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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펌]자유교육에 던지는 의문 몇 가지 _김희동
작성자 : 달콤
  수정 | 삭제
입력 : 2009-02-10 21:16:35 (7년이상전),  조회 : 118
[통권 50호] 자유교육에 던지는 의문 몇 가지 _김희동

[기획 | 자유와 교육] 자유교육에 던지는 의문 몇 가지

김희동 꽃피는학교 교장과 통전학림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양희규 선생님께
선생님 평안하신지요. 학교를 금산으로 옮겨 가신 뒤론 아직 선생님을 뵙지 못했군요. 들리는 바로는 금산이 자연풍광도 교통편도 사람인심도 모두 좋다는데 이름이 말해주듯 아름다운 곳이겠지요. 언제나 청년이신 선생님이 택하신 곳이니 그곳에는 이름보다 더 멋진 비전으로 가득 차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5년 전 영국에서 돌아와 여기저기서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받고 어디로 갈까 고민하고 있을 때 선생님께서는 대안학교를 세우고 운영하는 일에 참여해보라고 하셨지요. 직접 학교를 해봐야 말이나 글에 힘이 있고, 학교를 운영하면서 겪게 되는 일이 우리를 비로소 철들게 해줄 것이라는 뜻의 말씀을 하셨어요. 그 말씀에 공감하여 하남에서 대안학교를 준비하는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지난 5년여 동안 별별 일을 다 겪으면서 천국과 나락을 수없이 오르내리며 마침내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집을 버리지 않으면 일은 더욱 꼬인다는 것과 선생님 말씀은 ‘너도 한 번 당해봐라’(^^)였다는 것을 말입니다. 저는 제대로 당했고 그 점에서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마터면 허황한 말들로 억장 무너지는 소리나 할 뻔했는데 인생을 진실하게 사는 법을 조금은 알게 된 듯합니다.
선생님, 새삼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민들레』 지난호에 실린 선생님의 글에서 자유에 관한 부분을 읽으며 뭔가 드릴 말씀이 있어서입니다. 마침 이번호의 특집 주제이고 해서 현병호 선생도 자꾸 부추기는군요. 예민한 주제라 조심스럽습니다만 고충을 나누며 혜안을 얻어보자는 심정으로 이 글을 씁니다. 승부 근성도 없고 논리도 변변찮은 제가 선생님하고 논쟁을 벌일 생각은 조금도 없어요. 그저 다른 생각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싶은 정도랍니다. 만에 하나 우리 사이에 의가 상한다면 차라리 없던 일로 하고 그냥 지금처럼 사이좋게 지내요.

예전에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지요. “김 선생님은 초등 전문가니 초등학교를 세우는 일에 전념하고 그 이후는 우리 간디학교와 같은 중고등학교를 전문하는 곳에 맡기시라.” 틀린 말씀이 아닙니다. 저도 어떻게 중학과정 학교까지는 세웠지만 고등과정 학교는 적잖이 걱정이 됩니다. 그래서 간디학교와 자매결연을 맺어 연계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한때는 정말 진지하게 생각해보았죠. 하지만 결정적으로 자유와 발달에 대해서는 선생님과 많은 견해 차이가 느껴졌습니다.
저는 발달과정에 따라 온전하게 자라도록 돕고 싶은데 자유교육은 발달과정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느낌이 들어요. 모든 시기에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다는 듯이 아이들을 만나고 벌써 다 자란 어른인 양 높은 판단력을 요구하는 것을 참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디다. 누구나 다 자라고 변하는 과정의 공통된 흐름을 지니고 있는데 자유교육을 하시는 분들은 그걸 모두 뛰어넘으면서 경험과 자각의 오랜 과정을 평면화시켜 버리는 것을 봅니다. 그런 인식에 대해 건너기 힘든 큰 강을 느낍니다.
같은 대안교육을 한다지만 실은 관치교육보다 더 큰 간격이 우리의 교육관들 사이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는 단순히 추측이나 인식의 한계에서 비롯된 잘못된 이해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점들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어디서 차이가 생겨나는지를 분명히 밝히다 보면 오해는 걷히고 지금의 외형적 연대를 내면의 형제애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차이를 밝혀 거리를 두기보다는 차이가 있음에도 함께 할 수 있는 높은 의식으로 나아가고 싶습니다.

