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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현이의 토요기행--''평화기념관''
작성자 : 그루갈이
  수정 | 삭제
입력 : 2005-11-18 22:00:49 (7년이상전),  조회 : 344
'평화기념관'은 오웰의 '1984'년식의 어법, 즉 증오를 사랑이라고 하고 전쟁을 평화라고 하는 어법에 따른 것임... 실제로는 '전쟁기념관'에 갔지요....

* 2005/11/5/토요일 맑음

제목: 전쟁기념관에 간 날

오늘 전쟁기념관에 갔다. 나는 혼자 아빠를 만나려고 용산으로 가니까 나는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중동역에서 의정부 북부행 열차를 타고 용산역에서 아빠를 만나서 남영역에서 하차) 가던 도중 나는 아빠와 점심을 먹었는데 아빠는 부대찌개를 시키고 나는 라면을 시켰다. 전쟁기념관 안에 들어가서 나는 아빠와 탱크와 한산도대첩 기록화, 영국의 철판갑옷과 일본의 격발식 리볼버 등등을 보았다. 그리고 거북선 그림 하나 그리고 돌아갔다. (삼각지역에서 6호선(응암 순환)을 타고 출발→공덕에서 5호선(방화행)으로 갈아타고 신길까지 감→신길에서 1호선(인천행)을 타고 구로까지 감→중동역에서 하차)

-여전히 음식과 전철에 관심이 많군! 우현이는 전철의 안내방송을 흉내내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영어부분은 단 한마디로 따라하지 못하고 ‘웅우우우’라고 해버린다. 전철노선으로 영어공부 좀 해야할 듯 싶기도 하다.


* 11월 5일 토요일 용산의 국박(국립중앙박물관) 소강당에서 열린 학술대회에 가서 잠깐 발표를 들었다. 점심 때 우현이를 만나기로 했기 때문에 논문발표가 마무리 되자마자 나왔다. 국박은 미군부대에 둘러싸여 있었다. 입지가 여전히 마음에 걸렸다. 총독부 건물이 일제의 잔재라서 안 된다면, 외국군이 오랫동안 주둔해 있던 곳도 ‘고마운’ 자리일 수는 있어도 썩 모양새가 좋은 자리는 아닌 듯하다. (조선일보에서는 <삼국지로 배우는 맛있는 한자> 타블로이드판 24쪽짜리 섹션신문을 나눠주고 있었다. 중국과의 불화를 무릅쓴 미국과의 유대강화를 주장하면서 ‘한자’를 강조하니 좀 일관성이나 앞뒤연결에 좀 어색한 구석이 있는 듯하다. 물론 거기에도 나름의 논리가 있을 것이다.)

국박의 위치를 보며 좀 기분이 착잡했다. 조금 범위를 넓히면 국박 주위에는 국방 등 군주요 시설들이 있다. 그런 곳은 모르긴 몰라도 집중적인 공격목표물이다. 평화에 대한 확신들이 너무 큰 건가. 현재로서는 그런 곳에 나라의 보물들을 몰아넣다니 살떨리는 일이다.

우현이는 아빠와 함께 가는 유적지 탐방에서 처음에는 ‘독립기념관’, 이번에는 ‘전쟁기념관’을 선택했다. 독립기념관도 좀 불편한 점이 있지만, 전쟁기념관은 영 내키지 않았다. 애한테 별로 좋을 것 같지도 않은 곳인 데다가 별로 깊이있게 이해하지도 못할 곳에 아이를 데려가야 하는가. 아이가 가고 싶어하니까 가기로 했다.

* 처음으로 우현이는 혼자 전철을 타고 용산역까지 왔다. 용산역에서 다시 전철을 타고 남영역까지 갔다. 거기서 내려서 근처의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우현이는 ‘토요일이라’ 라면을 먹었다. 군부대와 전쟁기념관 근처에는 전투경찰들이 근무를 서고 있었다. 근무자들을 볼 때마다 우현이는 ‘충성!’ 하는 경례를 했다. 6번 했는데 두 번 응답을 들었다.

