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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망이와 노랑이의 수영장의 물을 갈아치운 날
작성자 : plantinoid
  수정 | 삭제
입력 : 2005-08-06 16:49:16 (7년이상전),  조회 : 497
산학교 간 날(<2005.8.4.목>)

무척 더운 날이다. 스무살 전후의 젊은이는 털모자를 쓰고 지나가고 있었다. “우현이와 우제가 저런 꼴을 하고 다니면 어쩔래?” ‘그런 모습은 못 봐주지.’ 그런데 그건 차라리 봐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1쯤 되는 4명의 아이들이 두 대의 오토바이에 나눠타고 신호를 무시하며 한국전력 네거리를 질주하였다. 우리 차 앞을 획 지나쳤다. 위험천만한 행동은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성호르몬의 영향인가. 우제엄마는 구성애 아줌마가 저때는 성호르몬의 영향으로 판단력이 흐려지고 잠도 늦게 잔다고 하더라고 했다.

산학교에 와서 학교를 둘러 보았다. 학교 입구에는 아침햇살이 심어놓은 것으로 보이는 주홍색 만수국(아프리칸 매리골드)이 피어 있었다. 꽃밭과 화분에는 분꽃이며 봉숭아며 채송화며 백일홍, 금잔화, 천일홍이 있었다. 우현엄마는 특히 천일홍이 멋있다고 했다. 우현엄마는 방방의 환기를 위해서 창문을 모두 열었다. 교사컨테이너방은 화학약품냄새가 자욱한 거의 가스실이었다. 우체통에서 우편물을 꺼내다 교사방에 넣었다.

우현아빠는 오리집을 청소하였다. 그리고 밥그릇을 벅벅 문질러 반짝반짝하게 닦았다. 그리고 물통의 물을 갈아주었다. 옛날 교양있는 집에서는 동물을 기를 때 적어도 두가지 정도의 원칙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① 먹을 때는 개도 건드리지 않는다. 이건 먹을 권리를 충분히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② 그릇을 깨끗이 씻어 먹을 것을 준다. 특히 할머니들은 동물을 구박하고 잘되는 집이 없다고 강조하곤 하였다. 동물은 복을 가져오는 존재인데 어찌 구박할 수 있나. 그런데 사실 산학교의 오리는 ‘동물학대’까지는 아니어도 방치된 듯한 느낌이 든다. 우현엄마는 ‘오리도 오리답게 살고 죽을 권리가 있다’고 했다.

오리수영장에 깨끗한 물이 채워지자, 까망이는 보고만 있고 노랑이가 혼자 수영하고 목욕을 했다. 여전히 노랑이가 대장노릇을 하는 모양이다. 청소를 했으니까 다음은 먹이를 주는 차례! 집에서 음식을 챙겨와야 하는데 미처 챙겨오지 못해서 산학교 주방을 봤더니 특별한 게 없었다. 미국에는 비둘기와 같은 새들에게 사람먹는 먹이를 주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기도 한다는 소식도 있지만. 아무튼 주변상점을 돌아보고도 오리먹이를 구하지 못했다. 그래서 일단 식물성 먹이를 주기로 했다. 큰씀바귀(씽에), 질경이, 뽕잎, 근대잎, 망초순 등을 주었다. 산학교 주변에는 풀이 많지만 대부분 환삼덩굴 같은 것이라서 오리가 먹을 만한 것은 드물었다. 마당에 자라는 질경이는 좋은 먹이감이었다. 우제도 자고 일어나 질경이잎을 오리에게 주며 좋아하였다.