지난호에서 선생님께서 간디학교의 자유교육에 관해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간디학교 철학을 둘러 싼 가장 큰 이슈는 ‘자유교육’에 대한 것일 겁니다. 자유교육에 대한 오해와 편견은 니일 교장 시절이나 지금이나 여전합니다. 자유교육을 마치 아이들을 방임하거나 방치하는 교육쯤으로 이해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제멋대로 하도록 부추기는 게 자유교육이라 여기는 거죠.
자유는 선택의 자유인 동시에 책임을 의미합니다. 나 혼자 있을 때 누리는 자유와 또 한 사람이 더 있을 때, 또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할 때의 자유는 다릅니다. 나와 함께 있는 ‘그’도 자유이기 때문입니다. 내 자유가 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려면 나는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그 판단에 대한 책임을 질 때 서로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나와 우리가 모두 행복하고 자유로울 수 있도록 상황을 정확하게 읽고 판단하고 책임지는 힘을 키워주는 게 저는 ‘자유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 자유교육은 책임의 교육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유학교에 규칙이 많습니다. 하지만 자유학교가 다른 학교와 다른 점은 그 규칙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지키고자 하는 이들 스스로 만들었다는 데 있습니다.

선생님, 사실 ‘자유교육을 마치 아이들을 방임하거나 방치하는 교육쯤으로 이해하고 제멋대로 하도록 부추기는 게 자유교육이라 여기는 사람들’ 속에는 저도 있습니다. 서머힐을 처음 접하고 아이들이 아무런 제약도 없이 자기 하고픈 대로 마음껏 지내는 모습이 너무도 부러워서 그런 학교와 교육을 꿈꾸며 이 길을 들어섰던 지난날을 돌아보면 정말 저는 그런 교육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분명 그 학교에도 학생자치회나 니일의 금지사항들이 있었음에도 그런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지요. 아이들이 마음대로 하는 학교, 그런 학교를 꿈꾸며 ‘민들레만들래’라는 단체에서 저의 대안교육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 여정은 순탄치 않았고 아이들과 저 자신에 대한 실망 속에서 점점 자유교육에서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나쁜 사람들이 아님에도 서로 원망하는 사이가 되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저의 인격과 실력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런 점이 분명 있기는 했지만 원인은 인간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된 것임을 차츰 알게 되면서 저 자신을 용서할 수 있게 되었고 아이들에게도 훨씬 여유를 가지게 되었지요. 그제껏 아이들을 중심에 놓고 생각한다면서 실은 교육과 인생에 대한 저의 낭만적인 생각으로 아이들을 보고 있었더군요.
저와 같은 이들이 많습디다. 학생 중심이라지만 실은 어른의 의식 수준에 맞추어진 교육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어른이 좋다고 생각되는 것을 아이들에게 허용하는 식이죠. 이는 자유교육이나 통제교육이나 다 마찬가지라 보입니다. 아이들이 어떻게 발달해가는가에 초점을 맞추면 시도할 수 없는 일들을 시도하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음… 벌써 흥분했네요. 제가 이렇습니다.
하여튼 저는 선생님과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많습니다. 자유교육을 대표하시는 분으로 알려져 있으시니 더욱 그렇군요. 굳이 이름 붙인다면 발달교육이라 할 그런 교육을 시도하는 이로서 선생님과 대화해 보고 싶습니다. 사실 오래전부터 선생님을 꽃피는학교나 배움의숲 강연회에 초청하여 말씀을 들어왔지요.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 언제나 저는 가슴이 뜁니다. 말씀에 흘러넘치는 비전과 열정에 취해서 저도 정신없이 뒤쫓아 가고 있어요. 그러나 마지막 문턱에서 저는 걸립니다. 자유도 좋고 책임도 좋지만 아이들이 자라는 과정의 발달장면들이 너무 평면적이라는 점인 데서 딱 걸립니다. 열여덟의 고3 학생이나 열셋의 중1 학생이나 심지어 초등학생도 선택과 책임이라는 과제 앞에서는 의식의 발달과는 아무 상관없이 똑같은 존재로 서게 된다는 점이 무섭게까지 여겨져요. 그래서 저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좀더 듣고 싶습니다. 좀더 들어서 제가 잘못 생각한 점이 있다면 고치고, 선생님께서 잘못 생각하고 계신 점이 있다고 여겨지면 저의 말도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선생님, 몇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 질문이 좀 유치하더라도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어려운 말로 둘러가며 애매하게 말하기보다는 이해하기 쉬운 구체적인 사례와 말들로 묻고 답했으면 합니다.

