조로웠다. 감정이 이입된 내 입장에서야 저녀석 지금 엄청 긴장해서 떨고 있는게 다 보이고 조마조마했지만, 어쨌든 큰 실수는 없이 발표를 했다. 아이덱 스태프의 노트북에 파일을 옮겨서 피피티를 여니 한글 폰트가 바뀌어서 나왔고 조금 당황스럽긴 했지만 어쨌든 발표에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발표가 끝날 때쯤 보니 그래도 한 15명 정도 들어와 있었다. 그리고 들어온 사람은 적었지만 질문은 무척 많았다. 특히 뉴델리에서 온 교사 한 분이 무척 질문을 자세하게 이것저것 하면서 큰 관심을 보였다. 덕분에 발표에 담아내지 못한 여러 이야기들을 좀 더 자세하게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박수와 찬사가 이어졌다. 의례적인 것이 아닌, 진심으로 우리의 이 과정을 칭찬하고 감탄하는 반응들. 말할 수 없는 감동이었다. 아이들도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급기야 그 교사분은 우리 모두에게 아이덱 티셔츠를 선물하고 싶다면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서 정말 모두에게 티셔츠를 사 주었다! 그리고 우리의 발표가 너무나도 좋았는데 조금 적은 사람만이 들어서 아쉽다고, 유튜브에 이 내용을 올려주면 좋겠다는 다른 분도 있었다. 살짝 울컥했다. 정말로 이 사람들에게 고맙고 감사했다.
질문 중에 ‘아이들이 프로젝트 과정에서 지쳐버리면 다시 어떻게 힘을 받게 하나?’라는 질문이 있었다. 힘든 과정도 배움의 일부이고, 여러 과정을 통해 성취감을 느끼면서 지쳐버림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기른다...라는 식으로 블라블라 했는데, 내가 완전히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이 지치고 힘들 때 힘을 받는 원동력은 지지와 격려, 그리고 사랑이다. 여지껏 나는 그것에 참으로 인색한 교사였다는 생각이 들면서 우리 학생들에게 정말 정말로 미안해졌다. 가장 중요한 것을 충분히 주지 못했기 때문에. 이 곳에서 여러 사람들에게 수많은 칭찬과 격려를 받으며 봇물 터지듯 하루가 다르게 멋져지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니 더욱 그렇다.
정말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그 깨달음을 준 것은 바로 이곳, 아이덱에 모인 사람들이다. 타인의 노력에 진심으로 기꺼워하고 열렬히 격려하며 자신의 것 또한 마음껏 발산하고 즐기는. 우리 학생들이 그간 얼마나 열심히 잘 살아왔는지를 그들이 내게 가르쳐 주었다. 성민이가 발표 마무리에 얘기한 소감이 모든 것을 대변한다.
“죽을 때까지 이 시간을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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