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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릅실의 하룻밤
작성자 : plantinoid
  수정 | 삭제
입력 : 2005-07-04 13:56:38 (7년이상전),  조회 : 543
<느릅실의 하룻밤>


[2005.6.24.쇠. 어두움(밤)] 제목: 엄마, 아빠, 우제가 온 날.

오늘낮 오후 4시 20분(형들이 이미 다 간 때)에 엄마, 아빠, 우제가 왔다. 아침햇살이 옆에 있는 초가집 가마솥에서 감자를 꺼내줬다. 감자는 맛있었다. 아침햇살이 집에 간 후 아빠가 아침햇살 집앞 개울가 다리 아래 풀정리를 하고 있는 동안 나는 옆에서 우제와 같이 첨벙첨벙거리며 놀았다. 우제는 몸이 왕창 젖은 채로 놀았다. 한참후 저녁밥을 먹었는데 밥은 카레밥이었다. 나는 이제 내일 계획표를 만들었다.


[2005.6.25.흙.맑음] 제목: 현충사 간 날.

오늘 낮에 현충사에 갔다. 본 것은 이순신 장군의 칼, 거북선, 이순신 장군의 영정 등등을 보았다. 볼수록 신기한 것이었다. 가장 멋있었던 것은 거북선이었다. 난 다음에는 낙성대에 가야 되겠다. 왜냐하면 강감찬 장군의 물건과 영정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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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잡한 한 주를 보내고 내포(內浦)지역으로 향했다. 내포지방은 좁은 의미로는 충청남도 서북부의 가야산 주변 지역을 가리킨다. 내포지방의 범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그리고 2004년 12월 7일 정부가 국토정책심의위원회가 승인한 내포문화권은 가야산(예산)을 중심으로 의식과 문화를 공유하는 지역을 말한다. 그 범위는 서산, 보령, 홍성, 예산, 태안, 당진 등 6개 시군이다. 여기에 아산 온양은 포함되어 있지 않으나, 여러 가지 근거로 그쪽도 문화권에 포함시킬 수 있다.

넓은 의미의 내포(內浦)지방은 매우 독특한 곳이다. 이순신도 내포가 키운 조선의 별이었다. 임진왜란 때는 최대 규모의 반란이 일어난 곳이고, 남한대토벌로 의병이 소멸하여 마지막 의병들이 지리산으로 피해가고 북쪽에서는 점차 독립군으로 변신하고 있을 때, 내포지방에서는 의병이 여전히 소수나마 활동하고 있었다. 이 지역을 깊이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곳이 매우 독특한 곳이라는 점을 느끼곤 한다. 천주교와 공산주의, 독립운동가의 활동이 성했던 곳이다. 그러나 근래에는 부동산 투기가 휩쓸고 지나간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최근 “내포문화권 특정 지정 및 개발계획”(2004.12.7)에 따른 ‘내포문화권 개발사업’이 추진됨에 따라 내포 지역이 근본적인 변화를 맞는 조짐을 보여주고 있다. 2000년 11월 10일에 서해대교가 개통되었다. 2001년 12월 21일의 서해안 고속도로의 전구간 개통은 전통적인 내포문화권의 붕궤를 알리는 신호탄이다. 서해안 고속도로의 개통은 1905년 경부선 철도의 완성과 비견되는 중대한 역사적 사건으로 판명될 공산이 매우 크다. 경부선 철도는 일본-한국으로 이어지는 개발구도가 완성된 사건이었다. 서해안고속도로는 중국-한국으로 이어지는 개발구도가 진행될 조짐을 보여주는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내포문화권 개발계획의 승인은 오히려 내포문화권의 해체와 수도권 공장지대의 확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한다.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평택, 아산, 서산 지역을 지나 보면 자동차 철강 공장 용지로 설정된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충남서해안 지방은 군산-오산에 이르는 거대한 미군벨트가 존재하는 곳이기도 하다. 용산과 휴전선 일대에 배치되어 있던 미군 부대들은 앞으로 군산에서 오산-평택에 이르는 서해안 지역에 재배치될 계획이다. 일반적으로 북한의 위협이 문제라면 부대를 그렇게 한쪽으로 밀집시키는 것은 그다지 현명한 조치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타이완해협 문제를 상대하는 광역 미군기지라면 상황이 다르다. 만약 현재 구축되는 미군벨트가 주로 중국을 상대로 한 것이라면, 미국과 중국의 분쟁 시에 한국이 자동으로 개입될 가능성은 크다고 할 것이다.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가 각축을 벌이는 동북아시아의 모습은 참으로 복잡한 곳이다. 특히 한국인이 생존을 넘어서 주체적으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영어-중국어-일본어-러시아를 한두개는 확실히 알아야 한다는 점을 명시해 준다.

