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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제산방과후에 대하여 - 14 (처음 만들 때 이야기 - 마지막)
작성자 : 우보천리
  수정 | 삭제
입력 : 2020-06-16 16:09:50 (3년전),  수정 : 2020-06-16 16:21:21 (3년전),  조회 : 132

처음 만들 때 이야기 - 네 번째

 

옛날 이야기가 길어지면 지루하죠. 간단히 몇 가지 이야기들만 적고 옛날 이야기는 마무리하겠습니다.

 


우리 손으로, 주변의 도움으로 만든 방과후

터전, 아이들, 교사. 이제 봉제산방과후가 만들어졌어요. 그런데 할 게 너무 많았습니다. 터전에는 201415일 무렵에 들어갑니다. 지원금 예산이 2013년도분이라 계약은 전년도에 했는데 한 달 정도는 비워둔 채였습니다. 일찍 들어가봐야 할 게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원래부터 전세로 내놓은 잡이 아니라 팔려고 내놓은 집이라 관리가 안되어 터전에 필요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닌데 돈이 없었습니다. 재정사업이다 뭐다 해서 모은 돈은 협동조합 설립하는데 필요한 행정 비용으로 썼고, 남은 돈이 있다 하더라도 운영비로 쟁여놓아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도배는 경험많은 또뇨의 지휘 아래 아빠들이 직접 했어요. 화장실 세면대를 새로 하려고 용가리가 회사 근처에서 좋은 세면대를 아주 저렴하게 사서 직접 차에 싣고 오고, 전기 수리는 전기 전문가 그렇지가 시간 날 때마다 와서 했어요. 터전을 정리하고 났더니 안에 채울 게 또 부족하더라고요. 책상을 우선 10개 만들기로 했는데, 바람쐬다에서 달콤 지도를 받아 아빠들이 자르고 밀고, 붙이고 칠해서 만들었어요. 책상 만들 때에는 개구리에 다니던 엄마아빠들도 같이 도와줬어요


세탁기를 중고로 구했는데 세탁조 청소를 해야할 것 같았습니다. 다행히 다민아빠(방과후 설립은 같이 하고 집이 신정초 옆이라 멀어서 최종적으로 등원하지는 않은 집입니다)가 집에 세탁조 청소 도구를 사다놓으신 게 있어서 갖고 와서 직접 세탁기를 분해, 청소해주셨습니다. 에어컨도 중고로 가져왔는데 도담이 어린이집 친구인 세준네가 벽걸이 에어컨 하나를 준다고 해서 그 집(고양시)에 가서 가져와서 달았습니다. 냉장고가 필요했는데, 방과후를 다니려면 3년이나 남은-어쩌면 방과후가 3년 안에 망하면 들어오지 못할 수도 있었던-하준이네의 이모인지, 고모인지 하여튼 친척이 쓰던 냉장고를 준다기에 강북구까지 가서 받아왔어요


아이들이 풍물을 배우기로 했는데 악기가 없었는데, 씽씽이가 회사에서 얻어다 줬어요. 책장도 제가 쓰던 사무실과 다른 여러 군데에서 남는 걸 얻어서 왔고요. 일부는 사기도 했지만, 집에 있는 그릇, 수저, 장난감, 담요, 하다못해 커텐까지 집에서 가져다 날랐습니다. 책장에 꽂아넣을 책도 많이 얻어 왔는데, 봉봉도 어릴 때 보던 책을 수백권 갖다줬고, 저랑 정당 활동을 같이 하던 두 분이 각각 책을 몇 박스씩 주셨습니다. 지금도 쓰고 있을텐데 터전에 둘 구급함은 그 1년 전에 개구리어린이집을 졸업했던 유훈이네서 필요한 약품을 넣어서 잘 챙겨주셨습니다. 그 외 청소기, 밥솥, 놀이감 등등 주변에서 도움 받은 게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2014112() 당시 화곡8동에 있던 바람쐬다에서 처음으로 책상 10개를 만들었다. 달콤의 지도를 받아 또뇨, 용가리, 그렇지, 소걸음, 씽씽이 아빠 5명이 만들었고 참새가 아이들 밥을 해줬다. ‘원가로 따지면 사는 것보다 더 비싸다고 하지만 이 책상에 앉아서 아이들이 마음껏 책도 읽고, 그림도 그리고, 공부도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적었다. <방과후 홈페이지에 2014115일 소걸음이 올린 사진>

