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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모종과 잡초
작성자 : 아침햇살
  수정 | 삭제
입력 : 2005-05-11 23:04:51 (7년이상전),  조회 : 547

요즘 3,4학년 여섯 명의 주제학습 꽃밭가꾸기는 참 재미있습니다.
아이들은 어떤지 모르지만 제가 그렇습니다.
하나하나 알아가는 사실들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기억도 잘 하는지.

오늘은 드디어 아이들이 일구어 놓은 꽃밭에 꽃모종을 했습니다.
우현이의 채송화와 자령이의 분꽃은 아직 덜 자랐고, 세희의 나팔꽃은 아직 싹이 나지 않아 다음으로 미루고 우선 서영이의 코스모스와 광연이와 준동이가 씨앗을 뿌린 봉숭아를 옮겨 심었지요.
맨 뒤에는 제가 씨앗을 뿌린 해바라기가 이미 자라 지난 주에 모종을 했는데 떡잎이 누렇게 변하기 시작했지요.
“아침햇살, 해바라기는 벌써 떡잎이 누렇게 변했어. 자기 역할을 이제 다 했나봐”
자령이의 말이었지요.
떡잎의 역할에 대해 지난 번에 배운 걸 아이들은 기억을 하고 너도나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세희와 서영이는 사이좋게 코스모스 모종을 나누어 나란히 심었고 준동이와 광연이는 봉숭아 모종을 심고 친구들에게도 나누어 주었습니다.
조루에 물을 떠온 우현이는 자기는 채송화를 심을 거라며 자기 꽃밭에는 심지 않겠다더니 친구들이 파놓은 구멍에 연신 물을 부어주고 나중에 “나도 하나 심었으면 좋겠어“해서 마지막으로 남은 광연이의 작은 봉숭아를 한 포기 심었습니다.
아이들은 몇 십 센티 간격으로 자기 구역의 꽃밭을 만들었고 처음에는 자기 것만 심겠다더니 이제 이것저것 욕심을 냅니다. 그래서 키가 큰 것은 뒤쪽으로 심고 작은 것은 앞쪽으로 심고 자령이는 자기는 여전히 분꽃을 심겠다며 봉숭아 한 포기만 심었지요.
서영이는 2학년 문주와 꽃밭을 같이 가꾸겠다며 둘이서 약속을 했나 봅니다. 점심시간에 수빈이의 한련화를 두 포기 얻어 저더러 같이 심자고 해 셋이서 함께 한련화도 심었지요.
씨앗을 뿌렸던 파란 화분이 하나씩 비어가고 마당 여기저기에 많은 꽃들이 필 날을 상상해보니 저도 아이들만큼이나 마음이 설레입니다. 제 기분도 이렇게 좋은데 아이들은 어떨라구요.

꽃밭이 너무 작아서 어디에 더 꽃모종을 심을까 둘러 보다 우리는 들어오는 입구에 심기로 하고 잡초를 뽑기로 했지요. 모두 손에 호미를 하나씩 들고 꽃이 가득 펴 씨가 맺히기 시작한 냉이를 캐고 꽃이 다 져버린 민들레, 명아주 등 잡초를 뽑았습니다.
우현이는 잡초는 안 뽑고 구석구석을 다니며 민들레 홀씨를 따서 친구들에게 “후- ”하고 불었지요. 아이들은
“우현이 너도 잡초 뽑아야 꽃 심지”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대꾸도 않던 우현이는 민들레홀씨가 더 이상 없자 제가 내미는 호미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냉이를 뿌리까지 다 캐더니 냄새를 맡아보고는 제 코에도 “아침햇살 냄새 맡어 봐”하고 내밀었습니다. 열심히 일을 하던 아이들도 그제서야 모두 냉이를 캐서 코에 대어 봅니다.
“별로 냄새가 안 나는데”
“냉이가 늙었어”
“꽃 때문에 그런가”
“아침햇살 왜 냉이 냄새가 안 나지?”
“이것도 먹을 수 있어?”
아이들의 의미있는 수다가 계속됩니다.

“얘들아 지구의 주인이 누구인지 아니?”
“잡초”
아이들이 합창을 합니다.
“어! 어떻게 알았어?”
“지난 번 닫기 시간에 아침햇살이 그랬잖아”
“난 그거 사기 같은데”
“난 지구의 주인은 땅이라고 생각해”
“아냐 난 인간이라고 생각해?”

얼마 전 무슨 이야기인가 하다가 3,4,5학년 닫기 시간에 제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긴 하더라구요.
풀씨는 수억 년 동안 엄청난 두께로 흙 밑에 덮여있고 우리가 아무리 애를 써도 매년 끊임없이 나와 우리 인간이 절대로 없앨 수 없기 때문에 지구의 주인은 잡초라고. 또 나무에 못지않게 우리에게 산소를 제공해주는 고마운 존재이므로 우리가 꼭 필요할 때만 없애고 함부로 귀찮은 존재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그런 이야기들. 물론 저도 언젠가 책에서 읽은 거였지요. 그리고 우리가 풀이라고 부르지만 우리가 작물을 가꿀 때 제거해야 할 풀들을 우리는 잡초라고 부른다는 그런 이야기들을 한 기억이 났어요.
우리의 수다는 끝이 없었지요.
“우리가 캐낸 이 풀로 뭐할 건지 아니?”
“몰라”
“5학년들이 퇴비 만들 거야”
“천연비료! 천연비료는 땅을 살리고, 화학비료는 안 좋아”
책을 많이 읽은 우현의 정보가 위력을 발휘하는 순간이었지요.

그 많은 이야기들을 어떻게 다 기억하겠어요. 제 머리에 입력된 건 이 정도입니다.
저는 일을 하며 아이들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싸아-한 감동을 느낍니다.
아이들이 풀을 뽑은 그 자리에는 꽃씨가 남아서 제가 마구 뿌려놓은 코스모스도 자라고 있었고 과꽃도 싹이 나고 있었어요. 아이들은 그것들이 다치지 않게 조심해서 풀을 뽑았습니다.. 또 제가 시골집에서 캐다 심은 모종(가을들국화같이 생긴 꽃인데 이름은 아직 못 찾았음)에도 꽃봉오리가 생겨 있었지요.
그리고 3,4,학년 아이들이 뽑아낸 잡초는 뒤이어 5학년들의 텃밭주제학습 퇴비수업으로 이어졌답니다.

인터넷이 안되던 구식 노트북이 간신히 접속돼 이렇게.....아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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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돌 ( 2005-05-12 01:55:11 (7년이상전)) 댓글쓰기
아빠들살이때 일입니다. 주변 풍광에 취해 산을 오르는데 "사유지"임을 경고하는 푯말이 군데군데 눈에 띄더군요. "아니! 자연을, 땅을 한 개인이 배타적으로 소유한다는게, 도대체 말이 돼? "라는 불만섞인 독백이 절로 나왔습니다. ...."지구의 주인은 땅이라고 생각해". 아주 좋은 생각이네요. 지구에서 땅이야 말로 모든 생명을 잉태하고 양육하지요. 우리 애들도 땅위에서 부쩍부쩍 크는 소리가 들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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