아무튼 현재 전지구적으로 진행되는 변화의 폭이 너무나 크고 심원하기 때문에 우리는 “세계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현대의 격언을 한시도 잊을 수 없다. 김일병의 수류탄-총기에 대한 잘못된 사용을 보고 그 심리적 충격을 느끼고 있는 상황에서 아침햇살댁에 가서 아침햇살과 가족들을 보면서 말할 수 없이 시원한 편안함과 느끼면서도 한편으로 나는 분열적인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나에게 내포 방문은 내포의 변화를 한눈에 직접 볼 수 있다는 의미와 ‘산학교’의 제2 교정(!)을 본다는 의미를 동시에 갖지만, 우제나 우제엄마에게는 꽃피는 느릅실 아침햇살댁에서 가족과 오붓한 시간을 갖는다는 의미가 있고, 이미 하루를 거기서 보낸 우현이에게는 보고 싶은 현충사를 보러 가는 중간지착지라는 의미가 있다.

* 39번 도로를 따라 외암민속마을을 스치고 리머쉬 버섯농장을 지나 느릅실로 들어섰다. 느릅실은 험하지는 않지만 깊은 느낌을 주는 골짜기에 있었다. 아침햇살댁에는 이미 한 시절의 주인공들이 모두 떠나고 아침햇살과 우현이만 남아 있었다. 아침햇살은 “아이들과 함께 보낸 것이 참 좋았어요. 학교에서 보지 못했던 아이들의 모습도 많이 봤어요.”라고 하셨다. 아이들의 성격도 참 다르니까 아이들에 대한 기본적인 관심과 애정이 있는 경우에 참 흥미로운 경험일 것이다. 어떤 아이는 어른 못지 않게 일하고 어떤 아이는 입으로 일하고 어떤 아이는 꽃에 관심을 보이고 어떤 아이는 친구들과의 놀이에 더 관심을 보이고, 우현이 같은 경우는 늘 한 박자 늦게 발동이 걸리고...

어느 집을 방문했을 때 사람마다 보는 게 다를 것이다. 나는 사람과 집의 조화를 먼저 본다. 사람과 집이 서로를 돋보이게 하는냐 하는 것은 한눈에 파악되지는 않지만, 처음에 ‘따뜻한 집’의 따뜻한 사람이라거나 화려한 집의 화사한 사람이라거나 하는 느낌부터 시작하여 좀더 많은 보물들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집을 보는 주제어를 발견하게 되면 발견의 분량은 기하급수적으로 확장되면서도 그게 혼란스럽지 않고 일정하게 정리된 심상을 갖게 된다.

아침햇살댁은 우리가 사는 대부분의 주택이 그렇듯이 한옥의 불편함을 버리고 실용성을 선택한 양옥이다. 그것은 양옥의 실용성을 선택했지만, 현대적인 화사함과 곳곳에 심어진 부용의 모습이 상징하듯이 한옥의 운치를 포괄한 집이다. 갖가지 물건과 꽃들을 초대하여 함께 사는 느릅실 감나무집... 아침햇살 선생님 댁에는 여러 가지 나무와 풀들이 있지만, 마당 한 가운데 버티고 있는 감나무가 집의 중심이라고 생각할 여지가 있기 때문에 편의상 아침햇살댁을 느릅실 감나무집이라고 하자. 아니 감나무는 주변에서 너무 흔하기 때문에 그냥 아침햇살댁(집)이라고 하는 게 역시 정답이 아닐까 싶다!