* 1층 전시실 입구에는 김포에서 출생한 조헌(후배 조민제의 선조인가)을 비롯한 22명의 전쟁영웅들이 있었다. 전쟁역사실 외벽에는 여러 개의 대형 기록화가 걸려 있었다. 우현이는 기록화 앞에서 “백말을 타고 저기 있는게 을지문덕 장군이야.”라고 했다. “아빠, 저기 미늘갑옷을 입은 게 임경업장군이야.”라고 했다. “아빠, 거북선 속을 좀 들여다 볼게요.” “최영장군의 홍산대첩이야. 활시위를 당기고 있는데 왜 입에서 피가 나고 있어?”(그걸 내가 어찌 기억하니...) 우현이는 <전쟁역사실>에서 인물과 무기에 관심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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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도대첩 모형에서 음향이 나오자, 달려갔다. “아빠, 싸우는 소리가 나.” 서너명의 일본 청년들은 뭐라고 시큰둥하게 얘기하면서 지나갔다.
“불멸의 이순신에서 김완 장군이 나와. 문어대가리 놈들을 공격하라.”
“아빠, 적들이 우리나라에 쳐들어오면 반드시 격퇴하는 거예요?” 말로 해서 안되면 격퇴해야지.
“징비록에 비격진천뢰가 나와.”
“난 청룡도가 좋은데.”
관람하던 할머니가 “저 칼은 들지도 못하겄네.”라고 했다.
“여진족들이 항복했어.”
의외로 미국인, 중국인, 일본인 등 외국인 관객들이 군데군데 보였다.
“아빠, 서희와 윤관 덕분에 고려의 국토가 늘어났어요?”
“아빠, 광개토대왕이 고구려의 전성기를 이루었어요?”
“아빠, 미늘갑옷이야. 내가 입으면 화살 맞아도 끄떡 없겠네.”
“기마인물토기는 장군집에 장식을 해놨을 것 같아요.”
“안시성 전투에서 고구려군이 당나라군의 토성을 빼앗는 장면이야.”
“아빠, 화랑이 멋있어. 머리에 깃털을 달고 있고.”
“아빠, 장보고가 활동하던 지역에서는 해적들이 얼씬도 못했어.”
“처인성이 있는 곳이 외할머니가 계시는 용인이야.”
대포를 본 할머니: “이 쇠덩어리를 어떻게 끌고 다녀?”
“와, 장군복이다. 등나무로 만든 방패, 등패는 총알을 막아내기는 어려울거야.”
한자만 잔뜩 써있는 책들이 전시되어 있어서 그런지 병서전시대는 생략하고 넘어갔다.
“중세영국 갑옷이야. 프랑스 장군, 병사, 기사일거야.”
“정족산성 전투에서 우리가 이긴 거야.” “피해를 많이 봤지만 물리쳤지.” “맞아. 전사3, 부상30명에 불과했어.”
“아빠, 이건 일본군의 격발식 리볼버야.”
“저건 청나라 장군이 입었던 갑옷이야.”
대한제국 군복을 입은 몸인형을 보며 작은 여자 아이가 “엄마, 우리나라 사람은 어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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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실> 전쟁에 대한 설명은 비교적 자세했다. 242대의 탱크(T-34), 남한에는 탱크가 없었다. ‘기습남침’: 장면 주미대사... (한국전쟁과 관련하여 아무도 잘못한 사람은 없다: 누구든 잘못한 건 잘못했다고 해야지 왠 변명인가. 역사선택?) 7월 3일 인민군 한강도하 성공.
“6.25전쟁은 북한군이 먼저 시비를 건 거야?” ‘그전부터 싸움이 있었지. 그날은 북한군이 대규모로 공격했어.’
“아빠, 저기 멋있다. B29 폭격기.” (멋있기는..)
“저건 뭐야?” ‘야전병원.’ “부상자를 치료하는 거야." '응.‘
초등학교 1학년쯤 되는 남자아이와 더 어린 남자아이를 데리고 온 엄마는 “저쪽의 나쁜 놈들 쏘는 거야.” 정말 명쾌한 설명이다.
“아빠, 학도병도 싸우는 거야.” 지나가던 사람: “학도병이 중2네.”
“아빠, 인천상륙작전이야. 이겨서 서울을 되찾았구나.”
졌느냐 이겼느냐에 관심...

우현이는 전시실에 설명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중국군은 야간전투에 능숙, 중공군의 인해전술(CCF Human Wave Tactics), 6사단의 용문산 전투(51.5.16)... 사실 우현이가 靑竹, 大前門 등의 중국군 담배에 관심을 가질 것인가, 아니면 제2국민병 여행증명서, 수첩, 진중일지에 관심을 가질 것인가. 한국전쟁사에서 ‘인해전술의 공포’는 있었지만, 사실 지속적으로 구사된 인해전술 따위는 없었다. 중국도 20세기의 국가인데 자국민의 목숨을 지푸라기처럼 희생시킨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다. ‘인해전술’ 비슷한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중국군의 야간전투와 ‘집중타격전술’과 같은 것이 있었고, 오랜 실전경험을 통해서 나온 것이었다.

