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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겨울 들살이이야기
작성자 : 아침햇살
  수정 | 삭제
입력 : 2006-02-09 13:04:07 (7년이상전),  조회 : 343
아산 시골집엔 겨울들살이를 오는 어린이집 팀이 가끔 있는데 이번처럼 갑자기 눈이 내려 즐거운 비명을 지르게 하곤 합니다. 눈오는 산골마을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달님이랑 채송화랑 모모랑 아이들 열 일곱 명(채륭이는 중국에 갔다가 월요일에 오는 바람에 함께 못갔고 그 다음날 합류하기로 했으나 오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들살이야 해마다 있는 거니까)이 버스를 타고 바로 집앞에 도착했습니다. 이번에는 조금 힘들기는 하지만 모두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했거든요.
저는 짐을 싣고, 장을 봐서 한 시간 전에 도착해 점심밥을 부지런히 준비하고 거실을 넓게 쓰기 위해 소파등을 다른 공간에 옮겨놓느라 정신이 없었지요.

도착한 아이들은 아주 익숙한 공간이라서 자기 집처럼 편안해 합니다.
점심을 먹고 가까이 있는 거산초등학교(폐교될 위기에 있다가 천안아산 등지에서 뜻있는 사람들이 모이며 공교육의 대안학교가 된 곳)에 가서 축구랑 야구를 했습니다. 마침 영국에서 이 날 짐이 도착하는 바람에 저의 남편이 조퇴를 하고 왔고 남편차와 제 차를 이용해 그 곳까지 갔는데 실제로는 이삼십분 거리라서 올 때는 걸어왔지요.
오랜만에 만나서인지 처음에는 조금 어색하게 공을 차던 아이들이 조금 지나자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뛰었고 달님이랑 채송화까지 가담해 전후반 나누어 게임을 했고요. 모모랑 종은이, 수빈이, 혜원이, 문주는 여러가지 놀이기구를 타다가 학교에서 키우는 멍멍이랑 오리, 닭이랑 질리지 않게 재미나게 놀고, 하현이랑 서영, 세희는 찰떡궁합이 되어 들살이 기간 내내 어찌나 정답던지.
우리 학교가 이만큼난 되면 좋겠다는 게 우리 모두의 바람이었습니다.

저녁을 일찍 먹은 후엔 가을들살이의 추억을 되살려 모닥불을 피웠지요.
그런데 5학년 남자아이들은 웬일인지 모닥불놀이부터는 시들합니다.
조금 노는 척 하더니 어느 새 안으로 들어가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영태랑 광연이랑 우현이랑 자령이는 제가 피운 모닥불 옆에 다른 모닥불을 열심히 피워 저한테 제법이라는 칭찬을 받았고 영태는 교사들이 들어갈 때까지 얼마나 불을 피웠다 꺼뜨렸다 하는지 저는 속으로 '허, 저녀석 크면 뭘 좀 해내겠는 걸'했답니다.
아이들이 세 방에 끼리끼리 모여 노는 바람에 교사들은 아이들이 물리고 들어간 모닥불 가에 앉아 "참 좋다" 하면서 올해 한 해를 어떻게 보낼까에 대한 이야기로 한참을 보냈는데 겨우 8시밖에 안되었답니다. 텔레비젼이 없는 시골의 밤은 얼마나 천천히 가는지 모릅니다.
첫 날은 아이들을 자유롭게 두었고 그래도 생활글 쓰기는 했는데 아이들도 이건 당연하게 받아들여서 여러가지 잡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한 해 동안 꾸준히 해온 활동이 효과가 있었네 하며 웃었답니다.
아이들을 재워 놓고 교사들은 뜨끈한 부엌에 앉아 새벽 두시까지 회의를 했습니다.
그래도 워낙 따스한 곳에서 자서인지 다음 날도 피곤하지 않았답니다.

둘쨋날은 하늘에서 축복이 내렸지요. 하얀눈이 펑펑 쏟아지는 거예요.
저는 새벽 6시에 출근한다는 남편의 전화를 받고 나갔는데 이미 길을 다 쓸어놓고 차시동을 걸어 놨더라구요. 눈이 한 10센티쯤 쌓였는데 거의 하루종일 눈이 계속 내렸답니다.
아침을 먹은 후엔 마당에서 눈사람도 만들고 언덕길도 함게 쓸고, 놀다가 제가 이럴 때를 대비해 동네 여기저기에서 주워다 놓은 비료포대를 가지고 산길로 올라갔습니다. 바로 환상의 눈썰매장이죠.
산으로 데리고 올라갔는데 힘들다며 투덜댔지만 도착해서는 정말 신나게 눈썰매를 탔습니다. 돈도 안 들고 줄 설 필요도 없는 천연눈썰매장은 아이들에게 대만족이었습니다. 저도 아이들과 붙어서 몇 번 탔는데 무게 때문에 속도가 너무 빨라져서 스릴만점이었지만, 다음 날 교사들은 허리가 아파 고생 좀 했죠.
눈썰매는 오후에도 다음날에도 이어졌는데 제일 신나고 재미있게 놀은 건 혜원이, 수빈이, 영태, 문주였고요. 3,4학년 남자아이들은 나름대로 재미있는 놀이찾아 꼼지락거리며 잘도 놀았고, 5학년남자아이들은 이제 노는 게 조금 귀찮아진 느낌이 들었답니다. 방학의 여파인지, 아니면 정말 자란건지. 특히 방학내내 방안에서 주로 꿈지럭거리며 보냈다는 지명이랑 동현이가 특히 밖에 나가는 걸 싫어했고 다른 녀석들도 안에서 카드놀이, 이런 걸 하고 싶어했지만 제가 누굽니까? 식사 후엔 무조건 두세 시간씩 밖으로 내몰았죠. 매번 "왜? 우리가 그걸 해야하는데, 이유를 한 번 대보시지?"하는 지명군의 끊임없는 잔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저는 꿋꿋하게 아이들을 밖으로 내보냈습니다. 하지만 밖으로 나간 아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잘 놀았지요.

