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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용산, 졸업식
작성자 : 달콤
  수정 | 삭제
입력 : 2009-02-22 21:07:17 (7년이상전),  조회 : 106

1.

“이상림 집사님은 요단강을 건너 천국에 가셨을 거예요”

서울시 용산구 한강로 3가 용산4구역 재개발지구에서 ‘희미용실’을 해 온 김희자(68)씨는 <한겨레21> 기자 앞에서 이렇게 스산하게 말했다. 1월18일 ‘한강갈비’ 사장님인 이상림 씨는 철거민대책위원장인 아들과 함께 남일당 꼭대기 망루로 올라갔다. 그로부터 만 하루 뒤 일흔한 살 할아버지인 그는 경찰청장 내정자인 김석기 서울경찰청장으로부터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 ‘도심 테러리스트’로 규정되었고, 전격 투입된 경찰 특공대의 진압 작전 도중 불에 타 숨졌다.




서울 순화동에서 ‘미락정’이라는 한정식집을 하던 윤용헌 씨는 12년 전 서울 길음동에서 옷가게를 하다 재개발로 한 푼도 못 받고 쫓겨났던 전력이 있었다. 그런데, 2005년 순화동이 재개발 될 때는 1,200만원을 받고 쫓겨났다. 오나가나 서러운 세입자의 삶을 끝장내고자 그는 전철련 활동가가 되어 온 철거 현장을 뛰어다녔다. 그리고 그는 지난 1월20일 새벽 용산에서 불에 타 숨졌다. 가족은 윤씨의 신원을 치아로 확인하려 했으나 주검의 입이 잘 벌어지지 않았다. 숨질 당시 고통이 너무 심해 이를 악물었기 때문이라고 유족들은 믿고 있다.




지난 겨울방학의 전반부는 몇 군데의 연수를 받으며 내내 즐겁고 벅찼으나, 1월20일 용산 참사 이후 그 생각으로 무겁고 슬펐다. 김석기, 신지호, 전여옥, 한승수, 이명박 이런 이들의 얼굴은 바라보기 두려웠고, 그들의 말은 듣기 끔찍했다. 1945년 해방 이후 몇 년간 백색테러가 횡행했던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빈말이 아니라, 내 삶의 방향이 지금처럼 빼도 박지도 못하게 규정되지 않았을 나이라면, 이 땅을 떠나고만 싶었다. 이 땅에 사는 일이 너무나 끔찍해서. 뉴스마다 나오는 사고 현장 화면, 시뻘건 화염으로 불타는 망루와 절규하는 농성자를 볼 때마다 그들의 육신을 태우는 살냄새가 배어나오는 것 같았다.




황우석이 몰락할 무렵, 정신 나간 한 무리의 지지자들이 그의 연구실로 향하는 길로 무궁화를 뿌려놓을 때도, 새만금 대법원 판결이 떨어질 때 환호하던 일군의 사람들을 보면서도, 평택 대추리가 경찰의 진압으로 엉망으로 박살난 것을 직접 봤을 때도 이렇게 아득하지 않았다. 그래서 겨울방학 보충수업을 하는 게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보충수업이 고마웠던 적도 이번이 처음이다.




2.

얼마 전 우리 반 아이들이 졸업을 했다. 졸업식을 마치고 교실에서 마지막 종례를 할 때, 지난 1년간 우리 반에서 찍었던 사진들을 교실 텔레비전 화면에 띄워 감상했다. 모둠 비빔밥 먹는 장면, 체육대회 응원하는 사진들, 수업 시간에 설정샷으로 찍은 엽기 사진들, 우리 반 졸업여행 때 재약산을 오르며 낑낑 거리는 몇 명 뚱뗑이들의 모습, 민박집에서 늦잠 자는 녀석의 추리닝 바지 위로 삐져나온 뱃살까지….




아이들은 폭소를 터뜨리며 책상을 둥둥둥 두들겼다. 돌아가면서 졸업 소감들을 나누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친구들아 우정 변치 말고 앞으로도 자주 만나자.” 요약하면 거의 이런 이야기를 가로세로 떠들었다. 거기 덧붙은 한마디씩들은 졸업이 두렵다는 것. 늘 떠나고 싶었는데, 막상 떠나게 되니 두렵다고 했다.