우현이는 해방대칸에서 가만이 있었다. “뭐하고 있어?” “해병대 노래 듣고 있어.” 사진에는 인천상륙작전시 “적색해안”에 해상돌격하는 한.미해병대(1950.9.15) 따위의 사진과 “고귀한 희생정신” 따위의 설명문구가 있었다. 초창기 해병대 복장, 사병 전투복은 일본군 복장이었다. 꼭 그런 식으로 출발해야 했나.

6.25전쟁에 대해서는 별로 할말이 없다는 걸 느꼈다. 남북전쟁의 현실을 직시하면서, 《태백산맥》식의 포용론도 무시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태백산맥은 결국 역사를 풍부하게 보자는 것이다. 친일의 역사라서 빼고 공산당의 역사라서 빼고 뭐라서 빼면 역사가 너무나 빈약해진다. 미국의 남북전쟁에서 승리자인 북군만 인정한다면 미국의 역사가 얼마나 빈약하고 단조로워질 것인가.

2층 <국군발전실>에서 ‘교량전차’를 보고 “정말 특이하게 생겼네.”라고 했다. 우현이는 정작 현대 무기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3층 <해외파병실> 베트남 전쟁에 대한 설명과 모형들이 있었다.
베트콩의 부비트랩: 대꼬챙이와 뱀. “함정속에 뱀을 넣었어요.”
비둘기 부대의 대민지원활동.
“청룡부대 활동” “한국은 대민지원과 심리전 비율을 6:4로 하고”
PKO한국군 평화유지활동은 소말리아, 서부사하라, 쿠웨이트, 파키스탄, 인도, 그루지아, 앙골라, 동티모르, 아프가니스탄 등지에 이뤄진다고 한다.
우현이는 해군작전모형을 보고 열심히 지켜봤다. 손정도 목사의 아들 손원일 제독이 해군창설에 큰 역할을 했다는 식의 설명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우현이는 해군함정에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1960년대 중반부터 북한은 무장간첩을 남파하였다는 등의 전시물과 설명에는 관심이 없었다.
“반공관제작전” 시뮬레이션을 열심히 지켜봤다. ‘적기’를 격투시키자, 지켜보던 중국인 관람객은 “따베이챠오센, 하!(북한군을 쳐부쉈군! 하!)”라고 했다. ‘북조선을 쳐부쉈다’ 비웃음인지 사실을 얘기하는지 모르겠다.
* 1947년 시가행진도중 남대문에서 충돌했다. 전쟁의 시작..
* 17만명의 공산포로 중에서 7만여명의 반공포로들...
* 남한에서 150만의 민군관 사망자, 10만여명의 전쟁고아, 40여 만 명의 전쟁미망인
* 네덜란드 (대대) 참전 기념비는 강원도 횡성군 우천면
우현이는 이런 설명과 전시물들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피난생활 재현현장>에는 “폐허화된 도시”와 “피난민 행렬”이 보였다. “전시교육” 재현모양에는 느티나무교실, 천막교실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노무단 활동, 판자촌의 “피난생활”, ‘전사통지서를 받고 통곡하는 여인’, “피난시절의 시장풍경” 등의 재현모형에서는 조금 관심을 보였다. 우현이는 “검정고무신이다.”라고 고무신을 가리켰다. “구호식량을 배급받는 피난민” 모형들도 있었고, 그 옆에는 초콜릿을 주는 미군병사의 모형도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여자아이는 “저기 외국인이 있다”고 했다. 우현이에게 물었다. “피난생활을 하는 걸 보니까 어떤 생각이 들어?” “비극이예요, 비극!” ‘이 지게꾼은 왜 누워있을까?’ “쉬고 있나봐.”

폐관시간이 가깝기 때문에 겨우 거북선만을 스케치하고 나왔다. “전쟁기념관 관람이 어땠어?” “무기와 거북선, 물살, 비행기” 정문 입구의 6.25탑: 청동검과 생명의 나무의 이미지를 썼단다.

힘들어서 삼각지역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고 싶어하는 우현이는 아빠가 자기를 그냥 끌고 가자, “왜 편리하게 내려가지 않는 거예요!” ‘저건 장애인용이야.’ “왜 장애인만 편애하는 거예요.” “뭐? 편애. 건강하게 걸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아. 조금 불편한 게 좋은 거야. 알았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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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적인 차원에서 '독립운동'은 없는 셈이고,
6.25전쟁은 한국이 세계무대에 나선 계기는 됐을지 몰라도........