 



화곡본동 마을살이

방과후 만들 때 이야기에서 화곡본동 마을살이 얘기가 빠지면 안됩니다. 마을살이에서 참 많이 도와줬습니다. 20141(개원 전입니다) 화일초 예비소집일에 방과후 홍보를 하기로 했습니다. 처음으로 지역에서 홍보하는데 잘 하고 싶었는데 움직일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1학년인 집들은 학교에 가야 해서, 기주, 도담, 민욱 세 아이의 입학통지서를 제가 갖고 가서 세 아이 통지서를 하나씩 내고 왔습니다. 그 외 가능한 사람들을 화일초, 화곡초 정후문에 사람을 배치할 때 마을살이 청년들이 와서 같이 해줬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 마을살이에서 앞으로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들 주1회 체육활동으로 택견을 하기로 했는데 터전은 좁았습니다. 마을살이에 얘기하니 흔쾌히 빌려줬을 뿐만 아니라 택견 끝나고 아이들이 거기서 1시간씩 책 보고 쉬고 오는 것도 받아주셨습니다. 그때 방과후 다니지 않는 아이들 중에서도 택견하고 싶어하는 아이들도 같이 할 수 있게 해주면 어떻겠냐고 마을살이에서 제안해서 무조건 좋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신화가 방과후 다니기 전인에도 택견을 같이 했습니다. 아이들이 구엘, 신화(중학생 신화 말고) 등 청년들을 동네 형으로 잘 따라줄 정도로 마을살이에서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여담 한가지만 하자면, 마을살이 처음 만든다고 할 때 저는 마을살이 대표였던 연(전부터 알고 지내는 사이였습니다)에게 개구리어린이집과 바람쐬다가 있는 화곡8동에 만드시라고 제안했습니다. 그런데 연이 화곡본동에 마을살이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뜻하지 않게 방과후가 화곡본동에 들어서면서 마을살이와 같이 지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을살이가 제 제안대로 화곡8동에 갔다면 방과후가 그만큼 많은 도움을 받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참 묘한 일입니다.

 

마을살이의 구엘은 우리의터전이라는 방과후 노래도 만들어줬고, 방과후 개원하는 날 마을살이에서는 직접 만든 우리는 화곡본동이라는 노래를 불러줬습니다.

 

  

택견은 마을살이에서 했다. 방과후를 다니는 아이들 외에 다른 아이들도 택견은 같이 배웠다. 왼쪽부터 신화(방과후 다니기 전이다), 수현(수아 동생), 수아, 기주, 도담, 민욱, 승서. 수현이는 정식 멤버는 아니고 수아 누나 따라서 가끔 놀러 왔다 감.

 

 

마을 속으로

방과후는 마을 주민들과 함께 하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마을살이나 짬 같은 공동체 외에도 일반 주민들과도 함께 하고 싶었습니다. 그 일환으로 봉제산 생태공원 텃밭을 처음부터 같이 만들었습니다. 공원에서 놀더라도 우리 아이들끼리만 노는 것이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있으면 같이 놀았습니다. 방과후가 독자적으로 생태공원에서 어린이날행사를 시작(지금은 여러 공동체가 함께 한다)하고, 가을 볏골공원 축제에 모범적으로 참가하는 것이라든지 이런 모든 것들이 마을에 개방된 공동체, 이런 걸 추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신입을 받기 위해 홍보도 엄청 했네요. 구청에서 마을버스에 홍보해주기도 했지만, 소위 문어발을 동네 곳곳에 붙이러 다녔고, 현수막은 밤이면 밤마다 아빠들이 붙이러 다녔는데 100장은 안되고 50장은 넘었을 거에요. 근처 어린이집, 유치원에 홍보 전단을 우편으로 보내기도 했습니다. 석란어린이집에서는 우편으로 받은 방과후 홍보물은 각 가정에 나눠줬는데 그걸 보고 세정이네가 방과후 문들 두드렸습니다. 현수막을 보고 서우, 은규네가 왔습니다. 지인들에게 입소문을 냈더니 윤아엄마 고등학교 친구인 니나노가 하은, 건우를 데려왔고, 공공교에 난 소문을 흰구름이 듣고 아인, 예후가 방과후에 오게 되었습니다