아침햇살집에 들어서면서 우선 눈에 담게 된 것은 정원의 꽃들과 집안 곳곳의 재활용품들과 위성안테나와 같은 첨단기술제품들이다. 꽃과 기계라... 좀처럼 조화시키기 힘든 것들이 공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그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은 기술적으로 부담이 없는 ‘골동품들’ 덕분인 것 같다. 집안구석구석에서 무엇보다도 자주 눈에 띄이는 것은 별로 번쩍거리지 않는 골동품들이다. ‘골동품’이라고 해서 값비싼 시장용 물건과는 거리가 한참 먼 것들이다. 보통 용어로 고물이나 잡동사니에 가까운 것들이다. 재미있게도 그것이 도시나 큰마을에서 보는 것들과는 표정과 목소리가 좀 다르다는 느낌을 준다.

스피커들, 자석식전화기, 공중전화, 구식난로, 한옥문짝, 풍로, 가마솥과 새끼솥, 탄약통, 저울추, 괘종시계, Assassins포스터, 악보대, GoldStar tv, 철모, 가스공사안전모, 자전거바퀴살, 경운기바퀴, 자전거핸들, 경운기(오토바이)번호판, 물펌프, 비행기 프로펠러, 다듬이돌, 풍선기... 거의 투박한 박물관이다. 평소 꽃을 좋아하는 아침햇살의 화사함과는 부조화 속의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셈이다. 그렇지만 그 조화의 중심에는 아침의 포용력이 있는 듯하다!

봄은 거의 꽃동산이지만 여름에는 접시꽃이 거의 독보적이다. 6월 24일에는 접시꽃, 붓꽃, 마가렛, 금은화가 피어 있었다. (오가면서 가장 많이 본 꽃은 개망초다. 개망초꽃도 무더기로 피어 있으니까 그런대로 운치가 있었다. 그냥 굴러들어온 것은 귀한 줄 모른다.) 사실 아침햇살댁에서도 가장 많이 피어 있는 꽃은 개망초꽃이다. 텃밭옆의 개망초밭을 베어넘기다가 환삼덩굴만 제거하고 개망초꽃무더기는 그대로 두었다.

평소 소박하면서도 화사하고 우아한 아침햇살의 모습으로 보아, 느릅실의 교장선생님댁에서는 투박한 ‘잡동사니’ 박물학자와 화사한 ‘생태’ 박물학자의 불꽃튀는 대결이 없었을 리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두 박물학자의 역할분담은 매우 독득한 분위기의 집안 분위기를 만들어 방문자들의 기분을 편안하게 풀어준다. 여기는 자신을 하찮게 생각하는 누구라도 꽃처럼 환영하는 곳일 것 같다는 느낌을 준다.) 그 미묘한 신경전과 타협!

① 어느 것 하나 하찮은 것은 없다. 다만 어떻게 집의 일부로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에 따라 추할 수도 있고 미려할 수도 있다. 그 독특한 미학적 관점을 가졌다.
② 인간중심주의를 넘어서고 있다. 집의 주인은 사람이지만 그 주인과 구성원들은 독불장군이 아니라 함께 예쁘고 건강한 삶을 살아야 할 공동생활자들이다.