오후부터는 눈썰매팀, 논에서 눈싸움놀이팀으로 나뉘어졌고, 다음 날도 눈썰매 팀, 동네길 걷기 팀으로 나뉘어졌지요.
젖은 옷, 신발은 계속 안으로 들여놓으며 말려주었고 저는 서너시간에 한 번 씩 나무보일러에 통나무를 한 아림씩 집어넣어 방을 뜨끈하게 해 주었습니다. 심야전기보일러와 겸용인데 그것만 갖고는 따듯하지 않아서지요. 남편이 영국에서 돌아오자마자 한 트럭 잘라놓은 나무의 삼분의 일은 땐 것 같습니다.

둘쨋날 저녁에는 눈이 와서 모닥불은 못하고 저녁식사 후 공동체놀이를 했습니다. 무지개, 통나무놀이, 샐러드놀이인데 1학년부터 5학년까지라 조금 무리가 아닐까 싶었지만 참 재미나게 놀았습니다. 1년 동안 한 식구처럼 부대껴서인지 호흡도 척척 맞았습니다. 통나무놀이는 두 팀으로 나누어 한 팀이 엎드리면 다른 팀이 위에서 구르기인데 그 이쁜 1학년들 위를 한동, 민혁이 굴렀는데도 깔깔거리고 웃더군요. 문주만 아프다고 조금 울렀는데 괜찮은지 모르겠네요. 놀이가 끝난 후엔 모두 모여앉아 올해의 학교가 바뀌는 모습이랑 수업구도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했고 질문도 받고 그랬습니다. 1학년들도 이야기를 듣고 질문하는 모습이 어찌나 의젓해졌는지 교사들이 아주 흐뭇했습니다.

산학교 식구가 열 여덟 명에서 서른 한 명으로 늘어난다는게 저도 그제서야 실감이 났습니다.
내년 들살이는 어떤 분위기일까 잠시 생각해 보지만 졸업반의 거인같은 6학년이랑 병아리같은 1학년들이 어떤 조화를 이룰지 짐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올해에도 작년처럼 아이들이 가족같이 지낼 수 있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저는 교사들이 늘어나서 그것도 참 좋습니다.

눈이 내려서 더 좋았던 이번 들살이. 아마 아이들은 어쩌면 평생 한 번도 이번처럼 아름다운 눈을 만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가슴 한 켠에 아름다운 추억으로 자리할 것 같습니다.
돌아가는 눈길은 걸어서 큰 길까지 나가 다시 버스를 타고 기차를 탔는데
저는 뒷정리를 하고 차를 두고 올까 하다가 금요일에 출근을 해야해서 차를 가지고 왔는데, 내려오는 길이 미끄러워 모래를 뿌려가며 큰 길까지 나왔는데 어찌나 긴장했던지 돌아와서 초저녁부터 자고 밤중에 일어났습니다.
이제 새 학기 준비만 남았습니다.

집에서 반찬 한 가지씩 해 보내주신 덕에 교사들의 일이 훨씬 줄어서 참 좋더군요(앞으로도 그랬으면 좋겠는데 괜찮으시죠?)
오랫만에 글을 쓰려니 두서가 없습니다.
그래도 그냥 이렇게 작은 기록이라도 남겨두어야 할 것 같아서 썼습니다.
아이들의 놀이는 주말 부모님과 함께 하는 들살이로 이어지겠지요. 원래는 빙어낚시와 썰매타기가 있었지만 저수지물이 다 녹는 바람에 못한 빙어낚시가, 주말에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참, 우리 1학년들의 볼이 괜찮은지 모르겠네요.
어찌나 열심히 예쁘게 노는지 제가 계속 뽀뽀를 했거든요.
이제 2학년이네요.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1학년 들어오면 이젠 찬 밥인데,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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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프로 ( 2006-02-10 10:00:05 (7년이상전)) 댓글쓰기
선생님, 지명이 잔소리를 어떻게 하죠?
아침햇살 ( 2006-02-13 23:43:17 (7년이상전)) 댓글쓰기
그냥 기다려야죠. 꿋꿋하게. 근데 지명이는 참 멋져졌던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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