첫째,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자신의 행동에 책임질 수만 있으면 뭐든 해도 된다고 보시는지요. 그렇게 보시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예를 들어 술, 담배의 경우는 다른 사람들에게 별 해를 주지 않지만 간디학교에서는 공식적으로 금지되어 있습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데 왜 금지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혹 19세 미만 관람불가 영상물을 학교에서 보여주시는지, 그렇다면 어떤 것은 되고 어떤 것은 안 되는지의 기준을 어떻게 잡아가는지도 말씀해주세요.
미성년자 규제에 관한 사회적인 합의를 존중하기 위해서라면 이제는 합의하지 않은 약속, 일방적으로 제시된 약속(규약)을 지켜야 하는가의 문제가 있겠습니다. 꽃피는학교에서는 최대한 대화하면서 설득하고 동의를 구하지만 그러한 사회적 합의와 규약을 마음대로 바꿀 수는 없는 일이라고 분명히 해두었습니다. 아직은 어려서 말이 없지만 고등과정에 올라가면 심각하게 시비가 붙을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으로서는 불만이면 직접 사회의 법을 바꾸든지 나가서 그런 학교를 만들든지 하라고 할 작정입니다만 그리 바람직한 대화법이 아니죠. 좀더 가치 있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도록 이끌고 무엇보다 내면의 절대명령인 양심을 기르는 게 대안이라고 생각하고 준비하고는 있는데 잘 될지 모르겠습니다. 선생님도 최근에 비슷한 일을 겪으면서 심경의 변화도 크셨던 걸로 아는데 자세한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둘째, 책임질 수 있는 행동을 할 수 있는 나이를 언제쯤으로 보시는지요. 태어나자마자 처음부터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질 수는 없겠지요. 초등 3학년 아이가 더 이상 공부하지 않고 프로게이머의 길로 나서겠다고 할 때나 중1 학생이 친구들과 어울려 다닌다고 집에 들어오지 않으려 할 때, 쉽게 허락하는 부모님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고등학생 나이가 되었는데도 인생의 길을 가로막고 있거나 혼기가 찼는데도 부모 품에 끼고 살려는 부모도 없습니다.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나이를 다들 어느 정도 정하고 있는 것이죠. 사안마다 다를 수는 있겠으나 대체로 자신의 행동이 가지는 의미와 영향력을 제대로 알 수 있게 되는 나이가 있음을 공감하지 않을까 합니다. 선생님은 어떠세요. 그런 나이가 있다면 언제쯤으로 보시는지,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도 알고 싶습니다. 아니면 내버려두고 기다리다보면 언젠가 제 스스로 알게 될 테니 나이 구분은 의미 없다고 보시는지요. 나이 구분이 필요하다고 보신다면 그 이전의 아이들에게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책임질 수 없는 아이들에게는 자유교육이 아니라 다른 교육이 이뤄져야 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자유교육의 초기과정이 있어야 하는 건지요? 그때의 교육요소 선정의 근거는 무엇이 될까요?