아침햇살집에서 얼핏 가벼운 대중서적이 하나 떠올랐다. 그 책을 생각하면서 우리가 사는 도시는 일종의 사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아파트에 산다는 것은 공포다. 전기, 수도, 가스 중에서 하나만 끊겨도 그곳은 콘크리트사막이다. 코엘류의 《연금술사》에서 주인공 산티아고가 피라밋이 있는 이집트의 사막으로 간 것은 도시라는 사막으로 갔다는 도시경험의 은유적 표현일 수도 있다. 코엘류는 그 사막에서 연인 파티마를 만난다. 양치기의 초원이건 사막 같은 도시건 ‘자아의 신화’가 있는 한 자신이 선택한 자리에서 ‘보물’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1970년대 강남개발과 경부고속도로 개통 이후 생활이상이 바뀐다. 밤중에 연탄 갈고 살던 1960~70년대를 생각해 보자. 현대인은 여러 가지로 환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아파트에서 사노라니 뜨거운 물 콸콸 나오고 10분 걸으면 지하철 탈 수 있고 주차장에 기계수레가 항상 대기하고 있다. 1970년대 후반에 살림집의 이상형이 아파트로 변했다. 그건 아무래도 광고의 세뇌작용이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된다. 아파트 광고의 변천사도 눈여겨 봐둘 내용이다. 주택공사와 현대건설의 ‘회사노래(사가)’는 최백호의 “아파트”다. 지금 주택은 정주의 문화체, 정주해서 가풍을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 아니라 환금가치를 갖는 상품일 뿐이다. 이런 마음을 바꾸지 않으면 대안교육은 제자리를 잡기 어렵다. 빨리빨리 대충대충... 소박하고 가난하게 살 자신이 있는가. 사회전체가 우르르 몰려다니는 무서운 상황이다. 조금 나아졌나. 은행에서는 번호대로 일을 처리하고, 지하철역이나 공중화장실에서는 효율적으로 줄을 선다. 많이 좋아졌다고도 할 수 있다.

어쨌든 내가 풀베기를 하는 게 삶의 연금술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아이들이 물을
만지며 놀게 해주려고 다리밑의 2평 정도의 풀을 베어냈다. 그런데 무성하게 자란 풀들은 내 키만큼 높이 쌓였다. 야생풀의 생명력과 번식력은 대단하다. 풀베기를 하면서 ‘요새 심리’가 나에게도 존재한다는 점을 느꼈다. 요새 심리는 일종의 방어심리로, 미국의 보보스족이 뒷동산에 올라가면서 안나푸르나봉에도 오를 수 있는 등산화로 무장하는 것이나 혼자 타고 다니면서 다른 차보다 별로 안전하지도 않은 큰 바퀴의 짚차를 타는 것과 비슷한 ‘유사 보보스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담장 안팎을 엄격히 구분하고 담장안을 항상 꽃피는 최상의 상태로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아침햇살집과 동네와 이웃동네의 경계가 어디란 말인가. 내 무의식적인 판단으로 아침햇살댁의 판도는 집뒤의 길에서 논과 개울까지였다. 그렇다 보니 개울과 감자를 캔 개망초풀밭까지 잡풀을 제거하려고 낮을 들었다. 풀이 너무 많아서 대략 눈에 거슬리는 풀만 베었는데도 오른팔이 마비 직전까지 갔다. 역시 ‘구도’의 길은 쉽지 않다!

사람들은 현재 생활수준의 하락에 대한 공포 속에서 살고 있는 듯하다. 일자리도 줄어들 뿐만 아니라 일자리의 질도 하락하고 있다. 그러나 이 대목도 적극적으로 재해석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동안 남자가 유치원교사를 하면 한등급 낮은 직업에 종사한다는 사회적 통념 속에서 사람들은 고통받아 왔다. 그러나 그런 통념이 올바른 것인가. 현대의 급속한 변화 속에는 우리는 근본적이고 철저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현실적인 답을 찾는 노력을 생략할 수는 없다. 생략의 창궐은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하는 것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사람들은 진지하게 성실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노력을 하는 대신 보다 손쉬운 심리적 안정요법을 사용하곤 한다. (그것은 한국의 보약문화, 즉 운동과 적절한 생활습관으로 건강을 지키려고 하기보다는 ‘보약’이라는 연단약으로 건강을 얻으려고 하는 것과 유사한 것 같다. 물론 한국의 극성스런 ‘보약문화’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힘든 만큼 부작용이 큰 만큼 세계적인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요즘 경제불안을 이기는 한국인들의 대표적인 신경안정제가 큰차인 것 같다. 깊은 불안을 이겨내고 심리적 균형을 유지하는 약이 큰차인 셈이다. 경제불안의 시기에 사람들이 작은 차를 거의 찾지 않고 큰차에 안정감을 느끼는 것은 교통안전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깊은 심리적 필요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이 큰차를 타면서 심리적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쁜 것은 아니며 오히려 바람직한 것이다. 그러나 각자 그렇게 ‘돈’의 논리로 접근하면 일부에서 심각한 사회적 불안이 심화될 수 있다. 김일병의 동료살해와 같은 이해하기 힘든 사건들은 명문대 들어가지 못하고 큰차를 살 수 없는 사람들이 생기는 사회적 양극화에서 기인하는 측면도 없지 않다. 어려울수록 이웃을 생각하고 돕는 겸허한 자세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것은 실용적인 차원에서도 의미있는 얘기로 생각된다. 세상에 무서운 것이 내부의 자기파괴 언행일 것이다. 그렇다고 ‘형평 코드’로 모든 것을 판단하자는 얘기는 더더욱 아니다.