나도 마지막 훈화를 했다. 뇌종양 때문에 함께 졸업식에 참석하지 못하는 우리 반 친구를 먼저 이야기했다. 졸업식 전날 아이들과 함께 녀석의 집을 찾아갔다. 녀석은 병원 치료도 포기하고 집에 와 있던 중이었다. 두런두런 둘러앉아 어깨동무를 하고 함께 사진을 찍었고 다 큰 사내아이들이 녀석과 손을 잡고 이야기를 했다. 철부지 응석받이에다 게임에만 환장한 줄 알았던 녀석들이 이제 다 컸다 싶었다.




교단 앞에서 바라보면 아이들 눈망울은 하나같이 무구하다. 파마를 하고, 염색을 해도, 귀를 뚫고 화장을 해도 아이들은 하나같이 어리고 무구하다. 이 중에는 담배를 피우다가 교장 선생님께 발각된 아이도 있고, 쇠죽을 쑤느라 우리 반 졸업 여행에 오지 못하는 아이도 있다. 우열반 체제 속에서 평반인 우리 반은 겨우 네 명만이 지방 국립대학에 진학했을 뿐, 나머지는 전부 전문대나 4년제 사립대학엘 갔다. 가정 형편으로 곧장 공장을 다녀야 하는 아이도 둘이나 있다.




아이들은 많은 경우 게으르고, 어리석고, 무심하고, 자기중심적이고, 때로 난폭하지만, 근원적으로 선하다. 나는 이것을 추호의 의심 없이 믿고 있다. 길지는 않지만, 내 교직 인생의 결론이다. 교단에 서서 마지막 훈화를 하는 나는 이 아이들이 만날 세상을 생각한다. 막막한 슬픔이 밀려온다. 이들은 결국 이 세상 속에서 떠돌고, 찢기고, 조금씩 타락해가는 길만이 남아있는 것일까.




아이들을 세상으로 날려 보내는 자리에서 왜 이렇게 망측한 생각이 드는 것일까. 몇 년 전 나는 룸싸롱에서 웨이터로 일하다 다시 공장 노동자로 되돌아온 졸업생 아이를 만난 적이 있다. 특수부대에 자원하는 아이들도 만났고, 아프간에 파병 지원했다는 졸업생의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나는 용산 재개발 현장에 동원된 젊은 용역 아이들을 이해할 수 있다. 어떤 아이들이 어떤 경로로 그런 막장으로 흘러들어가는 지도 나는 알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당당하게 살자’고 했다. 그것은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가 내 대학 졸업식 때 점심상을 앞에 두고 나에게 해 주신 말씀이기도 하다. 별다른 유언이 없으셨으므로 나는 그 말씀이 아버지의 유언이라 생각하고 있다.


용산에서 최하 1조원대의 개발이익을 챙길 것이라는 삼성, 포스코, 대림들은 털끝만큼도 다치지 않았다. 세상이 그런 곳이다. 이제는 이 중에 누군가들은 경찰 특공대가 되기 위해, 철거 현장의 용역이라도 되기 위해 발버둥을 쳐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얘들아, 당당하게 살자, 이런 부당한 일에는 끼지도 말고, 물러서지도 말자, 나는 이렇게 말한다.




아이들은 나와 악수를 하고, 졸업장과 졸업앨범과 그리고 함께 만들었던 졸업 문집을 받아 들고 교실문을 나선다. 더러 눈물을 흘리는 아이도 있다. 나는 어깨를 다독여준다.

잘 가라 아이들아. 가르쳐 준 건, 없지만, 당당하게 살자. 힘없는 사람 망루 꼭대기로 몰아 넣고 불로 태워 죽이는 이 세상에서, 사람으로 살자. 당당하게 살자.

어지럽혀진 교실 책상을 정리하고, 텅빈 교실에서 운동장을 바라보면, 아이들은 조각배가 되어 출렁이고 있다.(우리교육 2009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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