셋째, ‘하고 싶은 것을 하라’는 말이 ‘하고 싶은 것만 하라’는 뜻이 아닐 텐데도 그렇게 드러나는 모습을 보신 적은 없으신지요. 하기 싫은 것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 아이들도 있지 않나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늘 그런 모습을 보이는 아이들 말입니다. 그런데 하고 싶지 않지만 약속이나 집단의 요구 때문에 하게 되는 경우는 자발성이 얼마나 살아날지 모르겠습니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남을 위해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는 이들은 분명 더 높은 의식의 소유자들이라 여겨집니다. 자꾸 하다보면 하기 싫다는 마음도 옅어지고 오히려 즐거이 하게 되지요. 그래서 꽃피는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싫어해도 의미 있는 활동은 아이들에게 의사를 묻지 않고 교사들이 모범을 보이면서 함께 합니다.(물론 그런 결정은 신중하게 해야죠.) 하고 싶은 것을 존중하지만 ‘동시에 또는 먼저’ 올바른 것을 선택하게끔 이끌어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올바른지 아닌지는 누가 결정하는가 물으시겠지만 그 정도의 판단도 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어떻게 어른이라 할 수 있겠으며 더욱이 교사라 할 수 있을까요. 어차피 학교는 어떤 형태로든 가치를 전달하고 있으며 그걸 무시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다만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인격을 존중하는 동시에 우리가 옳다고 믿는 가치를 먼저 실천하고 설득력 있게 권하는 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질문이 애매하게 되었습니다. ‘하고 싶은 것만 하려드는 아이’는 어떻게 대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정말 끝까지 하고 싶은 것만 하려는 아이들 말이죠. 그런 아이들을 대하는 과정에서 나름대로 생각하신 점들을 듣고 싶습니다.

넷째, 비슷한 이야긴데 제 경험에서 비춰볼 때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남에게 피해 주지 않는 범위 안에서 행동하는 아이들은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집디다. 그럴수록 공동체성이 약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선생님의 경우는 어떠신지요. 말이 좋아 개인주의자이지, 우리 사회에선 ‘뺀질이’라는 말로 더 잘 통합니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말을 함부로 하며 강한 주장으로 말발 센 아이들은 감당키 어렵습니다. 손해 볼 줄도 모르고 희생하려 하지 않습니다. 피해를 주지도 받지도 않는 무시무시한 이들입니다. 인연의 연결고리들을 냉혹히 끊어버리고 독방에 자신을 가두어버립니다. 그것이 정말 자유로운 모습일까요?
저는 아이들에게 그럽니다. 서로 신세지며 사는 것이 인간사라고 말이죠. 아내가 저 없을 때 형광등을 갈아 끼운 적이 있었습니다. 제 자리가 줄어드는 것 같아 마음이 조금 섭섭하더군요. 학교 숙소에서 세탁기를 혼자서 돌릴 수 있음에도 굳이 집에까지 빨래를 가져갑니다. 아내 고생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혼자서 척척 해결하는 것이 이상하게 이제는 싫어져요. 공부할 때도 서로 묻고 의지하게 합니다. 자립심 못지않게 의존심도 필요한 덕목이라 여겨져요. 하지만 자유주의는 책임의 범위를 지우느라 이기적인 계산을 하게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내 일에 상관하지 말라는 투의 표현을 들으면 정이 떨어져요. 정도 없이 무슨 맛으로 인생을 사는가 모르겠어요.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태도는 오히려 우리를 어색하게 합니다. 적당히 부담을 주고받으며 얽혀가는 게 우리들의 삶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게 우리나라 사람의 정서가 아닐까 싶네요.
글을 쓰다보니 뭘 묻고 싶어 하는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묻는다기보다는 주장하고 싶은 거죠. 자유교육은 개인주의를 조장한다는….