채소만으로 오리의 배를 채울 수는 없고 지렁이와 같은 곤충을 충분히 잘아줄 여건은 안되기 때문에 쌀을 좀 주었다. 어제 동물에게 밥주는 것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는 문주네도 오리들에게 쌀을 주었다고 했다. 비가 그치면 오리에게 줄 채소로 텃밭에 열무라도 심어야 할 성싶다. 교보문고에서 오리 기르기에 대한 책을 찾아본 적이 있다. 거기에는 ‘청둥오리’를 다룬 책은 하나 있었는데 오리기르기에 대한 책은 없었다. 《가금요론》388쪽에는 옥수수 24%, 쌀겨 20%, 밀 20%, 콩깻묵 16%, 어분 17%, 무기물 3%를 배합한 사료에 약 절반의 청채(靑菜)를 넣어 반죽모이로 병아리를 발육시키며 오리새끼도 이에 준한다고 했다. 큰 오리는 논과 연못과 개울의 천연사료가 많은 곳에서는 사료를 주지 않아도 좋단다. “오리는 닭과 달리 밤에도 사료를 먹으므로 저녁에도 상당량의 사료를 오리사에 넣어 두어야 한다. 오리는 물에 사는 날짐승이므로 타액이 거의 분비되지 않기 때문에 반죽모이로 하여 주고 모이통 가까이 물통을 놓아 주도록 한다.” 오리를 기르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데 오리기르기에 대한 쓸만한 책도 없다니...

모기가 꽤 있는 모양이었다. 모기에게 좀 헌혈을 당한 우현이와 우현엄마는 가려워서 끍어대기도 했다. 모기가 즐겨하지 않는 우현아빠도 서너군데 모기에게 뜯겼다. 천연모기약을 알아봐야 할 것 같다. 산학교 오리는 엄청난 복을 가져올 존재라서 잘 보살펴야 하는데 달갑지 않은 모기도 몰고 오는 듯하다. 생각해 보면 동물을 기른다는 것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야생에서도 어떤 동물의 상실은 상태계 전체를 바꾸어 놓는 것이다. 홍천의 경우도 생태계가 그다지 건강하지만은 않다는 징후를 보기도 했다.

엄마와 아빠가 움직이고 있는 동안 우제는 차에서 자고 우현이는 책사랑방에서 책을 보았다. 그러다가 “엄마, 땀이 너무 많이 나.”라고 했다. 엄마는 “땀은 소중한 거야. 땀은 체온을 조절해주는 거야. 땀이 안 나면 어떻게 되겠어? 사람은 살 수 없어. 땀이 안 나면 큰일나.”라고 했다. 아빠는 “끈적거리는 땀은 기분 좋은 거야.”라고 했다.

물론 이런 생각 자체도 게으름의 소치일 수 있다! 나는 솔직히 목욕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물에 들어가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고나 할까. 어릴 적부터 부분목욕법으로 버텼고 대학시절 이후에도 목욕을 자주 한 편은 아니었다. 냄새만 나지 않는다면 너무 빈번한 목욕은 몸에너지낭비(?)였다. 물론 결혼 후에는 그럴 수가 없었다. 생각해 보면, 깨끗함을 무기로 하는 도시권력의 횡포 속에서 여린 마음에 많은 상처를 입은 채 살아왔다. 도시민인 지금도 그렇다. 더운날 끈적거리는 땀은 당연한 것이다. 그게 왜 더럽고 불편한 것인가. 조상들은 모르긴 몰라도 목욕이 연중행사였다. 그래도 건강하게 후손을 남겼기에 우리가 있을 것이다. 근대의 청결위생관념이 다 타당한 건 아니다. 타당한 것은 화장실 보고 손씻는 것 정도가 아닐까 한다.

1970년대 농촌 사람들은 흑백이나마 TV를 보고 자신은 구질구질한 곳에 살고 도시인들은 깨깟(깨끗)한 곳에 산다고 굳게 믿었다. 그건 부분적으로만 진실이었고 대체로 거짓이었다. 예전의 오지는 지금 청정지역으로 불리지 않는가. 국교 고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은근히 목욕을 강조하셨다. 자기는 일주나 이주에 한번 도시의 집에 돌아가서 꼭 목욕을 한다고 하셨다. 때를 밀면 아무리 자주 목욕을 해도 때가 밀린다고 하셨다. 국교때 나와 친구들의 모습은 꾀죄죄하기 이를 데 없었다. TV와 라디오에서는 강조하는 청결위생관념과 우리 애들의 현실은 거리가 있어도 한참 되는 거리가 있었다.