꽃과 기계가 공존하는 아침햇살댁의 주인공들을 보면서 새삼스럽게 ‘차이’라는 것은 인간을 성숙시키는 요소일 수 있고 ‘차이’가 있는 것도 오케스트라처럼 공존과 화합의 드라마를 구성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차이도 있고 미운점도 있다. ① 해롭지도 않은 반점을 제거하려고 들지 마라. 반점은 반점일 뿐 치명적인 약점이 아니다. 실제의 위험을 과장하여 빈대잡으라 초가삼간 태우지 마라. ② 꽃으로만 온 집안을 채우려고 하지 말라. 순식간에 전체를 바꾸려고 하는 벼락공부 내지 혁명콤플렉스를 가진 것이 아닌가. 설사 반려식물과 잉여식물로 울타리 안팎의 풀들을 구분하더라도 긴 호흡으로 조금씩 조금씩 풀치기 일을 나눠서 하면 거의 힘도 들지 않고 오히려 생태적 안목을 모르는 사이에 훨씬 높일 수 있다. 물론 우제한테는 어떤 생각이나 말보다도 마당에서 자갈을 가지고 논 것, 물을 뿌리며 논 것이 가장 인상적인 것이었다! 마당에서는 커다른 두꺼비를 보기도 했다. 사진기가 없는게 안타까웠다.

* 아침햇살이 떠나시기 직전에 우제는 매실차를 마시고 술에 취해 토하고 한동안 안정을 취해야 했다. 매실차가 발효하여 술로 변한 것이었다. 아침햇살은 미안해 하셨는데 아이는 안정을 취한 다음에 너무 잘 놀았다. 아침햇살이 떠나신 후에 우제와 우현, 그들의 부모만이 아침햇살집에 남았다. 먹을 게 풍성해서 하나도 우제네 식구는 하나도 준비할 필요가 없었다. 우제는 실외를 선호하고 우현이는 실내를 선호하였다. 우제가 노는 것을 지켜보기 위해서 마당에 있는데 이웃집 할머니와 손녀 둘이 마실왔다. 엘크사슴 목장을 한다는 할머니와 강주희(7살)-주현(4살) 자매가 놀러왔다.

할머니 말씀으로는 그 마을은 적지미와 느릅실로 이루어진 마을이었다. 32호나 되는데 빈집이 여러집이라고 한다. 주희네는 주희 할머니의 아들과 며느리가 취직해 있고 할아버지가 사슴을 키우고 있고 할머니는 집안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사온지 10년 되었다는 할머니는 이곳의 감맛이 아랫마을과 위마을이 다르다고 했다. 이 마을에서는 감과 호두가 많이 난단다. 가을에는 먹을 게 많은데 게으르고 배불러서 목먹는다고 했다.

집뒤쪽에서는 동네 할아버지 한분이 감나무에 농약을 치고 있었다.
할머니: “떨어지고 남은 걸 먹지 뭘 (소독)약 치고 그래.”
우제엄: “감나무에도 농약을 치나요?”
할머니: “저건 독한 농약이 아니라 소독약이우. 약을 치지 않으면 감이 많이 쏟아져요.”

