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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돼지는 못 잡았지만 - 5학년 들살이 이야기
작성자 : momocori
  수정 | 삭제
입력 : 2006-10-24 20:51:13 (7년이상전),  조회 : 322
늘 같이 놀던 4학년과 뚝 떨어져 5학년끼리만 들살이 다녀왔습니다.
저희가 간 곳은 경남 합천의 황매산 골짜기로, 단 2가구만 살고 있는 곳입니다. 옛날 사람들이 살던 모습 그대로 사는 구륜이네 가족과 오랫동안 수녀 생활을 하다가 올해 귀농한 두 분의 언니들이 계시지요. 아이들은 거기서 누구랑 뭐하며 노냐고 걱정이 많았는데 원지 터미널에 내리면서부터 걱정할 것이 없더군요. 원지에서 가회면까지 가는 버스를 타야 했는데 차가 뜸하게 있어서 1시간 10분 정도를 기다려야 했어요.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어서 어떻게 할까 하다가 가까이 있는 초등학교 가서 놀았는데 정말 재미나게 놀았지요. 농구도 하고, 평균대에서 오래 서있기도 하고, 골넣기 시합도 하고, 그러다가 히치 하이킹에 도전해보자 해서 도전해보기도 하고요.(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가회에 내려서는 상평 아저씨(구륜 아버지)가 트럭을 몰고 마중을 나와주셨는데 아이들은 넓은 자리 놔두고 짐칸에 타서 갔어요. 신난다고 깔깔 웃는 사이 어느새 구륜네 도착했답니다.

구륜네 가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우리가 머물 방에 군불을 지피는 일이었어요. 구륜 어머니가 차근차근 시범을 보여주셔서 저희들은 배우고, 그러다가 인범이가 도마뱀을 발견해서 불을 지피는 동안 도마뱀과 놀기도 하고요. 그런 다음엔 논으로 집합! 꽤 넓은 논에 볏단이 펼쳐져 있었고, 우리는 논바닥에서 해바라기를 하는 볏단의 몸을 뒤집어주는 일을 했어요. 논이 꽤 넓었고 허리를 숙여 많은 볏단을 뒤집는 일이 그리 수월한 일을 아니었는데 아주 날쌔게 움직였답니다. 축구 선수 인호와 인범이가 바람을 잡으니 덩달아 몸을 빨리 움직일 수밖에 없었죠. 그렇게 땀을 흘리고 나니 어느새 날이 저물어 구륜 어머님이 준비해 주신 맛있는 밥을 먹었습니다. 밥 먹은 뒤에는 구륜이 놀이터라고 불리는 소나무 숲이 있는데 그곳에서 간단하게 담력훈련도 했어요. 아이들이 무서워할까 봐 4명이 함께 가게 했더니만 하나도 안 무서웠다는 표정으로 산을 내려오더군요. 넷이서 한 목소리로 "우리가 해냈다" 외치면서요.

둘째 날, 아침식사 당번이 서영이였습니다. 인호는 쓸기, 준동이는 닦기, 인범이는 설거지를 했지요. 그렇게 하루를 열고 나니 겨우 8시 30분...(시골의 아침은 여유로워요!) 9시 30분까지 자유롭게 논 다음 그떄부터는 고추밭으로 갔습니다. 고추농사가 끝났기 때문에 고춧대에 묶여 있는 비닐끈을 푸는 작업을 했죠. 아이들 말마따나 끝도 없이 펼쳐진 고추밭에서 굉장히 힘들어하며 점심 먹을 때까지 일을 했습니다. 일이 힘들다 보니 물 마시러 간다고 간 아이들이 한참을 안 돌아오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죠. 안 되겠다 싶어서 제가 아이들에게 말했죠. "상평 아저씨는 지금 너희들의 인내심과 끈기를 시험하고 계시는 거다. 멧돼지를 잡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줄 아느냐. 굉장한 인내심과 끈기가 필요한 거다. 이렇게 힘든 일을 하는 게 다 그런 이유에서다." 그러자 "진짜요?"하며 눈망을 빛내는 아이들... 5학년이라도 아직 아이는 아이이지요? ^^
저와 서영이 준동이가 고추밭 일을 마저 하는 동안 인호와 인범이가 점심 식사 도우미가 되어 구륜 어미님을 도와 카레를 만들었습니다. 간식으로 먹을 메뚜기도 잡고요.

점심을 먹은 뒤 상평 아저씨가 "우리 산책하러 가자"하셔서 함께 산봉우리 따라 산책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아저씨가 키우시는 버섯도 보고, 나무 열매도 따먹고, 소나무를 꼭 껴안아 보며 소나무가 하는 말을 들어보기도 하고... 그뿐인가요. 아이들이 그렇게 기대하던 멧돼지 발자국도 보았지요. 멧돼지 목욕한 흔적도 보고, 다른 동물들 흔적도 보고요. 이따 밤에 여길 다시 올 거란 여운을 남기고 점심 산책이 끝났습니다. 돌아오니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건 맛있는 메뚜기 볶음... 서영이와 준동이는 뒷다리와 날개만 먹고, 저와 인호 인범이는 통째로 와구와구 먹으며 하나도 남기지 않고 맛있게 먹었습니다.

