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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아침 풍경
작성자 : 아침햇살
  수정 | 삭제
입력 : 2005-10-12 21:35:07 (7년이상전),  조회 : 462
8시 10분 전,
저는, 출근을 하면 일단 문을 다 열어 환기를 하고 보일러를 켭니다. 요즘은 방바닥이 너무 차갑지요. 전 날 채송화가 세탁기에 빨아놓은 걸레를 널고 현관을 쓸고 마당에 종이도 줍고, 부엌에 물 가져다 놓고. 그리고 나면 혜원이가 "아침햇살"하고 마당으로 들어섭니다.(가끔은 함께 도착하거나 저보다 1,2분 먼저 도착하기도 하지요)
오자마자 혜원이는 사르비아꽃 따서 꿀을 빨아먹고, 토끼 먹이 주고(한 마리는 탈출했고 한 마리는 오늘 죽어서 광연이와 종은이와 영태와 수빈이와, 혜원이가 땅에 묻어주고 꽃을 꽂아주었습니다) 그러면 문주가 오고 영태가 옵니다.

요즘 우리 넷은 가을을 준비하느라 바쁩니다.
아침마다 배추밭에 가서 배추벌레를 잡아줍니다. 교사실 앞에 심은 배추는 닭이 다 쪼아먹었고 새로 나오는 건 벌레들이 다시 다 파먹었습니다. 부엌 옆의 것도 약을 안 주니까 벌레가 파먹기 시작합니다.
송충이 비슷한 것, 달팽이, 노린재, 연두색배추벌레들이 우리의 배춧잎을 파먹고 있지요. 매일 아침마다 배춧잎 사이사이를 뒤져서 두세 마리를 잡아 닭에게 가져다 주는데 대부분 힘센 수탉이 먹어 버린다는군요.

어떤 날은 꽃들에게 가서 내년을 위해 꽃씨를 받습니다.
손톱을 예쁘게 물들여주었던 봉숭아는 이미 줄기만 남았고, 분꽃도 거의 다 돼서 몇 송이의 꽃만 피어있고 까만 씨앗이 다닥다닥 붙었습니다. 매일 아침 분꽃씨를 열 개 이상 받아냅니다. 사르비아는 아직도 꾸준히 펴서 혜원이에게 꿀을 주고, 꽃고추는 소담하게 열려서 조금 쭈글쭈글해진 것은 문주가 따내 저에게 줍니다. 그게 씨앗이지요. 백일홍은 아직 자태를 뽐내고, 천일홍도 이름 그대로 조금 더 오래 피어있을 것 같은 모습입니다. 햇빛이 많은 곳의 과꽃은 시들어가지만 햇빛이 많이 닿지 않은 곳의 과꽃은 보라색, 분홍색 꽃이 지금 한창입니다.
이번 주부터는 봄에 뿌리를 갈라심어 넓게 펼쳐진 국화도 노랗게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꽃들이 다한 자리에는 여러가지 잡초들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땅은 언제 그렇게 많은 씨앗을 숨겨두었는지 자리공과 바랭이, 또 혜원이가 귀신같이 까만 열매를 찾아내는 까마중하며 여러가지 이름도 모르는 잡초들이 빈틈없이 빼곡하게 자라나는데 저는 이것들을 뽑지 않고 그대로 둡니다.
아이들은 가끔 이런 잡초들에게도 많은 관심을 갖기 때문이지요.
풀들이 다 자라고 나면 그 다음 풀들에게 자리를 내준다는 것을 저는 40대 후반에야 깨닫고 자연의 섭리에 감동을 받았는데 우리 아이들은 벌써 그런 것들을 알아갑니다. 물론 제가 느끼는 감동과 종류는 다르겠지만.

문주와 혜원이가 꽃밭을 떠나도 영태는 꽃밭을 떠나지 못합니다.
영태는 씨앗박사입니다.
어떤 상태의 씨앗을 받아야 하는지 어떤 게 무슨 씨앗인지 정확하게 압니다.
아침마다 관심을 가지고 저를 따라 다니며 꽃 연구를 한 탓이지요.
조금 가슴이 아픈 것은 목화꽃이 피려는데 꽃봉오리가 달린 줄기가 공에 맞아 부러진 거지요. 오늘 아침은 저에게 꽃봉오리를 보여주며 어찌나 섭섭해 하는지.
또 호박꽃이 피었다며 제 손을 잡아 끌기도 합니다.
영태가 심은 건데 겨우 15센티쯤 되는 호박 덩굴에 영태 손보다도 작은 호박꽃이 정말 피었습니다. 별처럼 예뻐서 둘이서 그 꽃을 한참 들여다 보았지요.
가끔 뒤늦게 금잔화가 한두 송이, 채송화도 어쩌다 한두 송이 피기도 합니다.
꽃씨가 떨어진 꽃밭에는 내년 봄에 나야할 봉숭아와, 한련화의 새싹이 벌써 자라고 있는데 그 싹들은 올해에는 햇빛이 적어 다시 꽃을 피울 수 있는 힘이 부족하다고 했더니 영태는 그래도 꽃이 필 거라며 여전히 기대를 버리지 않습니다.

며칠 전엔 5학년들이 심은 울타리콩을 따서 까기도 했습니다. 마당 한 가운데 쭈구리고 앉아 셋이서 콩깍지를 까는 모습이 어찌나 예쁜지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지요. 맛단지선생님이 호박죽에 넣어준다고 했습니다.

산학교마당 둘러보기의 행복은 달님차가 오면 깨어집니다.
달님이 오고 나면 영태는 형들에게, 문주는 세희에게, 혜원이는 달님에게 쪼르르 달려 갑니다.
그리고 하나 둘 아이들이 오고나면 시끌벅적
가을 아침, 산학교는 그렇게 시작이 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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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어 ( 2005-10-13 08:19:26 (7년이상전)) 댓글쓰기
아침햇살 선생님 잘 읽었습니다. 아침에 일을 시작하기전에 하루이야기를 읽는 것이 무척 행복합니다. 오늘 올려주신글은 더 행복하게 학교의 모습을 상상하며 읽었습니다. 오빠,언니, 동생들하고 엄마와 함께 살던 옛날이 생각나서 잠시 행복했습니다. 학교에 있는 모든것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넘 예뻐요. 그리고 그 것을 느끼고 .... 이야기하고, 이러한 것들을 알아주는 선생님들하고 함께하고 있다는 것이 더 행복하게 합니다. 감사합니다.
2프로 ( 2005-10-14 11:01:04 (7년이상전)) 댓글쓰기
가을 아침 풍경을 캠코더로 담고싶네요.
아침햇살 ( 2005-10-14 16:24:29 (7년이상전)) 댓글쓰기
오늘 아침엔 영태가 백일홍씨앗은 맨 아랫쪽에 모여 있다는 걸 알아냈습니다. 그건 정말이지 웬만한 관찰이 아니면 힘든 건데요. 아무도 관심갖지 않은 걸 알아낸 영태가 참 멋져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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