이듵날 문화방송에서 지어준 ‘러브하우스’의 주인 아주머니는 진입로를 따라서 분무기로 제초제를 분사했다. 다른 건 몰라도 집안의 잡풀 정도는 정기적으로 꾸준히 낫으로 벨 수도 있으련만, 요즘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초제를 사용한다. 그건 뒤집어진 ‘보약문화’라고나 할까. ‘약’으로 모든 건 해결하려고 하는 태도가 숨어 있을 수도 있겠다. 제초제와 소독약 살포를 보면서, 현대인은 생활 속에서 풀이나 세균과 ‘전쟁’을 벌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은 이라크에서만 벌어지는 게 아니라 집앞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러브하우스의 중고생들은 전혀 마당에서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제초제를 보면서 교육이 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균적인 청소년에게는 컴퓨터게임할 시간은 있어도 마당의 잉여식물을 제거할 시간은 없다. 결국 부모들은 ‘생활’을 풍부하게 가꾸는 법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생활’과 상관없는 ‘공부’를 편식하게 하거나 공부스트레스를 풀어준다는 ‘컴퓨터게임’ 속에서 아이들을 방치하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컴퓨터게임체질로 바뀐 아이들은 뭘해도 재미가 없고 심심하다. 디지털문화+7차교육과정의 위력은 대학생들에게도 놀라운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디지털문화의 중요성과 첨단성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지만 자연친화형 생활문화의 중요성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아이들의 상황은 심각한 상황이다. 하나하나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고 봐도 좋은 상황이다.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희망의 끈을 확실히 잡고 있어야 한다. 아이들이 지독히 자기중심적이고 자기만 안다. 엄격한 훈련과 자율의 확대, 자기중심(weness)... 아이들의 생활은 어른들의 생활의 복제품인 경우가 많다. 현대 한국인들은 기본적인 것에서도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사는 경우가 많다. 지하철 환승계단을 오르내려 왔다면 알 것이다. 좌측통행개념은 거기에 없다. 요즘에는 많이 나아졌다고들 하지만, 질서와 무질서의 균형은 여러 모로 아름답지 못한 것도 사실일 듯하다. 도대체 얼마나 아이들을 규제해야 하는가. 방치와 방종은 무책임한 것이다. 우리는 아이들을 어떻게 키우고 있는가. 많은 아이들은 왜 이렇게 자기중심적이고 자기만 아는가. 부정적인 현상과 긍정적인 요소가 뒤섞인 상황은 언제나 같지만, 지금 디지털문화와 전지구화시대는 문제가 더 복잡하다는 느낌이 든다.

아침햇살이 떠나신 다음에 방안으로 들어왔을 때 우제는 언제 술취해서 비틀거렸느냐 하는 식으로 방안을 뛰어다니며 탐색을 하기 시작했다. 또 파리를 잡는다고 우현이와 우제는 경쟁을 벌였다. 우제를 따라다니며 뭐 깨질 데가 없나 살펴보았다. 그곳은 우제의 세상이었다. 우현이는 책을 보고 일기를 쓰고 우제는 조용하게 놀기를 선택했을 때, 나는 먼저 벽에 붙은 38개의 감사쪽지를 읽어 보았다. 그 중에는 이런 것도 있었다. ① <아침햇살! 사랑해! 좋아해! 아침햇살 남편 어떻게 생겼어? 2003.10.17.金. 정혜원> ② <아침햇살 재미있었어. 고마워. 엄마아빠 보고 싶었지만 재미있었어. 꽃이름도 많이 알고 집에 갈건데 여기도 많이 재미 있었어. 그리고 물레방아도 잘 돌아가는데 옛날 물건 같은 게 많이 있네. 예쁜 꽃도 많이 보게 해줘서 고마워. 맛있는 감밤배사과 많이 먹게 해줘서 고마워. 그리고 재미 있었어. 밤에 불이 갑자기 나가서 무서웠는데 참았어. 근데 여기 마당에서 벼가 다 보인다. 그리고 벌집도 다 보여. 사랑해. 고마웠어. 공유진 2003.10.17.>