2014년에는 개구리어린이집을 졸업한 남아 4명으로 시작했는데 2015년 시작할 무렵 남아 7, 여아 3명이 되었고 그 해가 다 가기 전에 하은, 건우가 들어왔습니다. 남녀 비율도 격차가 줄고 졸업한 어린이집, 유치원도 다양해지고, 다니는 학교도 무려 4(화곡초, 화일초, 신정초, 신월초)나 되었습니다. 학교가 4개나 되는 건 교사에게는 좀 힘든 부분이지만, 아이들이 다양한 소식을 접하고 경험을 하는데는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합니다. 2015년에 반일제 교사로 손잡고가 오셨다 그만두신 후 2016년 초에 드디어 구름이 교사로 오셨습니다. 이때부터가 방과후가 내부적으로 안정되고, 외부적으로도 지역사회에서 자리를 잡게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눈이 많이 내렸던 그 겨울, 마을버스 종점에 현수막을 걸고 있다. 주로 용가리, 그렇지, 소걸음 셋이서 현수막을 걸려 다녔다. 30분 달고 3시간 술을 마시고 들어가도 혼나지 않았던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화곡동 곳곳에 현수막 다는 건 아마 우리가 처음이었을 거야.

도배를 위해 또뇨가 벽지에 풀을 바르고 있다. 벽에 붙은 건 벽지가 아니라 사랑과 정성이다. 물론, 지금 하라고 하면 못 할 것이다. 아이들이 크는 동안 늙었다.

 

 

 

방과후가 개원 후 2년만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요인

20142월 개원하기 전까지 짧으면 1, 길면 3년 정도를 준비했지만 금방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개원 첫해 들살이를 자체로 갈 수 없어서 마포 친한친구방과후와 연합하여(라고 쓰고 끼어서라고 해석하는 게 정확하다) 갔었다. 그만큼 어려웠다. 사실 돈 문제는 둘째이고, 아이들, 조합원이 많이 들어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 문제를 넘어설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몇 가지 짚어보고자 한다.

 

첫째, 우리 손으로 직접 해내겠다는 열의가 있었다.

방과후를 만들어서 아이들을 같이 키우겠다는 것은 우리 문제였다. 그 문제 해결을 어디에 맡기거나 다른 누군가 해결해주리라 기대하지 않았다. 우리에게 나서는 문제를 우리가 직접 해결하겠다고 달려들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공공교에서도 선행 사례가 없지는 않았으나 소위 서민 주거지라는 화곡동 같은 지역에 방과후를 운영하는 사례는 드물었다. (지금은? 모르겠다.) 우리가 직접 조사하고 연구하고 학습했다. 지금은 당연해 보이는 그 하나를 만들기 위해 숱한 고민과 토론을 하고 우리 상황에 맞는 것을 찾고 만들어냈다. 단순한 희생과 헌신이 아니라, 우리 문제는 우리가 풀어야 한다는 책임감, 우리가 가장 잘 풀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지금와서 돌아보면, 마을기업으로 선정되지 않았더라도 했을 것이라 확신한다. 뭐 돈 좀 더 내고 고생을 좀 더 했겠지만은 말이다.

 

 

2014년 가을, 화곡8동 주민센터에서 열린 팔똥축제’(봉제산방과후가 같이 주최했다)에서. 내일신문에서 취재를 와서 기사를 실어주었다. 개인의 문제의식들이 잘 기록되어 있다. http://m.naeil.com/m_news_view.php?id_art=123219


 

둘째, 마을과 함께, 연대의 손을 내밀고 잡은 손 굳게 잡았다.

우리 힘으로 하겠다고 했지만, 우리끼리만 하려고 하지 않았다. 우리 외부와 기꺼이 연대했다. 일방적인 도움을 받는 관계를 원하지 않았다. 우리가 필요한 도움이 있으면 도와달라고 요청하고, 우리가 도와줄 수 있다면 흔쾌히 함께 했다. 주고받는 거래 관계도 아니다. 모든 것을 갖추지 않은 사람들이 서로 도와주고 도움을 받으면서 함께 연대하고자 했다.