독립기념관과 전쟁기념관은 자랑스러운 구석보다는 반성과 비판의 여지가 많다. 실제로는 이들 기념관은 통렬한 반성과 비판의 마당일 수밖에 없다. 독립기념관은 1982년 일본교과서 왜곡사건을 통해 ‘독립’한지가 얼마나 지났는데 건설되었다. 5공정권과 무관한 측면이 크지만, 결과적으로 5공의 업적으로 간주되는 셈이다. 특히 전쟁기념관은 50점 받은 시험점수를 두고 좋아라고 기념하는 곳이다. 민족상잔의 전쟁을 두고 이렇게 기념관을 만들어 6공 정권의 업적으로 삼았던 것도 참 모양새가 좋지 않다.

-독립기념관: 한국은 1951년 9월 8일 센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조인식에 승전국의 일원으로 참석하지 못했다. 이것은 한마디로 한국의 독립운동이 국제적으로 송두리째 부정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독립기념관’은 이러한 사실의 부당성을 입증하나는 공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왜 한국은 자신의 지위와 운명에 중대한 영향을 주는 강화조약의 현장에서 ‘초대받지 못한 손님’으로 존재했는가. ‘이승만 박사’의 외교력은 이 경우 무용지물이었던 셈이다. 이승만 박사의 외교력을 내세우는 사람들에게는 참 난처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전쟁기념관은 한마디로 ‘6.25전쟁’(한국전쟁)을 기념하는 곳이다. 도대체 내전을 기념하기 위해 이런 기념관을 지어야 한다는 사실은 역설적인 사태라고 할 수 있다. 6공화국 세력의 인식의 수준을 보여주는 측면도 있다. 정전회담에서 철수하여 정전의 당사자도 아니다. 외교론자인 이승만 대통령은 조공이나 바치는 속국의 일인자가 아닌가. 속국에는 외교가 없다. 무엇 때문에 ‘국제전쟁’까지 벌여야 했던가. 내전 수준에서 끝나지 않고 국제전으로 확대된 위험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처사가 아닌가.

==한반도의 정치세력들은 어째서 그렇게 서로를 공존-경쟁상대로 인식하지 않고 박멸대상으로만 간주했던가. 앞으로 ‘통일기념관’이 지어질 것이다. 통일기념관과 전쟁기념관은 양립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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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현이는 다음에는 ‘수원화성’에 가잔다. 지난 학기에 아빠가 너무 우현이와 함께 놀지 못했기 때문에 이번 학기에 관계도 돈독히 할겸 우현이가 역사에 관심이 많으니까 역사의 현장을 보기로 했다. 그리고 처음 목적지로 아빠의 출생지인 부여쪽으로 가기로 했다.

* 부여: 능산리 고분군, 부소산성, 정림사터, 궁남지, 군수리절터, 부여박물관, 신동엽생가와시비, 구드래나루, 은진미륵(?), 황산벌(?)
* 공주: 공산성, 송산리고분군, 곰나루, 공주박물관, 우금치동학위령탑...

갈 곳이 꽤 되기 때문에 어딜 갈까 얘기가 많았는데 첫 번째는 너무 부여쪽이 먼 것 같아서 ‘독립기념관’으로 갔던 것이 문제였다. 독립기념관에서 전쟁기념관으로 이어지는 탐방이 되어버렸다. 이제 좀더 노는 쪽에 무게중심을 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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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귀 ( 2005-11-21 12:58:45 (7년이상전)) 댓글쓰기
우현이는 그날 저녁 목욕을 하면서 화장실 전체를 물바다로 만들었다. "아니 도데체 박우현 뭐 한거야?" " 응, 북한군이랑 전쟁을 했어. 내가 이겼어" 순간 너무나 당혹스러웠다. 전쟁기념관은 아이에게 이렇게 남아있었다. 다시는 가지 말아야 겠다....
꽁돌 ( 2005-11-22 16:02:51 (7년이상전)) 댓글쓰기
함께 하지 못했던 노루귀의 투정으로 들리네요. 아니면 혼자서도 아빠를 찾아 나설 정도로 장성해버린 아들을 보며 느끼는 "아쉬움"인가? 아무튼 두 부자를 보며, 느끼고 배우는 것이 많습니다. 물론 반성도 많이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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