여름에는 수시로 자연탕에서 멱을 감으니까 깨끗한 편이었지만, 겨울에는 사정이 달랐다. 뜨거운 물이 콸콸 나오는 시절이 아니었기 때문에 씻지 않아서 손등에 때가 끼고 겨울바람에 손등이 거북등처럼 터지기도 했다. 어머니께서는 겨울에 국교2~3학년까지 목욕이 싫다고 하는 내게 억지로 목욕을 시키셨다. 그러나 3학년말 이후로는 씻으라고만 하시고 보이지 않는 부분에 간섭을 하지 않으셨다.

중2때 도시 중학교에서 체육선생님은 체육복을 안 가져온 내게 교복웃도리를 벗으라고 했다. 선생님으로서는 당연한 것이었다. 아직 씻을 때가 되지 않았고 도시에 있다 보니까 멱을 감지 못해서 팔뚝에 때가 끼어 있었다. 너무 챙피해서 울었다. 게으름과 관성과 도시문화에 대한 부적응이 겹쳐서 약간의 문화적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문화적 돌파구를 마련해준 것은 김지하의 <밥>이었던 것 같다. 밥을 읽으면서 똥과 화장실의 소중함을 느꼈고, 도시문화의 청결관념에 크게 개의하지 않고 거기에도 취사선택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나의 주기와 방식에 따라 살자는 마음자리를 찾아가게 되었다. 누가 화장실에서 태어났다고 챙피하다고 하면, 그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얘기해 줄 수 있다.

끈적거리는 땀은 불편하고 불결한 것이 아니다. 자꾸 불편하다고 생각하면 더운 여름을 보내기가 더 힘들다. 차라리 끈적거리는 땀은 기분좋은 것이므로 샤워도 땜냄새가 다른 사람을 괴롭히지 않는한 자제하는 곳이 좋다고 생각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샤워방식과 수세식 화장실의 처리방식은 하나같이 헤라클레스가 아우게이아스 왕의 외양간을 청소하던 방식이다. 그 외양간에는 3천 마리의 소가 살고 있었지만 30년동안 청소를 하지 않아서 심각한 상태였다. 헤라클레스는 주변의 강물을 끌어들여서 쇠똥을 물로 쓸어내렸다. 이런 방식은 겉보기에는 간편하고 깨끗해 보이지만 그 더러운 물이 돌고 도는데 결국 어디로 가겠는가. 깔끔떨고 하루에도 몇 번씩 샤워하는 사람이 그다지 깨끗한 인간이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뭐 남의 취향을 비난하는 건 아니다. 내 생각을 말하는 것이다. 정 끈적거리면 웃통 벗고 바가지로 물떠서 등목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샤워원리나 화장실배출원리나 염색공장폐수배출방식이나 똑같다. 모두 물로 싹 쓸어내리는 것이다. 이 방식은 물낭비는 물론 물오염의 주범이다. 더 좋은 대안이 있느냐고 묻지 않기를. 게으른 사람은 별 얘기를 다한다!

<역시 너무 길다. 우현네는 산학교에 가서 ①우편물 교사방에 넣어두고 ② 건물 환기시키고 ③ 텃밭 살펴보고 ④ 오리집을 청소하고 오리밥그릇을 씻고 오리수영장의 물을 갈았다. 모기한테 몇군데 물린 것 이외에 특별한 일은 없었다. 날씨가 좀 선선해져서 아이들이 다시 즐겁게 뛰어놓았으면 좋겠다.> 이렇게 간단히 쓰면 될 걸 가지고.........

시간이 이미 7시가 다 되어 우현네는 ‘수타 손짜장’ 집에서 식사를 했다. TV에는 황우석 교수팀이 세계최초로 개를 복제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황교수는 학자이면서도 장사를 할 줄 아는 경영인인 듯하다. 수의과 대학이 이렇게 뜰 줄 누가 알았겠는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황교수팀의 작업에는 주목할 만한 점이 여러 군데 보인다. 묘하게 선을 넘지 않으면서 뉴스를 만든다. (8월 4일 목요일)


# 8월 6일 토요일 너무 더운 날이다! 마음을 조절하여 더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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