 

개구리어린이집 아마들이 만들었지만, 담장을 허물고 지역사회, 마을, 다른 공동체와 끈임없이 함께 하려고 했다. 다양한 아이들과 아마들이 함께 하는 것이 아이들에게도 좋고, 아마들에게도 필요한 것이라 생각했다. 또래풀을 넓혀야 했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시간을 동네에서 보내야하는 아이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

교사에게도 중요했던 문제이다. 교사가 단순히 아이들을 돌보는 역할만이 아니라, 마을과 공동체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로서의 지향을 함께 갖도록 포지션을 잡기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었다.

 

셋째, ‘공동육아의 정신을 명확히 했다.

공동으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아이를 둘러싼 모든 이들이 힘을 합쳐서 키운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주력한 것이 둘이 있다. 그중 하나가 아빠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이었다. 나머지 하나는 내 아이가 아닌 우리 아이들을 보는 것이었다. 엄마든, 아빠든 그 누구든 우리 아이들을 같이 볼 수 있도록 많이 노력했다. 그 과정은 힘든 것이 아니라 즐거움과 배움이었고, 또 다른 사람에게는 휴식과 참여 보장으로 기억될 것이다.

 

2014817일 총회를 했다. 어쩌다 보니 엄마들만 전부 총회에 참가했다(사실 이러면 안된다). 엄마들이 회의하는 사이에 아이들은 아빠들이 부천로보파크에 단체로 데려가서 놀리고 밥멕였다. 아빠 넷이 아이들 여섯(83, 72, 61, 41)을 데리고 갔었다. 예정에 없어서 빵과 요구르트를 좀 사고, 누군가가 집에 있는 수박을 보내줘서 챙겨멕였다. 그까이꺼 뭐 아무 것도 아니다.

 

넷째, 함께 고생하면서 만들어왔던 이들의 헌신을 기억한다.

전인미답을 함께 걸어오고 있는 봉봉개원하는 날 상쇠를 해줬으며풍물을 가르치고 겨울이 오기 전 김장을 함께 했던 토끼. 우연하게 반일제 교사로 함께 했다 지금도 가끔씩 찾아오는 손잡고. 1회 수업을 위해 왕복 2시간 이동해야 했던 택견 사범, 무용 교사. 반일제 교사에서 전일제 교사로, 이제는 마을에서 아이들에게 공예를 가르치는 구름. 맛단지로 수고 해주셨던 정림. 가장 최근에 함께 해준 푸린. 이들의 수고는 봉제산방과후가 자리잡는데 최소 절반 이상은 기여했다. ‘공동육아의 공동에 최소 절반은 교사 몫이다.

 


방과후 홍보물에서 많이 본 사진이다. 2014년 여름 첫 들살이 때 사진인데 아이들이 엄청 많다. 그런데 저 많은 이들 중에서 5명을 제외한 모두가 친친방과후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이제는 우리 사람들만으로도 사진 꽉 찬다.

 

 

 

 

 

 


 

 

우리의터전




푸르른 나무 재잘재잘 지저귀는 새들
봉제산 품 속 우리의 터전

마당엔 텃밭 텃밭에는 굼벵이가 가득
즐거워 즐거워 우리의 터전

받아쓰기 수학숙제 너무 싫지만
터전 오면 나는 좋아 우리의 터전

간주

마당엔 텃밭 텃밭에는 굼벵이가 가득
즐거워 즐거워 우리의 터전

받아쓰기 수학숙제 너무 싫지만 '으악'
터전 오면 나는 좋아 우리의 터전

푸르른 나무 재잘재잘 지저귀는 새들
봉제산 품 속 우리의 터전
봉제산 품 속 우 리 의 터 전

 

 

* '우리의터전' 음성 파일을 첨부합니다.  


다음 차에는 방과후의 조직체계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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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새(도담세찬엄마) ( 2020-06-19 18:00:52 (3년전)) 댓글쓰기
마지막이 고마웠던 모든 사람들이라 읽으면서도 뭉클했어요.
우리 아이들과 공간이 이렇게 많은 사람의 수고와 사랑을 먹고 자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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