마지막으로 사람을 어떤 존재로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결국 교육관의 문제, 세계관의 문제, 철학의 문제는 사람을 어떻게 보느냐로 돌아가니까요.
어떻게 들리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인간은 이 땅에 들어오기 전에는 본래 자유로운 정신 그 자체였으나 자신을 더욱 성장시키고자 물질이라는 한계, 인생이라는 제약 속으로 자발적으로 뛰어든 존재로 봅니다. 영의 존재가 물질을 입어 자아라는 혼을 가진다는 동서양 고금 의 종교적 깨달음을 따르고 있습니다. 의식의 진화를 향해 나아가는 존재라면 어떤 영이든 몸을 입기를 원하고, 이 몸이라는 한계와 인생이라는 시련을 통해 자신을 더욱 단련시켜가는 것이 인간의식의 진화법칙이라는 데 저는 깊이 동의합니다. 다리 근육을 발달시키기 위해 모래주머니를 차는 운동선수처럼 우리는 부자유를 전제로 하여 이 여행을 시작했다고 보는 거죠.
부자유라는 한계를 스스로에게 짐 지운 까닭은 우리가 자유로운 존재임을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욱 높은 의식을 얻기 위해서인 듯합니다. 어차피 우리는 본질적으로 자유로운 존재인데 굳이 자유를 확인하러 들어왔을 리가 없지 않을까 싶어요. 그렇다고 부자유를 유발하는 억압의 사회구조나 인식을 운명처럼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유를 찾는 것은 억압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텐데 우리는 본질적으로 억압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봅니다. 현실의 억압된 굴레를 벗어나 자유를 찾아 뛰쳐나가려 하지만 자신에 대해 올바르게 깨닫지 않는 한 그 굴레는 끝없이 우리를 속박합니다. 일반학교의 교육상황을 억압의 굴레로 점철되어 있다고 여겨서 뛰쳐나와 대안학교를 만들고 대안교육을 해왔지만 한동안 우리는 자신의 이상과 주장으로 서로를 속박하고 굴레를 씌우며 억압해왔지 않습니까. 저도 많이 그랬습니다. 무지한 시절이었지요.
자유를 찾는 한 자유는 찾지 못할 것입니다. 찾는 것을 그만 둘 때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닐까 해요. 우리 삶의 목적이 자유였다면 이 어리석은 인생여정을 시작했을 리가 없다고 믿습니다. 그게 아니라 자유로운 존재로서 이 제약을 선택했고 이 제약을 통해 더욱 높은 의식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것이죠. 그러므로 우리의 과제는 이 제약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심지어 즐길 수 있는 수준으로 높아지는 것일 겁니다. 모래주머니를 즐길수록 근력이 단련되고 더욱 잘 달릴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그래서 꽃피는학교에서는 지금 당장의 자유와 요구를 주장하기보다는 길고 긴 인생의 길에서 우리가 풀어야 할 삶의 과제가 무엇인지를 발견하게 돕는 데 집중하는 편입니다. 그 과제를 찾아나서는 여행길의 초반이라 할 수 있는 학교생활을 하는 동안 참된 것을 추구하고 밝고 긍정적인 기운을 한껏 품도록 돕고 있습니다. 저의 인간관이 이런 교육론을 낳았다면 선생님의 교육론을 낳은 인간관은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선생님, 질문들이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원래 주장이 강한 사람이라 생각지도 않게 남에게 상처를 주곤 합니다. 혹시라도 공격받는 듯한 인상을 받으셨다면 죄송합니다. 또 제 아이가 간디중학교와 간디자유학교를 연이어 다녀서 학교 사정을 잘 아는 처지라 입장 난처한 질문을 하고 싶지는 않은데 그렇게 되었을까봐 조심스럽습니다. 갈 곳 없는 아이를 거둬주신 것 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아이는 저의 걱정에도 아랑곳없이 잘 자라 제 인생의 여정을 제대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이 글로 제 아이의 모교에 누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오로지 그저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싶은 마음에 궁금한 심정을 늘어놓아 보았습니다.
선생님, 건강하십시오. 건강이 제일입니다.


2007년 3월 27일
봄이 오는 금정산에서 김희동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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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 ( 2009-02-10 21:18:48 (7년이상전)) 댓글쓰기
어제 민들레 읽기모임에서 함께 보았던 글의 전문입니다. 양쌤의 글도 함께 올렸습니다. 글자가 빼꼭...하네요.
원하선모 ( 2009-02-10 23:09:30 (7년이상전)) 댓글쓰기
우와왓~! 저걸어찌..멋쥐심니다
문영.영윤맘 ( 2009-02-14 03:19:44 (7년이상전)) 댓글쓰기
민들레를 매달 보지 않고, 소모임에도 안나가는 저에게는 좋은 정보입니다. 달콤샘 감사해요~~
오성민부 ( 2009-02-14 16:59:59 (7년이상전)) 댓글쓰기
많은 걸 생각하게 만드네요..아~~머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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