이제 오후에 할 일은 무엇이냐... 논바닥에 누워 있는 볏단들을 한 데로 모아 기차처럼 옆으로 주욱 세워놓는 '가새모춤' 만들기 였습니다.(탈곡하기 전에 그렇게 세워 놓으면 통풍도 잘 되고 나락도 잘 마른다고 하더라고요.) 아저씨와 제가 가새모춤을 만들고 아이들은 볏단을 날랐는데 실력에 차이가 나지 않을 수 없었지요."인범이가 모모가 만든 건 아저씨랑 많이 달라."하면서 걱정을 하니까 아저씨가 '볏단을 기울이지 말고 세워야 바람도 잘 통하고 햇볕도 잘 쬘 수 있다고, 이것도 과학이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러자 인범이는 "모모는 과학 선생님이 왜 이것도 몰라"... 이러면서 구박을 합니다. 맞는 말이라 저도 인정했지요. 누가 교사고 누가 학생인지... ^^; 아이들이 속도가 느린 저를 배려해서 볏단을 집어들기 좋은 방향으로 놓아주기도 해서 감동을 느끼며 일을 했습니다. 손발이 척척 맞으니 일도 뚝딱 끝낼 수 있었지요. 아저씨가 일이 빨리 끝나면 논에서 미꾸라지 잡아 튀김해 먹자고 말해두신 터라 일을 끝낸 뒤엔 곧장, 장화를 신고 물이 질퍽한 논으로 갔습니다. 저는 안 들어가고 지켜보기만 했는데 아이들이 미꾸라지 잡는 모습이 어찌나 재밌던지요. 준동이는 미꾸라지는 만져보지도 못하고 논에 발이 빠져 발빼는 데만 시간을 다 보내기도 했어요. 크크

일하느라 수고 했다고 저녁도 구륜 어머님이 지어 주셨습니다. 맛있는 보쌈에 맛있는 김치와 밭에서 막 뽑은 싱싱한 배추를 싸서 먹었지요. 밥도 많이 먹었는데 밥 먹자마다 야참으로 미꾸라지를 튀겨 먹었고요.(튀김 냄비를 아궁이 앞에 놓고 그 열기로 튀겼더니만 튀김이 덜 바삭거리게 되긴 했어요. 그 덕분이 아이들 젓가락이 별로 가지 않아, 미꾸라지 잡는 거 구경만 한 제가 튀김은 가장 많이 먹었답니다.^^)
"자, 이제 멧돼지 만나러 가자!" 소리에 아이들이 완전무장을 하고 아저씨 주위에 모여들었습니다. 장갑을 끼고, 손전등을 들고, 모자를 쓰고... 정말 멧돼지를 잡아올 듯한 기세로 얼굴에는 긴장감과 비장함이 감돌기도 했죠. 어둠을 헤치고 성킁성큼 산길로 들어가는 5학년 전사들... 아쉽게도 저는 함께 하지 못하고 돌아와야 했기에(무서워서 집에 돌아가자는 구륜이 때문에), 그 다음 이야기는 모릅니다. 듣자 하니 아이들이 아~주 무서워했다네요. 오줌이 마렵다고 해서 누라고 했더니 너무 무서워서 오줌이 안 나온다고 했을 정도로요. ^^ 그렇지만 돌아와선 저에게 무서웠단 얘긴 하나도 안 하던걸요? 멧돼지 잡겠다는 얘기도 쏙 들어갔고요. 돌아와서 하루 이야기 쓰고 금세 잠들었습니다.(5학년들도 잠잘 때는 이야기 들려달라고 해서 밤마다 두 개씩 들려줬답니다. ^^;;)

마지막 날, 아침은 준동이가 지었는데 밥이 아주 잘 되어 맛있게 먹었습니다. 밥 먹은 뒤엔 마음껏 놀기! 아저씨가 원지까지 태워주신다고 해서 좀 더 여유롭게 놀 수 있었습니다. 남자 아이들은 어제 가재를 한 마리밖에 못 잡은 것이 아쉽다며 가재 잡기를 했고, 서영이와 저는 여기저기 산책을 했지요. 그리고는 원지로 가서 11시 20분 차를 탔습니다. 제가 구륜이네 며칠 더 머물러야 해서 아이들만 차에 태워 보냈는데 대견스럽게도 집까지 잘 돌아갔어요. 정말 멋진 5학년이지요?!

참, 맛있는 밑반찬을 정성껏 준비해 주신 부모님들... 정말 고맙습니다.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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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프로 ( 2006-10-25 09:59:26 (7년이상전)) 댓글쓰기
요람기를 읽은 느낌이네요. 다큐를 만들어도 좋았을 듯...
김치 ( 2006-10-25 19:44:44 (7년이상전)) 댓글쓰기
나두 메뚜기 먹고 싶다...
황어 ( 2006-10-26 09:36:20 (7년이상전)) 댓글쓰기
일도 많이 하고, 추억도 많이 만들고 왔군요. 5학년 들살이가 궁금했는데.. 역시 씩씩하게 보냈네요. 잘 읽었습니다.
보리*^^* ( 2006-10-26 19:37:36 (7년이상전)) 댓글쓰기
일을 정말 많이 했네요. 담에 엄마랑 같이 가고 싶다고 구륜이와 상평아저씨이야기를 잔뜩 늘어 놓았습니다. 아마도 엄만 일하다 허리가 끊어질거라며...ㅋㅋ 아이들의 몸과 마음이 쑤욱- 큰 느낌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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