①을 읽으니, 팔뚝에 깁스를 한 간소한 차림의 신사분과 두 공주님 사진이 붙은 이유를 알겠다. ②를 보니, 역시 아이들은 ‘사실주의자’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옛날 물건”과 “예쁜 꽃”은 부부의 취향이 서로 보완적임을 느끼게 한다. 젊은 부부들 같았으면 서로 불꽃을 튀기며 부딪칠 만도 하건만 조화를 이루며 또 다른 경지를 보이는 것은 나이테(연륜)의 문제이자 생각과 마음의 깊이의 문제다. 기질이 다른데도 어느 집은 불화요 어느 집은 화목이다. 차이가 뭘까. 보통 사랑이라고 말하지만 거기에는 구체적인 뭔가가 있을 것이다. 또 기계와 자연의 조화라는 것도 대단히 흥미로운 주제다. 아침햇살은 아이들의 듣는 힘이 커졌다고 하셨다. 우현이에게 감사편지를 쓰는게 어떠냐고 했다. 우현이는 일기를 쓴 데다가 또 내일 계획표를 만드는 게 급하다고 했다. 내일 감사편지를 쓰기로 했는데, 아다시피 내일 한다는 일은 대개 생략되기 마련이다.

한편 2003년 10월 17일에는 아침햇살집의 마당에도 물레방아가 돌아가고 있었던 모양이다. 지금은 그게 보이지 않고 물레방아 바퀴로 추정되는 물건이 있기는 했다. 물레방아는 우현이와 아이들이 외암민속마을에서 신나게 물레방아 놀이를 한 다음에 그 의미를 좀더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우현이와 우제가 사는 도시 부천은 ‘물레방아골’로 표현되기도 했다. 부천역 북부광장의 물레방아 조형물. 물레방아 위에는 세명의 간장한 남녀가 있다. 근육질의 여자는 손을 들고 뒤에 서 있고, 마찬가지로 근육질의 두 남자는 물통을 기울이고 있다. 그는 물줄기의 신이다. 부천역 북부광장의 물레방아상은 부천이 뿌리없는 이주민의 도시라는 점을 드러내준다.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부정적인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도시라는 의미를 갖는다고 보면, 부천은 발명가들의 도시라고 볼 수 있다.

부천역에 물레방아 조형물을 세운 것은 부천이 물레방아와 무슨 관계가 있길래 세운 것인가. 이 문제는 구체적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 기원전 753년 로마를 건국한 로물루스와 레무스 쌍둥이 형제는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랐다. 지금도 로마 한복판에 있는 카피톨 박물관에는 쌍둥이 형제가 늑대의 젖을 먹는 청동상이 자리잡고 있다. 그렇다면 부천의 물레방아에는 어떤 신화가 담겨 있는가. 아무리 찾아도 문헌상으로는 확인이 안되었다. 까치울정수장의 물박물관에 가면 물레방아가 있다. 물레방아는 매우 흔한 물건이다. 부천이나 시흥만 해도 공원과 음식점들은 장식품으로 그것들을 설치해 두고 있는 곳이 꽤 많다. 세 번만에 부천역 북부광장의 분수대를 관리하는 곳은 부천시 원미구청의 녹지공원팀(650-2411)이라는 것을 알았다. 마침 담당자는 출장중이라고 한다. 전화를 받은 공무원은 1994년부터 근무했는데 “부천시와 물레방아가 뚜렷하게 연관이 있는 건 아니고 공모에 당선된 작품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시흥의 옥구공원과 부천의 장미원을 비교해보면 도시에도 표정과 색깔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장미원은 한때의 화려함으로 승부하고, 옥구공원은 넓이와 생태적인 자원으로 승부를 한다. 두 도시 사이에는 공통점도 있다. 옥구공원에는 새 사육장의 물레방아와 ‘물레방아 쉼터’의 물레방아 등 2개의 물레방아가 있다. 부천과 시흥과 온양의 공통점 중의 하는 ‘물레방아’였다. 그런데 우리는 물레방아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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